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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선물해준 나의 소우주

오늘은 어떤 모험을 떠나볼까

by Alice

난 독서광은 아니다. 그렇지만 늘 관심사가 많고, 늘 뭔가를 배우고 싶어 해서 책을 자주 펼치곤 했다. 여행을 가면 세계 어디든 동네 서점, 혹 특이한 서점은 꼭 들렀고 꼭 한 권이라도 사서 나온다. 서울에 살 땐 교보문고를 매주 가는 게 일상이었다.


온라인 주문으로도 책은 살 수 있지만, 서점에서 느끼는 그 공기, 무작위로 꽂힌 책 제목들을 바라보는 순간이 좋다. 마치 전 세계의 축소판을 보는 느낌이랄까. 전혀 관심 없는 분야의 책 제목을 훑기만 해도 이 세상엔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사는지 깨닫는다.누군가는 그런 분야를 사랑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열정을 쏟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나는 재밌게만 느껴진다.


아직도 또렷한 크리스마스 기억. 엄마, 아빠(혹은 산타)가 내게 준 <작은 아씨들>과 <키다리 아저씨>.

어릴 때 100번은 읽었을 거다. 1/3은 만화, 나머지는 어린이용 텍스트였는데 그 작은 방에서, 그 작은 책 안에서 나는 드레스를 입은 베스가 되었다가 말괄량이 조가 되었다가 기숙사에 다니며 키다리 아저씨가 사준 실크스타킹에 좋아하는 주디가 되었다. 실크 스타킹이 뭔지도 몰랐지만 (뭔가 만화에서 부들부들 예쁘게 그려졌음...)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우리 집은 일산으로 이사했다. 당시 집집마다 세일즈 하는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돌아다니면서 백과사전이나 고전 시리즈를 파는 게 유행이었다. 우리 집에도 만화 과학전집이랑 명작 고전 세트 40권이 들어왔다. 아마 엄마는 “사주면 읽겠지” 하는 반, 판매원의 말에 낚인 반으로 세트를 산 것 같다. 사실 읽으라고 하지도 않았던 듯....(방목의 교육...).


그런데 엄마의 예상이 맞았던 걸까.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한 권씩 읽기 시작헀다. 걸리버 여행기, 허클베리 핀, 해저 2만리, 장발장, 탈무드, 보물섬… 침대나 책상으로 가지도 않고 너무 재밌어서 책장에 그대로 기대서 몇 시간을 읽던 그 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책을 펼치면 나만의 모험이 시작됐다.

일산에 살던 평범한 초딩이었지만 책을 펼치면 전 세계를 넘나들고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며 숲 속 로빈훗이 되었다가,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로빈슨 크루소가 되었다. 일어나 학교 가고, 학원 가고, 피아노 치고, 미술 배우고, 집에 와서 숙제하고 강아지랑 놀다 자는 단조로운 한국의 흔한 초딩의 일상이었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운 나날들이었다.


아마 그래서, 나는 여전히 책이 좋다. 세상과 사람들을 배우고, 생각의 틀을 깨고,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영화보다 느리고, 자극은 적지만 그만큼 내 상상력으로 창조한 세상 속에 오롯이 빠져들 수 있어서 좋다. 생각이 많아진 어른아이인 지금, 어린 시절처럼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하진 못하는 것 같아 슬프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설렘은 생생하다.


(참고로 2024년 내 최고의 책은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로 나온다고 하는데 손꼽아 기다리는 중. 마지막 부문에서 진짜 간만에 침대 속에서 혼자 폭풍 오열하며서 책을 읽은 적이 언제던가.)


자, 오늘은 어떤 책으로 모험을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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