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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 Feb 23. 2024

전복

옹기종기 붙어있는 5형제를 집으로 데려왔다. 등은 에메랄드 같은 푸른빛을 내뿜고 아름다운 그러데이션까지 보인다. 딱딱한 등껍질에 부드러운 몸통을 가진 녀석들을 일단 씻겨주기로 한다.

서랍을 뒤적거려 세척용 칫솔을 새로 개봉한 뒤 왼손으로 소중히 푸른 등껍질을 감싸 쥐고 오른손으로 열심히 때를 민다. 항상 이 녀석들의 목욕은 놀라울 정도의 비포애프터를 자랑한다. 까만 땟국물을 벗기며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낀다. 꼬질꼬질한 아이를 뽀샤시하게 바꿔놓는 엄마의 손길 같은 거랄까.  온갖 더러운 것들은 축적시키며 살아온 듯한 비주얼이 점점 그 숨은 자태를 드러낸다. 뽀얀 속살이 드러나 부끄러운 듯 꿈틀대며 가리려 애쓰는 전복을 발견한 아이가 소리친다.

“엄마! 움직여!”

'헉 살아있었네' 마트에서 집어온 거라 냉동인줄 알았더니 생물이었다.

목욕을 마친 아이들은 몸을 가리려 꿈틀대고 목욕을 앞둔 아이들은 피하고 싶은 순간에서 도망치고 싶은 듯 꿈틀댄다. 하지만 무자비한 내 손은 차례차례 한 놈씩 때를 벗겨내 간다. 껍데기에서 거의 떨어지다시피 한 놈들도 물줄기와 칫솔질이면 나약하게 다시 껍데기에 퍼질러진다. 그 옆에서 아이는 신기한 듯 움직이는 전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엄마 바다에 다시 넣어줘”

싱크대에 받아놓은 물을 가리키며 얘기하는 아이.

“하하. 안돼. 엄마가 먹을 거야”

왠지 살아 움직이는 전복에 대고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섬찟하다. 전복들은 내 살생예고를 어떻게 들었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비는 껍데기에서 전복을 떼낼 때 발생했다. 살겠다 발버둥 치다가 이내 없는 것처럼 잠잠해지기 작전을 쓰던 전복은 내가 숟가락을 들고 밑으로 넣자마자 껍데기에 꽉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살아있는 애들인데..‘ 어쩐지 도축업자가 된 거 같은 기분에 손에 힘이 영 들어가지 않았다. 나의 흔들리는 마음을 눈치챈 전복들은 안간힘을 다해 껍데기에 붙었다. 왠지 욕지기가 올라오기도 하고 혐오감도 들었는데 전투민족의 피가 그 순간 용솟음친 것인지 칼을 들어 전복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빨리 이 순간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맹렬히 칼질을 해나갔다. 어차피 이제 와서 멈출 수도 없다.

저항이 점점 거세진다. 몇 번 칼로 내 손을 벨 법한 위기의 순간도 지나갔지만 결국 잔인한 나는 그 녀석들의 내장까지 파헤치고 말았다. 처참해진 몰골로 나에게 백기를 든 전복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그들과 별다르지 않다. 왠지 전복의 눈을 바라보기가 힘들어 얼른 그들의 숨통을 끊어야 내 마음이 편해질 것만 같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하나씩 화형에 처한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임을 직감한 듯 아무 저항이 없었다.





그들과의 전투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칼집을 내는 것을 잊었다. 까먹은 바람에 못한 거지만 기억났어도 왠지 못했을 것 같다. 백기를 든 전복에게 손수 패배의 문신까지 새기는 행동은 내 능력밖의 일이다.  하지만 순순히 패배를 인정한 전복들은 깊은 곳까지 버터향을 빨아들였고 프라이팬에 제 몸을 내맡겼다. 덕분에 아주 쫄깃쫄깃하고 부드러운 전복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전투 때의 미안한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한껏 전복의 맛을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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