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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쿠 Jun 02. 2024

고민을 거머쥔 외노자

새로운 시작과 함께 찾아온 고민

이직을 확정 짓고 입사 전까지 한 달 동안 푹 쉴 수 있었다. 그 사이에 한국도 2주 동안 다녀오는 등 만족스러운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외노자 라이프를 힘차게 시작했다.


나는 일본 대기업의 콘텐츠 사업부(콘텐츠를 제작, 조달, 납품하는 부서) 지적재산권 팀으로 이직을 했다. 내 직무는 비즈니스 오퍼레이션으로서 자질구레한 업무부터 굵직한 업무까지 폭넓은 영역을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핵심 업무는 계약서이다. 콘텐츠의 제작, 조달, 납품에 있어서 계약은 필수이다. 계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일본 국내 계약은 물론이고 해외 계약건도 많기 때문에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일본어, 영어,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로 봐도 어려운 계약서 내용을 읽고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매번 녹초가 된다(그놈에 한자는 도대체 언제쯤 익숙해질지 모르겠다). 법무팀과 연계 & 상대방과 조율하면서 해야 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상당히 긴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이제는 한국이 글로벌 콘텐츠 업계의 확고한 강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콘텐츠가 됐던 한국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팀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팀 & 다른 팀에도 한국분들이 계신다.

 

높아진 연봉에 유연근무제에 재택근무도 신청하면 가능하고 심지어 하루 세끼를 모두 무료로 먹을 수 있는 구내식당까지...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밤낮으로 촬영장을 뛰어다니던 시절과 비교하면 삶의 질은 굉장히 좋아졌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회사에 계시는 한국분들 중에 일본에 남고 싶어서 남아 있는 분들도 계시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서/이직을 시도했지만 떨어져서/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남아있는 분들도 있었다. 나를 제외한 분들은 30~40대이셨기 때문에 일본에 정착하는 것이 어느 정도 확정적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막연하게 내가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회사분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 번도 일본에 정착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1년에 한두 번 보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내 일상의 한 부분이길 원한다. 금요일 퇴근 후 친구들과 소주 한잔, 주말 아침 부모님과 느긋하게 브런치를 먹는 그런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아무리 글로벌해진 세상이라 해도 자국민과 외노자의 쓰임새는 다르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보수적인 일본의 경우에는 그런 게 좀 더 느껴지는 것 같다.


애초에 일본으로 대학을 간 이유도 일본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것도 경쟁력을 키워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지 두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플랜을 세우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취업이 어려운, 스펙의 괴물들이 모여있는 한국 취업 시장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시간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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