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의사의 영화 이야기
매몰비용의 오류 Sunk Cost Fallacy.
미래에 발생할 효용이 크지 않음에도 과거에 투자한 비용이 아까워서 하게 되는 행동.
과거에 지불한 매몰비용(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 미래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상황.
매몰비용의 오류는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행위.
그동안 들어간 비용이 아까우니 본전 뽑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실현 가능성 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
예컨대 재미 없는 영화를 관람료 아까워서 시간 낭비하며 끝까지 본다거나
맛없는 음식을 식사값 생각해서 억지로 과식하는 행동.
매몰비용의 오류는 콩코드 오류와 동일.
자존심 지키고자 잘못된 결정을 인정치 않고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 콩코드 오류.
1960년대 우주 기술을 주도하는 미국과 소련으로부터 자존심 지키고자
영국과 프랑스의 합작으로 제작된,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
당시에 투자 금액이 무려 10억 달러.
파리~뉴욕간 소요시간이 대폭 단축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목을 집중시켰으나
몸체가 좁아서 수용 인원이 제한적이고, 연료 소모가 많아서 탑승 비용이 증가.
1970년대에 들어서 세계 불황과 오일 파동으로 실용성과 경제성이 낮은 콩코드기를 대중들이 외면.
그럼에도 자존심 때문에 콩코드를 포기하지 않은 영국과 프랑스 정부.
2000년 콩코드기 폭발 사고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자 누적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2003년 운항 중단.
무려 40년 동안이나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진 콩코드.
2020년 기준으로 5, 7, 9급 공무원 공채에 응시자가 약 16만명.
이는 2020년 수능시험 응시자 548,734명의 1/3에 달하고, 고3 수험생 394,024명의 절반 숫자.
여기에 경찰, 소방 공무원 등 각종 공무원 응시생을 더하면 수능 응시자만큼의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
현재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에 도전하는 것은
안정적인 직장에 노후 걱정 없는 연금 등의 혜택을 위함이거나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마땅한 취업 자리가 없거나
학교에서 배운게 하루 10시간 넘게 공부하는 것 뿐이거나 등등.
그러나 극히 제한된 인원만 합격되므로 대부분 낙방.
합격을 위해 해마다 반복되는 도전.
매몰비용의 오류, 콩코드 오류에 빠지는 과정.
혜옥이.
이 영화는 매몰비용의 오류에 놓인 공무원 응시생이 주인공.
재수하여 입학한 고대 경영학과를 장학생으로 졸업.
명문대 졸업한 수재임에도 마땅한 취업 자리가 없자 7급 재경직 공무원에 도전.
보통 3~5년 걸린다는 7급 공채를 첫 시험에서 1차 합격.
그러나 2차 시험을 연이어 낙방. 결국 8수.
영화에서 혜옥이는 이렇게 매몰비용에 빠진 콩코드가 된다.
돼지 축사를 조명하는 영화 오프닝이 인상적.
막힌 숨을 강하게 내뱉으며 재채기하는 돼지 한마리.
그 돼지가 바로 혜옥이.
축사인 돼지우리는 매몰비용의 오류를 상징.
8수 끝에 매몰비용의 오류에서 벗어나고자 고시원을 탈출한 혜옥이는
돼지고깃집 알바를 시작하지만 돼지우리 밖의 세상은 돼지가 살아가기엔 너무 벅차다.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영화"라는 어느 관람평에 공감.
'혜옥이'는 딸아이에게 추천한 영화.
현실이 공포영화보다 무서움을 알려 주고 싶어서다.
명문대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운 현실.
어렵게 취업해도 조기 퇴직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과 취업에 매달리는 것은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알려 주고 싶다.
명문대 나와서 취업해도 결국 40~50대의 나이로 퇴직해서 자영업을 해야 한다면
아예 처음부터 자영업해서 매몰비용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더구나 자영업에 대한 투자는 매몰비용이 아닌 기회비용.
내가 과거에 이런 대학에 다녔는데, 이러한 직장에 다녔는데 이렇게 하찮은 일을 하느냐며
자영업을 폄하해서 퇴직 후에 생계로부터 도피한다면 자신의 학벌과 경력이 오히려 엄청난 장애물.
따라서 명문대 입학보다 졸업 후, 자영업에 직접적으로 도움되는 전문대 입학이
훨씬 합리적임을 딸아이에게 누차 강조.
자영업에서 대학 졸업장과 회사 이력서는 무의미.
창의적 아이디어와 성실한 노력만으로 성공하는 일.
며칠전, 딸아이가 다니던 학원에서 3수생이 투신 자살.
인생에서 대학 입시는 결코 큰 부분이 아닌데 너무 안타깝다.
대학과 다른 길이 있음을, 심지어 그것이 지름길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어른이
그 아이 주변에 단 1명만 있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