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 #빅쇼트 #라이어즈포커 의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신간이 나왔다. 암호화폐, 크립토, 블락체인 - 지난 수년간 숱한 화제의 중심이었던 새로운 통화체계, 그리고 혜성처럼 떠오른 암호화폐 환전소 FTX와 FTX의 창조자 샘 뱅크맨-프리드 (이하 SBF).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Going Infinite ("무한을 향해 가다" - 번역판 이 나오지 않았으니 제목이 뭐가 될지 알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어떻게 30살도 되기 전에 세계에서 60번째 부호가 되었는지 (31살이 된 지금은 다 말아먹었다 해도)
어떻게 FTX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시원하게 말아먹었는지.
그 많은 (남의) 돈을 어디에 어떻게 뿌렸는지.
SBF가 원한 건 무엇이었는지.
FTX의 파산은 과연 정당했는지?
현재 시간 (2023년 10월) 기준, $8 빌리언 달러에 달하는 FTX 고객들의 금액을 (대강 10조 원쯤 되겠다) 편취했다는 혐의로 미국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재판도 꿀잼이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SBF의 전 여자친구뿐만 아니라 FTX의 핵심인물 모두가 검사 측 증인으로 등장했고, 이번주엔 그 논란의 중심인 SBF 또한 증인으로 등장했다.)
요점만 정리하자면 FTX가 있기 전, SBF는 이런 인물이다.
* 수학 천재 (MIT 졸업)
* 양친 모두 스탠퍼드 법대 교수
* 다리를 심하게 떠는 편
* 공감력 제로 (감정을 느끼지 못함. 행복도 사랑도 슬픔도 느끼지 못함. 그런데 또 지루한 건 느끼는 듯. 본인 주장에 의하면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함. 어쨌든 타인의 감정에 신경 쓰지 않음.)
* 유년기의 기억이 없다. 친구도 없다.
* 모든 결정을 효율성과 확률로 계산한다.
그런 그가 대학에 다니던 중 Effective Altruism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는데, SBF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개념을 알아야 한다. (네이버사전: "효율적 이타주의" 이성과 증거에 의거하여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을 찾고, 그런 생각을 기반으로 행동을 하는 것을 옹호하는 철학적, 사회적 운동)
간단히 말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남을 돕는 것에 초점을 둔 이타주의다. 예를 들어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재원이 기아에 허덕이는 제3 국가의 아이들을 살리고 싶다고 치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그 사람이 제3 국가에 가서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구해서, 먹고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제외한 월급의 대부분을 기부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많은 목숨을 살리는 단체나 국제기구를 골라야 한다.)
Effective Altruism을 삶의 목표로 삼은 그는 졸업 후 월가에서 트레이더로 일을 시작했다. 그가 일하던 곳은 Jane Street Trading이라는 곳으로 초단타매매로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 회사였다. 그 곳은 딱 SBF 같은 사람이 필요한 곳이었다. 감정을 배제하고, 알려진 사실만을 이용해 리스크를 숫자로 환산하는,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취합해 빠른 결정을 내리는 사람.
월가에서 약간의 경험을 쌓은 후, 그는 투자회사를 나와서 독자적으로 돈을 굴리기 시작한다. 비슷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 몇 명을 모아서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투자 (또는 투기..)에 들어간다. 그때 셋업한 것이 알라미다 리서치 (Alameda Research) 법인이다. 처음에는 SBF 본인의 자금만 굴리다가 Effective Altruism을 지지하는 투자자들의 돈도 굴리게 된다. (근데 말이 투자지 이 투자자들도 꿩먹고 알먹고 아닌가. 투자금 이자가 50%였다니.) 알라미다 창업 초기에 SBF와 동업자들 사이가 크게 틀어지는데, 그 일을 계기로 반대세력은 회사를 떠나고, SBF의 추종자들만 알라미다에 남게 된다. 알라미다는 암호화폐 트레이딩으로 승승장구하며 큰돈을 만지게 되고, 그러자 아예 암호화폐 거래소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FTX를 만드는데 FTX 또한 대박이 난다.
자,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갈린다. FTX와 SBF 개인 법인인 알라미다 (다른 주주들도 몇 있긴 했지만 SBF가 월등히 높은 비율로 대주주였다.) 엄연히 다른 개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주머니에 있는 돈처럼 쓰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돈이 알라메다의 돈인지, FTX의 돈인지, 대표인 SBF의 돈인지, FTX에 암호화폐를 예치한 고객들의 돈인지. FTX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서 알라미다에서 트레이딩을 하는 등 -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SBF는 돈을 굉장히 많이 썼는데 자신을 위해 쓴 건 없는 것 같다. (티 한 장에 카고 반바지만 입고 다녔다.)
좋은 곳에 기부도 했지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여기저기 정치자금도 뿌렸다. 그가 생각한 인류의 적 탑 3는 이러하다: 코로나와 같은 또 다른 판데믹 질병, AI의 반란으로 인한 멸망, 그리고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는 것. 그래서 판데믹을 연구하는 연구소나 단체에 기부를 하기도 하고, AI 개발 업체에 투자를 하기도 하고 (말이 투자지 그냥 몇백 밀리언을 주고 알아서 잘 쓰라고 하는 식이다), 트럼프를 막기 위한 정치세력에 정치자금을 대기도 한다.
그는 모든 것을 확률로 계산하는 면이 있는데 인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재해도, 암호화폐 투자도, 직원을 뽑는 것도, 다 확률화해서 결정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알라미다와 FTX에서는 코딩 같은 특수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 무경험자들을 뽑았는데, PR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을 뽑아서 홍보팀장직에 앉히는 식이다. 조직도도 없어서 누구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지 혼선이 많았다고 한다. 홍콩에서 FTX를 운영하던 때 직원의 대부준이 동양인들이었는데 조직도가 없는 것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워했다고 한다. (역시 동양사람들은 상하관계에 익숙하다.)
핵심 고위직들도 나이가 어린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나중에 FTX가 망할 낌새를 보이자 핵심 내부인사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FTX를 버리고 날랐다. 알고 보니 하나같이 엄마아빠집으로 튀었다는 웃픈 이야기. (SBF는 체포되는 순간까지 FTX에 남았지만 대신 그의 부모님들이 그가 있는 곳으로 왔다.) 작가 왈, 이만한 사이즈의 금융범죄에서 관계자들이 모조리 부모님 집으로 튄 건 이 케이스 밖에 없다고.
작가는 팟캐스트에서 이런 말을 했다. FTX가 폭망 할 거란 걸 전혀 몰랐던 시점에, 우연한 계기로 FTX와 그 핵심인물들을 관찰하면서 노다지를 찾았다는 건 알았으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답답했다고. 그 걱정이 무심하게도 FTX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상 이상의 속도로 추락했다. 2022년 가을에 이미 파산절차가 시작되었고, SBF는 구속되었다. 2023년 1월에는 이미 책의 형태가 잡혔고 2023년 10월 초 출간이 되었다. 미국 내, SBF 재판도 때맞추어 시작했다. 잘 나가는 작가에게는 이런 엄청난 기회도 이유 없이 주어지는 것인가. 화제성이 넘쳐나는 FTX와 그 중심에 있던 샘 뱅크맨-프리드까지 그 화려한 멸망을 1열 직관하다니.
2022년 봄과 2022년 가을의 FTX - 마이클 루이스는 파산 직전에 일어난 일들과, 그 후에 일어난 일 또한 자세히 묘사했다. 과연 파산이 정당했는지. 그 과정에서 변호사들이 얼마나 많은 이득을 취했는지. SBF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결국엔 파산관재인과 변호사들이 제일 나쁜 놈들이더라...로 결론이 난다.) 역시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찾아내는 작가이고,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작가다. 암호화폐는 아직도 미스터리 하지만, 재미있는 책 한 권 읽은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재판 진행 상황을 보면 SBF가 무혐의로 풀려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곧 알게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