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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 Feb 10. 2024

친정엄마랑 같이 육아를 한다는 건

엄마 없이는 못 살아도 엄마랑은 못 산다


엄마와 나는 쉽지 않은 관계다. 애와 증. 그 사이 어딘가.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건 서로 물리적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할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따로 살고 있는 것 같은. 결혼 전에도 친구같이 다정한 모녀관계는 아니었기에(사실 사이가 나쁜 모녀관계였다. 지금도 하루에 수시로 온탕과 냉탕을 오간다.) 친정에 들어오면서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은 엄마와의 충돌이었다. 성인이 되었음에도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그로 인해 소모되는 정신적 에너지를 모두 내가 감당하겠다는 뜻이었음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시작한 동거였다.




내가 제일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 TOP1은 "밥 먹여라"는 말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엄연한 할머니다. 할머니란 어떤 존재인가. 손주를 볼 때 -30kg쯤으로 보이는 필터를 장착한 분이 아닌가. 아이가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한순간이라도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지 않으면 아사할 존재로 보이는가 보다. 문제는, 내 아이는 먹을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남들먹은 분유의 반의 반만 먹여도 그 이상을 토해내던 아이다. 이유식은 최장 두 시간 반동안 먹여본 적이 있다. 돌 때 겨우 7.5킬로 정도였다. 그것도 태어났을 때에 비하면 10배나 찐 거지만. 이것저것 시도해 본 모든 음식은 입도 대보지 않고 "안 먹을래"라며 아직도 입을 굳게 다문다. 안 먹는다고 하면 간식은커녕 밥도 주지 않고 굶겨봐도 하루 한 끼만 먹고 잠드는 아이다. 50일도 안된 신생아 때, 분유를 3시간마다 먹여야 하는 그때도 7시간 동안 굶으면서 울음 한번 터뜨리지 않던 아기였으니 말 다했다. 따라서 밥 안 먹는 아이를 키우며 내가 스트레스로 졸도하기 전에 마음을 비워야 했다. 하지만 엄마에겐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의 하루 기분은 아이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의 양에 의해서 결정되는 듯 보였다. 먹이고 또 먹이려는 할머니는 창이었고 먹지 않으려고 버티는 아이는 방패였다. 항상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희생양이 되는 건 나였다. 나는 항상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한 손에는 음식이 담긴 접시,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아이를 따라다니면서라도 먹여야 했다. 조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서 양육의 일관성은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엄마한테 잔소리를 한바탕 듣고 나면 나도 괜히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는 게 싫어 엄마에게 따지고 들었다. "본인이 안 먹는다잖아 좀! 그러면 엄마가 직접 먹이던지 자꾸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시라고. 스트레스받으니까 애한테도 괜히 화내게 되잖아!" 엄마는 갑자기 급발진하는 나를 보고 정말로 당황한 듯이 평소였다면 일갈했을 상황에 눈만 끔뻑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 안 먹고 어떻게 사노" 그 말을 듣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좀 전에 간단히 먹은 아침은 엄마눈엔 먹은 걸로도 보이지 않나 보다.




평일에는 일하느라 실컷 놀아주지 못한 미안함과 활동적인 아이의 에너지를 감당하기 위해서 나는 주말마다 외출을 감행하곤 했는데 기관에 다니는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이 철마다 수족구, 감기, 코로나 등 질병을 옮아왔다. 엄마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내 탓을 하셨다. 네가 주말마다 너무 돌아다녀서 애가 피곤해서 그렇다며.. 나는 그럴 때마다 대체 안 아프면서 크는 애도 있냐고 왜 꼭 아플 때마다 내 탓을 하느냐고 반박했지만 이 세상에 화난 엄마를 논리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엄마는 무논리다)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게 현명하다.


 아이가 아프면, 밥을 안 먹으면, 혹시 또 다른 무슨 문제라도 있었으면 그것마저 내 탓을 했을게 틀림없다. 아이가 이렇게 잘 웃고, 밝고, 건강하게 자란 것에 대한 치하는 한마디도 없으면서 내 탓을 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구는 행동이 정말 싫다. 아이가 예쁜 말이라도 한마디 하면 "아이고 어린이집에서 이렇게 잘 가르쳐주나 보다. 너무 고맙다"라고 말하는 엄마가 미웠다.


그거 내가 가르쳐준 말이거든!


'엄마가 시어머니라면 정말 최악일 거야' 나는 딸이니 반박이라도 하지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벙어리 냉가슴 앓듯 들어야 하는 며느리는 무슨 죄람(며느리는 없습니다). 아니 나도 다를 바 없다. 나도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며 내 할 말도 못 하고 살고 있으니까. 집주인인 엄마는 독재자다.




정말 하나하나 너무 안 맞는 엄마지만 독립하려고 구해놓은 집도 친정에서 도보 10분 거리다. 나는 아마 지구주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공전하는 달처럼 싫지만 멀어지지도 못하고 그렇게 평생 엄마 주위를 맴돌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엄마랑은 못살지만 엄마 없이는 못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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