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과 벌레와 꽃과 바람
그들과 한 철 지냈다면
내 무릎 아래 두었다면
화폭 바깥을 뒤집고 싶겠지만
꽃과 꽃씨는 더 밝아졌다
선명해지는 붓끝이 세상을 마무리해 나갔다
화폭을 또다시 뒤집어 보고 싶겠지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쉿! 단잠을 방해하지 말 것
(도망치다, 여백이라고 할 것이 있다)
봄과 나비를 쳐라
여름과 청수박을 쳐라
한 계절 붓끝 가는대로 화폭 안에서 살았다
주렴과 북과 구름을 치고 나면
바람이 바람의 곤장을 치고
머물 수 있는 날짜가 지나 추워지고
나는 떠나야 했다
원추리와 방아깨비는 죽지 말아라
사마귀와 죽은 꽃은 다시 살아라
조용히 바라보라
힘들고 지친 사람들은 이곳에서 지냈고
역병의 무서운 시절이었다
밖은 아직 겨울이고
강 건너를 불러와 한 철 더 지내도록
허락하는 사람이 있었다
(서로를 앉히자 기쁨이 달아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