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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쿠 May 07. 2023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일본 외노자 라이프 첫째 달 리뷰

노벨문학상을 받은 T.S.Elliot의 장편시 ‘황무지(The Waste Land)’의 첫 소절 첫 행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시인은 겨울이 봄보다 좋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이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이 싯귀절을 인용하게 되었다.


일본 외노자 라이프 첫째 달이었던 4월은 나에게 꽤나 잔인한 한 달이었다.


내정을 받았을 때가 2022년 6월 15일,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2023년 4월 입사까지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을 했지만 어느덧 입사한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이 깊어지는 4월이었다.


강렬했던 입사식

4월 4일 화요일 도쿄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 롯폰기 아카데미 힐스 49층에서 입사식이 열렸다. 장소만큼 입사식 때 회사 대표가 했던 말 또한 강렬했다.

회사를 위해 일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 일해라. 이 회사가 본인들의 커리어 스텝에 있어서 한 부분의 성장 단계라고 여기고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다 얻었다면 다른 곳으로 가도 좋으니 개인 성장에 최대한 초점을 두고 일해라.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해도 이상하지 않을 자리였지만, 그것보단 개인의 성장에 주안점을 둔 스피치였다. 우리는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직장생활' 역시 주체는 '회사'가 아닌 '개인'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강렬했던 대표의 스피치는 본격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일본어로 압도당한 신입연수 기간

입사식 다음날부터 바로 신입연수(4/5~4/19)가 시작됐다. 비즈니스 매너,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정보관리, MacBook 교육, Adobe Premiere Pro, Illustrator, Photoshop 등 배울 것이 굉장히 많았다. 안 그래도 인풋이 방대해서 힘들었지만 이 모든 것이 다 일본어로 진행되어서 더더욱 괴로웠다. 솔직히 최근 들어 일본어에 대한 자신감이 꽤나 올라온 상태였다.

하지만... 비즈니스 레벨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연수 기간 내내 '내가 어떻게 합격한 거지?' 싶을 정도로 일본어에 대한 장벽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비즈니스 회화, 업계 전문용어, 끝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한자로 인해 일본어에 압도당했다는 느낌을 매일 받았다. 연수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울며 겨자 먹기로 모르는 한자를 전부 찾아보는 추가 공부도 연수기간 동안 했었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인사드리는 사진을 반드시 찍을 것이다)

더욱더 스트레스였던 것은 매일매일 과제가 있었고, 연수 마지막 날에 50문제 주관식 시험을 본다는 것이었다. 연수 초반의 힘듦은 나중에는 버거움으로 바뀌었다. (결국 나는 한 번에 합격하지 못해 재시험을 보았다) 


결국 나 홀로 외딴섬

연수 동안에는 일본어에 대한 부담이 컸고 걱정이 많이 됐지만 직접 부서로 출근해 보니 문제는 일본어가 아니었다. 


우리 회사의 구성은 제작부, 기획 연출부, 비즈니스 프로듀스부, 글로벌 비즈니스부로 나뉜다. 신기한 것은 부서별로 오피스 위치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프로젝트로 만나지 않는 한 다른 부서 동기들과는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연수 기간 동안에는 부서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 같이 함께 지냈었지만 막상 내가 속한 글로벌 부서로 출근해 보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글로벌 부서에 나를 포함해 총 4명의 신졸 동기가 있고, 같은 시기에 들어온 중고신입까지 포함하면 5명이었다. 공교롭게 나를 제외한 4명이 모두 여자였다. 이미 군대에서 '동기사랑 나라사랑'정신을 경험하고 착실히 실천했기에 동기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더더군다나 연수 때 친했던 제작부 동기들은 앞으로 일하면서 마주칠 일이 적기 때문에 같은 부서 동기들이 무척 중요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벽이 느껴졌다.


같은 국적인 비슷한 나이 또래 여자들끼리 어울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역으로 생각을 해보면, 한국에 있는 한국 회사에서 동기 5명 중에 4명이 한국인 남자고 1명이 일본인 여자였다면 아무래도 한국인 남자 4명끼리 어울리는 게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동기 4명이 나를 왕따 시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단지 대화를 하는데 내가 있으면 '한국은 어때?'라던가 '한국은 이렇지 않아?'식의 멘트들이 자주 나온다. 자연스러운 대화의 흐름이라기보다 나를 대화에 껴줘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과 굳이 연관시키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대학교 일본인 친구들 혹은 제작부에서 친해진 남자 동기들과 대화할 때랑은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아직 한 달 차이기 때문에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내가 바랬던 동기애는 아닌 것 같고 생각만큼 편하게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이 상당히 아쉽다. 


글로벌 비즈니스 부서의 총인원은 28명이다. 직급은 부장(1명)-팀장(2명)-PD(프로듀서 7명)-PM(프로덕션 매니저 18명)으로 구성된다. 남자는 총 12명이고 부장님, 팀장님, PD급을 제외하고 가장 직급이 낮은 PM 남자는 나를 포함해 3명이다. 심지어 그 3명 중에 1명은 해외 지사로 파견을 나간 상황이다.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남자 PM은 나를 비롯해 딱 한 명 더 있다. 말레이시아 출신이지만 일본살이가 10년 차이기 때문에 일본에 익숙하고 일본어 또한 사실상 네이티브에 가깝다. 서로 같은 팀이 아니라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점 또한 아쉽다. 부장님 팀장님을 제외한 나머지 남자 선배들은 최소 6년 차인 PD들이기 때문에 친밀하게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이다. 더군다나 나는 PM이기 때문에 다른 PM들과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자 PM이 고작 3명이기 때문에 같은 프로젝트에 동시에 투입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반대로 여자는 팀장님 한 분을 제외한 나머지 15명이 모두 다 PM이다. (여자 PD는 팀장님 한 분을 제외하면 없다, 내년에 PD로 진급이 가능한 5년 차 여자 선배들이 몇 명 있기는 하다)


 '나 홀로 외딴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정이 많지 않은가, 하지만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슬프다. 남에게 의지하는 게 무조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가끔씩 의지하면서 속마음을 어느 정도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있었으면 했다. 영국 유학 적응, 한국 학교 적응, 일본 유학 적응, 군대 적응 등등 나는 나름대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잘 대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매번 어려움은 있었지만 단순히 '혼자'라고 느껴져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적은 이번에 처음 겪는 것 같다. 


타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비슷한 고민을 안고 일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막 외노자살이 한 달 차를 끝낸 신입나부랭이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지만, 세계 곳곳에 있는 모든 한국인 외노자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들의 4월은 그다지 잔인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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