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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Aug 20. 2024

보수 학부모 협회의 분노를 산 책 - 아킬레스의 노래

판타지 로맨스의 삼박자 -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비극적인 사랑

2023년, 미국 내 금서리스트가 전년대비 60% 이상 증가했다 (교내 도서관 또는 시립 도서관에서 대여나 유통이 금지된 책들이다). 2024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몇 년간 목소리가 점점 커진 미국의 보수 학부모 집단 중, 도서관 금서 리스트를 늘리는데 기여한(?) 단체들은 이러하다 (이름들이 웃겨서 한번 번역해 보았다):  Moms for Liberty (자유를 위한 어머니들), Citizens Defending Freedom (자유를 지키는 시민들), and Parents’ Rights in Education (학부모 교육권 지킴이들). 이들의 주 타깃은 교내 도서관이지만 공립 도서관 또한 그들의 영향권 이내에 있다.  


이들이 막고자 하는 책들은 LGBTQ (각종 성소수자) 관련 이슈를 다루는 책들이 가장 많고, 인종에 관한 내용을 다루거나 성적인 묘사 때문에 금지되는 책들도 있다.  이러한 금서 리스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연령대는 아무래도 청소년들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마들린 밀러아킬레스의 노래 또한 교내도서관 금서 중 하나다.  (고전 일리아드를 동성애 코드로 재해석했다고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나는 이 이야기가 좋았다.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기에.  어릴 때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아킬레스의 노래는 1차원적이었던 신화 속의 인물을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들의 생각과 고뇌에 독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영웅이 될 운명, 그러나 영웅이 되면 단명할 팔자를 타고난 아킬레스와, 그의 친구이자 연인이자 반려자인 파트로클러스. 그 둘의 여정은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비극적이다.  (판타지 로맨스의 3박자가 다 들어있다.)
 


I will never leave him. It will be this, always, for as long as he will let me.
If I had words to speak such a thing, I would have. But there were none that seemed big enough for it, to hold that swelling truth.

나는 그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가 허락하는 한, 언제나, 변함없이, 그러할 것이다. 말로 할 수 있었다면 그리 말했을 것이나 이리도 벅찬 진실을 담을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실수로 살인을 저지르고 (살인이라기엔 과실치사에 가깝지만) 왕자의 자리에서 쫓겨난 파트로클러스.   아버지 메노이티오스왕에게 버려진 그는 이웃나라의 펠레우스왕에게 맡겨진다. 펠레우스왕의 궁에 있는 수많은 소년들 중 으뜸은 단연 왕의 아들 아킬레스. 인간인 펠레우스왕 바다의 님프 테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킬레스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강하다.  


태양처럼 빛나는 아킬레스와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파트로클러스.  자신들의 감정이 무엇인지 눈치채기도 전에 둘은 서로에게 사로잡힌다.  그렇게 그 둘의 운명은 하나로 엮인다.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건 이었다. 오늘의 어휘와 확연히 다른 말투.  머나먼 옛날, 신과 인간이 교류했던 시대에 어울리는 말투가 좋았다.  파트로클러스(화자)의 담담한 목소리도 좋았다.  




이 책이 교내금서리스트에 오른 이유는 아킬레스와 파트로클러스가 둘 다 남자이기 때문이다.  내 새끼가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주인공이나 동성에게 끌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보수 학부모 단체의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각자의 시선과 의견이란 게 있으니까.  그렇다 해도 해마다 늘어나는 금서리스트가 걱정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책 속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책 속의 주인공은 나보다 잘난 사람일 수도 있고 못난 사람일 수도 있다. 나보다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나와 다른 결핍을 가지고 있거나, 나와 비슷한 결핍을 가지고 있거나.  도서관에서 다양성을 제외한다? 그들이 키우고 싶은 다음 세대는 대체 어떤 모습인가?   


현실 부모로서 코웃음도 치게 된다.  요즘 책을 읽는 청소년들이 몇 명이나 된다고 저러나.  야한 책이라도 읽으면 다행이다.  요즘 아이들이 책 보다 더 독한 미디아에 노출되어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미스터리도 좋고 SF도 좋지만 사랑이야기가 고플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유치한 로맨스 소설도 아쉬운데, 하물며 문체가 아름다운 고대의 사랑이야기?  너무 좋다.  동성이건 이성이건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은 아름답다.


(원서읽기 도전에 매우 좋은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장이 간결하기도 하고 실제 책의 길이도 그다지 길지 않아서 호흡을 짧게 가져가며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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