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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쿠 Nov 16. 2023

편집실에 앉아서 문득 든 생각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편집실을 좋아한다. 


촬영장처럼 미친 듯이 바쁘지 않고 오피스처럼 다른 사람의 눈치를 안 봐도 되기 때문이다. 내가 편집자도 아니고 상의는 감독, 크리에이티브 그리고 피디가 하기 때문에 비교적 긴장을 덜 해도 되는 자리이다. 


촬영 현장만 주구장창 끌려 다니다가 오랜만에 편집실에 들어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내 머리 한 구석에 쌓여있던 고민 덩어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 아 그때 거기를 갔더라면 어땠을까?


2022년 6월, 두 군데의 회사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현재 다니고 있는 일본 광고제작사의 Production Manager, 그리고 일본 반도체 회사의 Investor Relations.


업계와 직무 모두 확연히 달랐다.


그 당시에는 내가 꿈꿨던 광고쟁이의 길을 주저 없이 택했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정말 이건 너무나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군대와 코로나로 인해 4년 동안 일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일본에서 취직을 고집하는 것이 맞을지 그냥 한국에서 취직을 하는 게 맞을지 고민하고 준비하며 굳건히 버텨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광고 업계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 이 업계에 계속 남아있는 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


물론 반도체 회사를 갔다면, 왜 내가 그토록 바랐던 곳을 포기하고 여기를 왔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수 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광고 제작회사에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이직을 하는 데 있어서 선택의 폭이 좁다(다른 업계로 이직하는데 불리하다). 하지만 반도체 회사의 Investor Relations로 시작했다면 타 업계에 있는 기업의 Investor Relations 포지션으로 이직이 가능할뿐더러 금융권 등 아예 포지션을 바꿔서 새로운 업계에 도전하는데 좀 더 용이했을 것이다. 


갑자기 개발자들이 더 부러워졌다. 본인의 커리어 방향성이 큰 맥락에서 잡혀있기 때문이다. 물론 커리어패스를 걷는 데 있어서 방법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코딩/프로그래밍을 통해 서비스를 개선시킨다는 큰 틀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 있어야 하나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굶지 않기 위해서도 있지만, 확실한 기술 즉 무기를 갖고 있다면 커리어를 쌓는 데 있어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으니까. 


일본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유가 삼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서였듯이, 외국어 또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을 현재 잘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이 기술을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고민 덩어리들로 뒤죽박죽인 내 생각들을 뱉어보았다. 


2022년 6월 마지막 주, 그때 좀 더 열심히 고민해보지 않고 결정한 게 살짝 후회된다.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오늘 나는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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