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좋아하는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요새는 무슨 게임해?" 그냥 안부 인사 느낌의 질문이지만, 어떻게 대답할지 나는 많이 고민한다. 그저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을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최근에 해 봤던 '맘에 드는 게임'*을 얘기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있다. 스스로 게임에 진심이라고 생각하다보니 대충 대답하고 싶지 않다. 어떨 때는 내가 최근에 했던 게임을 신나서 얘기할 때가 있고, 다른 때는 '요새 딱히 끌리는 게 없네'라고 한마디로 대답할 때가 있다. 이런 상황이 나오는 것을 보면 게임을 만나는 데는 의외로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근거 1. 내가 무조건 할 정도의 인기 있는 유명 게임들은 자주 출시되지 않는다.
게이머라면 누구든, 출시만 되면 무조건 하는 최애 게임 제작사의 게임 또는 시리즈가 있을 것이다. 나는 11BIT STUDIO, NAUGHTY DOG, Mimimi Games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한다. 디아블로, 페르소나, 삼국지, 이스 시리즈도 그렇다. 그런데 게임 개발은 보통 3년 이상 걸린다. 더 짧은 경우도 있지만,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유명한 작품일수록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최근에는 1년에 약 1만 개의 게임이 출시되고 있다. (스팀 기준) 그런데 내가 기다리는 작품은 왜 이렇게 나오질 않는 건지.
근거 2. 내 취향에 맞는 신작이 출시할지 말지는 운의 영역이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게임을 할 것이다.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로 더 이상 게임을 취미로 하기 어려워지는 사람이, 그동안 게임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게임을 취미로 갖는 사람보다는 많지 않을까? 게임이 오랜 취미였던 게이머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 취향의 게임은 이미 많이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출시되는 작품들 중에 내 취향을 찾아야 한다. (물론 예전에 출시된 게임들 중에서도 취향에 맞는 게임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 신작을 할 때는 대부분 초반에 진입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잘 모를 때도 재밌는 게임은 흔치 않다. 익숙해져야 재밌어지기에 게임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지루할 수 있다. 취향에 맞는 것 같아서 시작했지만, 초반을 넘어서지 못하고 지우고 환불하는 경우도 많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신작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도 타이밍이 아닐까?
근거 3. 아무리 취향에 맞는 게임이라도 타이밍을 놓치면 다시 안 하게 된다.
서사를 강조하는 게임들은 보통 20~30시간 정도의 플레이 타임이 필요하다. 본업이 따로 있는 대부분의 게이머라면 엔딩까지 최소 몇 주는 걸린다. 그런데 바쁜 일로 1~2주가 지나고 다시 그 게임을 하려고 하면 이전 상황을 까먹거나 다시 몰입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한 번 정도면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이 두세 번 반복되면 그 게임을 지속하기 어려워진다.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타이밍을 놓쳐서 계속 못 하다가 시간을 많이 낼 수 있는 연휴시기에 처음부터 엔딩까지 정말 재밌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연휴가 별로 없다.
게임을 하게 되는 이유는 외부에도 있다. 친구가 강추해서 하게 되는 경우, 다른 사람과 같이 하려는 경우, 어떤 이벤트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로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일이다. 연결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데 운이 좋아서 연결됐다면 이것은 인연(?)이 있어서다. 내가 선택해서 수십 시간을 즐기게 된 게임이, 어찌 보면 운 좋게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서 나와 연결됐다고 생각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게임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지금 나와 연결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자.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위 문장에 나도 모르게 음을 붙이고 있다면(아재) 작전 성공이다. 독자의 정신을 분산시키고 재빨리 퇴장하겠다...
* 맘에드는 게임 : 저마다 생각하는 '맘에 든다'의 기준이 다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수십 시간 이상을 하게 만들었던 게임 정도로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