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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Dec 06. 2023

계급선정을 내포한 이민자의 삶

The Last Story of Mina Lee  - 김주연

외국 서점에서 한국인(정확히는 한국계 미국인이겠지만)의 책을 발견하는 건 짜릿한 기쁨이다.  말로 할 수 없는 뿌듯함과 반가움, 설렘이 섞인 느낌.  서점 매대에 널려 있던 이 책을 집어 들고 표지 뒷면의 한 줄 평만 보고 바로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TheLastStoryOfMinaLee by #NancyJooyounKim #이미나의마지막이야기


"The Last Story of Mina Lee is a profound debut novel that illustrates the devastating realities of being an immigrant in America"  (미국에서 이민자로 사는 삶에 대한 비탄스러운 현실을 다룬 심도 있는 데뷔소설) - 한줄평은 이렇게 적혀있었다.


devastating을 사전에 찾으면 "충격적인" , 내지는 "파괴적인"으로 번역된다만, 위 문장에서는 "처참한" 또는 "비탄스러운"이 알맞을 것 같다.  

이미나(Mina Lee 또는 이민아) - 주인공 미나는 1987년, 마흔이 다 된 나이에 (한국을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연으로) 미국 LA로 이주하게 된 여자다.  미나의 딸 "Margot" (마고)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나의 딸이다.  


아주 객관적인 평을 하자면, 이야기의 2/3 정도는 천천히 흘러가고, 중복된 표현이나 단락이 좀 있어서 '에디터가 일을 제대로 안 했네'라고 생각했다.  후반은 훨씬 더 속도감 있게 진행되지만 중반까지는 지구력을 발휘해야 된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객관적인 평이 아니다.  세 챕터 정도를 읽고 나도 모르게 책을 잠시 덮었다.  너무 리얼해서, 책 속의 목소리가 너무 진짜 같아서, 불편했다.  소설을 읽을 때 나는 작가가 그려낸 세상에 빠져서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느낌으로 읽어왔는데, 이 책은, 왠지 내 주위의 누군가의 이야기 같아서, 소설이 아니라 현실인 듯, 그것도 내가 직접적으로 아는 현실인 것 같아서, 무언가 불편하게 다가왔다.  참 이상한 일이지.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닌데 (알바지옥에 시달렸을 망정 그래도 나는 무난하게 살아온 편이니까),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 이야기도 아닌데, 너무 "날 것"의 감정으로 다가와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사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공감보다 더 강한 체험이었다.

이민제도는 계급 선정을 내포하고 있다. 작가는 "status-filtering immigration law"라고 표현했다. 이민이라는 제도를 거쳐 미국에 오는 사람들은 이민 조건에 맞는 학력과 재력을 갖춘 자들이다. 그런데 그 "필터"를 거치지 않은 사람들 (불법체류자, 또는 재력이나 학력으로 이민 자격을 얻지 않은 사람들) 은 이민사회에서도 확연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물론 잘 되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성공담이야 여기저기서 많이 들을 수 있다), 매일 힘든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들도 많다.  


"Why don't you learn English? Do you want me to buy you some books so that you can learn?"

영어 좀 배워봐, 엄마. 내가 공부할 책 좀 사줄까?

"It's too hard for me now"

이제는 힘들어서 못해.
"Why don't you try? You can learn," Margot said in English.
"You have time."

"왜 노력도 안 해보고 그래? 엄마 할 수 있어." 마고가 영어로 말했다.
"시간 있잖아"

Her daughter would never understand why she couldn't make the time to learn a language that would never accept her - especially at her age now.  

그녀의 딸은 그녀가 지금 이 나이에, 그녀를 절대로 받아주지 않을 세계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시간을 낼 수 없는 이유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What would be the point?  

배워서 뭐 하게?

What was the point of learning a language that brought you into the fold of a world that didn't want you? Did this world want her? No. It didn't like the sound of her voice.

날 원하지 않는 세상의 언어를 배워서 도대체 뭘 하라고?  이곳이 나를 원하기나 해? 아니. 여긴 내 목소리조차 싫어하는 곳인데.


한국말이 짧은 딸영어를 못하는 엄마.  둘 사이의 단절. 그리고 모녀와 사회 간의 단절.  미국에 살면서도, 주류사회에서, 심지어 주류 한인사회에서도 소외된 모녀.  고립.  외로움.  상처.  고통.  (내가 표현하면 너무 상투적으로 들린다. 책을 보는 게 낫겠다.)  


이 소설을 이민자가 아닌, 그것도 한국 이민자가 아닌, 일반 "미국인"이 읽어서 공감할 수 있을까? 소설 안에는 한국 음식 이름도 많이 나오고 (알탕이라든지, 된장찌개, 등등 - 한국어를 영어로 표기했다. doenjang jjigae 이런 식으로) 아무래도 한국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단어들 투성이인데, 일반 미국인이 이걸 어떻게 이해하지?  하지만 비한국계 독자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공감과 이해를 얻은 건 분명하다. Reese's book club (배우 리즈 위더스푼의 북 클럽) 추천 도서인 걸 보니.


Would Margot ever realize that when Mina said she was bored, she was trying to say that she was lonely?  
Bored was a much easier word to say, wasn't it?
지루하다는 그녀의 말이, 사실은 외롭다는 말이란 것을, 언제쯤 마고가 알아챌까?
외롭단 말보다 지루하다는 말이 훨씬 더 하기 쉽잖아.


좀 민망한데, 마지막 장에서 울었다.  책을 보고 눈물을 흘린 게 대체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슬픔을 이렇게 강하게 느낄 줄 나도 몰랐는데.  마지막 장에서 그냥 눈물이 나왔다.  늙어서 그런가?  내 안에도 단절과 소외의 아픔이 있나 보다.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미나와 그의 딸 마고의 고통과 비슷한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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