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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미화 Nov 17. 2024

벌목

  1

  새가 손목을 쪼는 꿈은 따스했다


  붉은 포클레인이 숲을 무너뜨리는 대낮을 보고 난 후


  몸 상하는 것을 조심하라는 해몽이 떠올랐다

  새가 손목을 더 깊이 쪼아댔다


  새들이 내려앉을 곳은 없어지고


  저린 손목에는 공중의 노래가 알처럼 모였다  


  향기로운 목질은 사라지고

  생목 냄새가 올라왔지만 


  부러진 나무 대신

  손목을 내놓았으니


  새들이 사라진 자리가 욱신거리는 저녁


  꿈은 내 몸을 따라 떠돌았다 새는 나무를 향하다가

  곧장 부리를 내리꽂았다



  2

  손목이 부러진 꿈이었다

  손목 깊숙한 곳에 나이테가 파였다


  귀신새가 제 새끼를 안아 기르던 

  벌목된 숲에 손목을 품고 간다


  나를 깨우는 귀신새가 울던 산속의 메아리 베어지고

  가느다란 호각 소리 내며 찬 공기를 밀어 보내면


  새끼를 위한 일은 손목을 돌리며 밥을 짓는 것이라고 

  일러주던 당신 

  뒤늦게 찾아온 숲 


  나의 음울, 음색에 어둠새는 고요를 새겨넣고

  뾰족한 어금니가 박혀 있는 듯 


  숲이 자라나는 속도로 멈춰야 했지만

  산은 무엇을 뱉어냈는지

  구덩이마다 온기가 남아있었다 


  등 뒤에서 긴 그림자 쓰러지는 소리


  휙 돌아들 때

  다시금 나이테가 회오리치고  


  아픈 손목을 돌리며 밥을 짓는 일


  그 소리에 다녀온 날 나는 잘린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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