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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쿠 Jun 22. 2023

삼개국어를 하면 그땐 깡패가 되는 거야

2023 Tokyo CHANEL SHOW에서 박서준의 통역을 하다

어느덧 입사한 지 두 달이 지났다. 


1년 차는 사수 PD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를 서포트하면서 일을 배운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외국계 회사의 일본 광고, 두 번째 프로젝트는 일본 회사의 글로벌 광고 제작이었다. 심지어 두 번째 프로젝트는 크로아티아 촬영이었다. 예산을 아껴야 한다는 이유로 나는 해외 촬영에 함께 가지 못했다. 


비록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 부서는 국제 업무가 메인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괜히 회사에서 글로벌 부서를 따로 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한국과의 비즈니스는 전혀 없었다. 


'일본어&영어'로만 업무를 하는 것이 나로서는 아쉬웠다. 동기들 혹은 다른 직원들은 모국어인 일본어와 영어로 업무를 하는 것이지만, 나는 두 가지 외국어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국인으로서 가장 자신 있고 활약할 수 있는 것은 한국과 연관된 일이지만, 그런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6월이 되었다.


2023 MÉTIERS D'ART REPLICA SHOW IN TOKYO 메이킹 영상을 제작하는데 프로덕션을 우리 회사에서 맡게 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일반적인 프로덕션 일이다. 애초에 다른 팀에서 담당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저 샤넬 프로젝트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번 쇼는 미국, 프랑스, 일본, 중국, 한국 등등 여러 나라의 연예인들이 VIP 게스트로 참가했고, 각국의 스타들이 서로 교류하는 장면을 담고자 했다. 'TOKYO REPLICA CREATIVE ENCOUNTERS' 샤넬을 화합의 장으로 기획한 의도가 보이는 제목이었다. 이걸 진행하는 데 있어서 각국 스타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샤넬 측에서 한국어-영어 통역을 못 찾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회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심지어 초대된 한국인 게스트는 '블랙핑크 제니'와 이태원 클라쓰로 일본 열도를 휩쓸어버린 '박서준'이었다.


내게 주어진 일은 샤넬 인터뷰어('Caroline de Maigret')에게 '박서준'이 한 말을 영어로 동시통역하는 것이었다. 카투사 시절 동시통역을 해본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떨렸다. 


다행히 통역은 무사히 끝났다.


이후 영상 편집을 위해 박서준 인터뷰 파트를 전부 자막으로 번역하고, 프랑스 감독님과 박서준 파트의 가장 자연스러운 커트를 선정해서 다른 영상들과 조합했다.  


완성된 샤넬 쇼 영상이 공개되었다.


https://youtu.be/CEs8 axsqzpU


이번 일로 여러 가지를 느끼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선 언어를 여러 가지 한다는 것은 굉장한 무기이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를 할 수 있었기에 눈앞에서 박서준과 제니를 볼 수 있는 어마어마어마한 기회가 있었다.


여태까지 일을 할 때 두 가지 언어(일본어&영어)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통역을 위해 한국어와 영어, 회사 PD들과는 일본어, 프랑스 현지 팀과는 영어로 소통했기 때문에 처음으로 세 가지 언어를 사용했다.


물론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외국어 공부의 특성상 바로 성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걸 이겨내면 외국어는 엄청난 자산이고 무기이다.  


'모국어&영어' 조합으로 두 가지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세 가지 이상의 언어를 준수한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자신감을 확실히 얻었다. 그리고 어떠한 방향으로 커리어를 개척해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아직까지는 동기들과 비슷한 활용도로 쓰이고 있지만, 결국 ‘한국’과의 연관성을 살려야 자신감도 생기고 즐겁게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엄청난 한류 열기를 감안한다면 한국 관련 프로젝트들이 어느 정도 있을 법도 한데, 적어도 우리 회사의 경우에는 0에 가깝다. 회사 사람들은 "지금까지 한국인이 없었으니까"라고 하는데(PD직으로는 내가 첫 번째 한국인이지만, 우리 회사에는 한국인 감독님 한 분과 플래너 한 분이 계신다) 왠지 내가 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회사에 한국 프로젝트가 생기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연락을 취할 생각이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 프로덕션 회사들과 광고대행사들을 조사하고 공부하면서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 간 영상 비즈니스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한일관계에 공헌하고 싶습니다.


최종 면접 당시 내가 했던 말이다. 


진심이다. 


진심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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