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용어를 하루 한번 이상 꼭 듣는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곧 세상이 바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다른 기술과 달리 이번만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이 그랬고, 모바일, 스마트폰이 그랬다. 아마 cloud 도 그런 것 같다. 이런 기술들은 적어도 우리의 생활 패턴을 바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티폰이나 음성인식과 같은 기술, 애플의 Siri는 기대했던 Breakthru를 만들지는 못했다.
AI나 ChatGPT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간의 행동패턴을 만들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이 ChatGPT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를 먼저 접한 엔지니어들이다. 그들의 속성상 기술의 한 면을 보고, 이것이 가져올 생산성 향상에 집중한다.
스마트 폰이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생산성을 향상시킨 점은 아무도 부인 못한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스마트 폰을 붙잡고 동영상을 보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저런 동영상 시청이 얼마나 생산성을 올렸는지, 오히려 통신망 증설에 필요한 불필요한 투자를 늘려서 자본의 효율성을 낮추지는 않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스마트 폰이 사람들의 판단 능력을 저하시키고, Critical Thinking, 즉 논리적 또는 비판적 사고 기능을 쇠퇴시켰다. 전혀 검증되지 않은 유튜브 동영상 내용을 맹신하게 만든 것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아직은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SNS, 이와 연결된 Big Data와 Cloud 기술이 합쳐진 결과 중의 하나는 이념의 양극화이다. 어떤 한쪽의 이념만을 맹신하다 보니 이런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한국 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랑스의 옐로재킷 시위, 미국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 브라질 등 남미의 정치 양극화를 보면, 이런 양극화가 어느 특정 국가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내실보다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하고, 음식의 맛보다는 얼마나 화려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는지 posting 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비행기를 타면, 비즈니스 석의 숫자는 이코노미 석의 절반도 되지 않는데, SNS상의 비행기 좌석은 99% 비즈니스 또는 퍼스트클래스 좌석이다. 전 세계 골프 의류 시장의 46%가 한국이고, 26%가 미국, 13%가 일본이라고 한다. 골프 인구수를 고려하면,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 한국 골퍼들이 사는 의류의 양과 단가가 외국에 비해 몇 배씩 많거나 비싼 것이다. 왜? 골프를 치는 것이 아니라, 골프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크기 때문이다.
ChatGPT가 이메일과 여러 자료를 요약해 줌으로써, 우리들의 생산성을 향상해준다고 한다. 이는 엔지니어가 바라본, 단순 Input (시간) 대비 Output (요약 내용)을 본 측면이다. 회사 업무의 여러 측면을 고려해서, 이를 종합하여 결론과 시사점을 뽑는 그런 '요약'능력은 자연히 쇠퇴할 것이다. 뭐, 그것도 ChatGPT에 맡기면 될까? 그럼, 결국에 "경영"도 AI가 해줄까? 인생을 교과서 데로 살 수없듯이, 경영도 자료의 분석과 요약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굳이 긴 소설을 읽고, 다른 사람이 쓴 수필을 읽고, Steve Jobs의 600 페이지 넘는 자서전을 읽고 되새기고 하는 이유는 뭔가? 그냥,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요약본만 읽으면 되지 않는가? 실제로 오래전에 어느 대기업 사장님 차를 얻어 탈 기회가 있었는데, 뒷좌석에 보니, 그 회사에서 배포한 최근 베스트셀러 20권의 내용을 2-3 페이지로 요약해 놓은 인쇄물을 보았다. 아마, 이동 중에 책 20권 독서를 '완수'하시는 것 같았다. 요약본을 읽고 나면, 어디 가서, 난 이 책 저 책 다 읽었습니다라고, 그 양에 대해서 자랑할 수 있지만, 그 독서의 질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가 없다. 이제 영화를 극장에서 안 볼뿐 아니라, OTT에서 전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소위 짤, 요약본으로 액키스만 본다. 영화 속 주인공의 심리나 그 사이 복선을 고민해 보고 생각해 보는 것은 이제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 된 것인가. 영화감독과 작가가 고민하고 또 고민한 스토리는 보지 않고, 주요 장면만 보는 관객이 많아지니, 감독이나 작가도, 내용의 구성보다는 자극적인 장면이나 막장 같은 흥미 위주의 시나리오에 집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관객, 즉 고객이 그런 걸 원하니까. 디어헌터 같은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동은 이제 기대하기 힘든가 보다. 적어도, 그 영화는 지금 상영한다면 흥행 실패는 따놓은 당상일듯하다.
양은, 글자 그대로 계량이 되지만, 질은 측정할 수가 없다, 적어도, 단기간 내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이 어떤 양질의 독서를 했는가가 그 사람의 identity의 일부가 될지 몰라도. ChatGPT 가 읽어 들이는 자료 및 데이터의 "양"은 무한하다. 인간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런데 ChatGPI가 읽어 들이는 Input의 "질"도 AI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설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