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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Jan 06. 2024

압구정 (세들어) 살아요 2

압구정의 주인


50년짜리 아파트여도 이전집에 비해 크게 가격적 메리트가 있는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차피 우린 노동이 삶의 메인테마 아니겠니,하며 직장 다니기 조금 편해질거라는 남편의 말에 그냥 그러자고 했다. 본인 직장도 가까워져 1분이라도 더 의존할 시간을 주겠다 했다. 진심으로 설득 당했다기보다 그냥 멍 한 상태에서 끄덕였던것 같다. 당시 나의 유일한관심사는 시험관 시술 정도 였으리라.


그렇게 압구정이지만 개똥이집을 계약하러 갔다. 남의편은 복비 조금이라도 깎아보자고 의지를 다지며 나의 서비스직 전공을 살려 옆에서 웃고 앉아있으라했다. 그래 영혼없는 웃음팔이와 리엑션 보좌정도는 할 수 있지. 지난번 우연히 스쳐간 집주인 손자손녀 얘기를 기억해내 쿠키를 들고 복덕방에 도착했다.


압구정 주인님과의 첫 대면이었다. 상상속 화려함보다는 독실한 신앙생활에 태생적 기품이묻어나는 분들이셨다. 본인들은 여기 큰 평수 사시다 서초동 새아파트로 가셨고 개똥(있는 세입자전용 )집은 언젠가 한강뷰로 리모델링 되면 자녀 입주를 고민시켜볼 터이니 맘껏 살라고했다.


  처음보는, 삶의 여유가 느껴지는 찐어른의 모습들 이었다. 이것 저것 소소한 보수가 필요하다는 말에 다 원하는대로 하시라 했다. 종이값이라며 복덕방 실장에게세월묻은 가죽 지갑에서 빳빳하고 노오란 지폐를 척척 내어주실 때에는 몇만원 깎아보겠다고 들고온 쿠키처럼 마음 한켠이 바스러지기도 했다.


 그렇게 계약은 끝냈다. 아무도 준 적 없지만 부끄러움을 한껏 안게 되었고 이제 그만 집에가서 표정을 풀고싶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웃고있는 나에게 주인님은 식사를 제안하셨다. 도비는 자유의지가 없어 무조건 반사처럼 "네 감사하죠"라고 했다.


근처 만두집에서 따뜻한 만둣국을 시켜주시고 안정적 직장을다니며 열심히 사는젊은 부부를 칭찬해 주셨다. 감사하고 자분이 되었다. 그런데 순간순간 모난 노예는 너무 안쓰러워서 희망이라도 가지란 소리로 듣기도했다.


 그리고 배우신 주인님의 과거사를 경청하며 세입자들의 눈에는 눈물이 조금 맺혔었으리라. 돌이켜보건데 그때가 뿌옇던 이유는 압구정에 입성한들 가질 수 없는 , 진실로는 여유가 없는 부부의 현실이 감정을 바닥으로 중력질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뿜어져나오는 만두 연기속에 설움을 조금 희석하여 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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