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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혼부르스 Dec 24. 2022

얼음 왕국 체험하기


매서운 12   

  

아파트의 편리함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요즘이다.

거실의 큰 창을 통해 내려다보는 설국은 정말 아름답다.

나뭇가지마다 하얀 눈가루가 어쩌면 그토록 섬세하게 입혀져 있는지….

거실에서 새잎을 틔우는 아레카 야자나무의 겨울 무시 행위는 열대식물의 위엄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며칠째 혹독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어도 밖을 나가보지 않고는 그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느낄 수가 없다.   

   

춥다는 핑계로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오늘은 모험하기로 했다.

꽁꽁 싸매고 나가보기로 한 것이다.

완전무장을 하고 나가는 날 보고 남편은 걱정이 됐는지, 

     

손 빼고 걸으레이넘어지면 절단 난데이 알았제.”   

  

라고 하면서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다.    

 

 

    



얼어붙은 눈 위에 소금이 희끗희끗 뿌려져 있어도 소금은 눈을 녹이지 못했다.

행군하듯 저벅저벅 걸어가다 보니 문득 딸내미 어렸을 적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넘어지면 다치니까 발가락에 힘 딱 주고 뚜벅뚜벅 걸어알았지?” 

    

 한참을 걸어가다가 딸내미가 그런다.   

  

엄마발가락에 힘을 주니까 발가락이 이렇게 됐어.”     


하면서 손으로 가위바위보 중에도 없는 우물 모양을 하며 보여준다. 어찌나 귀엽던지.

지금 내가 그렇게 걷고 있다. 발가락에 힘을 딱 주면서.


각오하고 나와서 그랬는지 이 정도쯤이야 했는데 돌아오는 길은 달랐다.    

 

우와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맞바람이 그야말로 살을 에는 것 같았다.

이마는 마취 주사 맞은 듯 뻐근하면서 아렸다.

무릎이 너무 추우니까 그 추움이 화끈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가운 바람과 눈 부신 햇살은 오랜만에 바깥세상에 나온 나에게 제대로 겨울의 맛을 안겨 주었다.

뭐랄까...

매운데 시원한 맛. 

마스크를 들어 올리고 연거푸 심호흡했다. 

가슴 깊이 화~~한 박하 맛이 퍼졌다. 



붕어빵과 꽈배기 몇 개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민생은 잘 살펴보고 왔쓰요?”     


가게에 손님이 많았냐는 말이다.

나는 따뜻한 집 공기 때문에 하얗게 돼버린 내 안경을 가리키며     


앞이 안 보인다.”라고 했다.    

 

남편은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23년도에도 힘들겠군.”    

 

하며 맞장구를 친다.     

두꺼운 패딩을 벗고 남편과 소파에 앉아 먹는 따뜻한 커피와 붕어빵은 왜 이렇게 맛있는지.


왜 내 입맛은 이렇게 저렴하지?” 라고 하,    

 

어릴  입맛 아이가들어봤나그 시절 음식이라는 거.” 

그 시절 음악이 있듯이 음식도 그른기라.”

그래도리 여사랑 내 입맛이 똑같아 좋다.”     


라며 웃는다.

천원의 행복. [서로 두 마리씩 먹었으니까]

난 오늘도 행복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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