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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미화 Nov 17. 2024

초충도를 치다

  풀과 벌레와 꽃과 바람

  그들과 한 철 지냈다면  

  내 무릎 아래 두었다면


  화폭 바깥을 뒤집고 싶겠지만 


  꽃과 꽃씨는 더 밝아졌다

  선명해지는 붓끝이 세상을 마무리해 나갔다


  화폭을 또다시 뒤집어 보고 싶겠지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쉿! 단잠을 방해하지 말 것     


  (도망치다, 여백이라고 할 것이 있다)


  봄과 나비를 쳐라

  여름과 청수박을 쳐라

  한 계절 붓끝 가는대로 화폭 안에서 살았다


  주렴과 북과 구름을 치고 나면   


  바람이 바람의 곤장을 치고


  머물 수 있는 날짜가 지나 추워지고 

  나는 떠나야 했다


  원추리와 방아깨비는 죽지 말아라

  사마귀와 죽은 꽃은 다시 살아라


  조용히 바라보라

  힘들고 지친 사람들은 이곳에서 지냈고


  역병의 무서운 시절이었다

  밖은 아직 겨울이고       


  강 건너를 불러와 한 철 더 지내도록 

  허락하는 사람이 있었다  


  (서로를 앉히자 기쁨이 달아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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