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1. 여기에 글을 쓰고 나니 생각이 조금 정리되는 것 같아서 일기 쓰듯 또 남겨본다. (카카오 미안) 할머니 없는 할머니 생파에 다녀온 이후 '뭔가'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과 연로하신 할머니에 대한 가족주의적인 생각이 아닌 내 안에 있는 공허함 같은 것이었다.
안하무인인 듯 살지만 역시나 사회적 동물이기에 늘 '상대적' 일 수밖에 없고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별차이 없지만, 이 사회에서 숫자 카운트가 하나 더 올라간다는 것은 올라간 숫자의 배수만큼 사회적 지위와 자본을 가지고 있어야 됨을 뜻한다.
이런 생각의 끝은 늘 두 가지 결과로 귀결된다.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아야겠다', '시발 어떻게든 되겠지'. 둘의 싸움은 꽤나 흥미진진한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나이를 먹을수록 전자의 생각이 우위를 점한다.
하지만 이 날은 간만에 '후자의 생각'이 강력한 힘을 내보였다. 나는 그렇게 당근마켓에서 기타를 하나 사게 된다.
놀랍게도 어릴 적 <20세기 소년>이란 만화를 읽고 음악인의 꿈을 꾸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정신병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시 나는 엄청난 나르시스트였기에, 이미 나는 엄청난 음악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시작만 하면 금세 엄청난 실력자가 될 것이란 생각이 있었다. 유튜브 따윈 없는 시절 호기롭게 서점에서 기타 책을 하나 사서 기타 연습에 매진했다.
하지만 기타 연습을 꾸준히 하기란 쉽지 않았다. 가족들의 온갖 핍박이 존재했고,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당시 우리 학교는 7시 반에 등교하여 밤 10시에 하교했으며, 집과 학교는 상상 그 이상으로 멀었다. 늘 산업혁명시절 영국의 소년공들이 이랬을까 싶은 심정으로 학교를 다녔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모범생이었냐 하면 전혀 아니었다. 정신이 나가있던 나르시스트 잼민이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씀을 더럽게 안 들었으며, 당시 또래들이 듣는 음악과 영화가 수준이 낫다고 친구들을 괄시했다. 그럼에도 그때 평생의 운을 다 쓴 건지 주변에 친구가 많아 심심한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기타를 왜 치지 않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은 핑계이다. 백날 지잘난 듯 이야기했음에도 스스로에게 확신 없는 '쫄보새끼'였고 플러스 알파로 게을렀던 것 같다.
결과의 단맛만을 원했던 나머지 조금만 하면 제프 벡이나 지미 페이지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근본이 틀려먹은 것이다. 뭐든 꾸준히 해야 하는데, 겉멋만 든 것이었다. 그 이후 대학에 진학하여 밴드에 들어가 이래저래 깝죽거리고 다니긴 했지만, 늘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재능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 빈수레였다.
그래도 그때 그 마음이 정말 순수했었는지,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에도 오롯이 그 마음이 떠오를 때가 있다.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하철 역 앞에서 당근을 찾고 있었다. 처음에는 새 기타를 사려고 했던 것 같은데 피킹이나 제대로 할까 싶은 마음에 잠시 이성을 차린 듯하다.
인테리어 소품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뭐... 그런대로 그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최소한 쳐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잘해보자!
2.
기타 2. 드림카는 없지만 드림기타는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52'Telecaster이다. 텔레캐스터 빈티지 시리즈는 소리도 소리인데 그 간지가 엄청나다. 이 악기에 정말 진심이었기에 대학교 1학년때 터널 공사현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었는데, 결국 사지 못하고 군대 간다는 허울 좋은 핑계로 다 마셔버렸다.
고가이긴 하지만 지금은 할부일지언정 손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저 악기를 오롯이 다룰 수 없기에 내 손에 들어와도 지금은 전혀 기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나의 목표는 정해졌다. 더도 말고 하루 30분씩 러닝 하듯 3년 정도 하면 텔레캐스터 앞에서 부끄럽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