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지훈이 매일 아저씨네 커피숍을 찾는 이유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어서였다. 테이블 두 개가 고작인 작은 가게임에도 사장 아저씨는 오래 앉아 있다고 눈치를 주지 않았다. 프로디지나 린킨파크 같은 하드코어 음악을 크게 틀어놓거나 추가 주문을 요구하는 다른 커피숍들과는 달랐다. 그런 곳에서는 두어 시간쯤 앉아 있다가 스터디 카페나 사설 도서관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서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오후 세 시쯤 키즈 카페 알바가 끝나면 지훈은 커피숍에 들러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 뒤 자리를 잡고 앉았다. 피시방 알바가 일곱 시부터라 그동안 노트북으로 인강을 듣거나 문제집을 풀었다. 장사가 잘되는 집도 아니어서 테이크아웃 손님이 이따금 들를 뿐이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늘 태평해 보였다. 달랑 삼천 원짜리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제집처럼 눌러앉은 지훈이 못마땅할 법도 한데, 싫은 내색은커녕 눈이 마주칠 때마다 빙긋 웃어주곤 했다. 어떨 때는 슬쩍 다가와 지훈의 빈 머그잔에 커피를 채워줄 때도 있었다.
얼굴이 야위고 마른 체형이어서 조금은 까다로운 분일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호의를 베풀면 대가가 따르는 법인데 아저씨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무슨 공부를 하느냐, 몇 살이냐, 그 나이에 그런 공부를 하려면 힘들지 않느냐는 식의 말들, 그 순간만큼은 자기들이 우월하다는 인식에 젖어 내뱉는 말들에 지쳐있던 때였다.
한 달쯤 지나 지훈은 문득, 자신이 이곳에 매일 오는 이유가 다른 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어서, 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장 아저씨가 들려주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멜로디를 흥얼거리다 오후 알바 시간을 놓친 적도 있었다. 주로 조용하고 잔잔한 연주곡들이었다. 가사가 없는 음악에 익숙지 않아서인지 그래서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계산할 때 힐긋 보니 주방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북으로 직접 음악을 선곡하는 듯했다. 주방 천장 구석의 작은 스피커에서 아저씨가 고른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아저씨는 종종 고개를 들어 스피커를 골똘히 올려다보았다. 평소에도 그는 지훈이나 손님들을 대할 때 상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도 구분하지 못하는 지훈이 보기에도 음악에 대한 조예가 남다른 분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집중해서 듣다 보면 악기 소리가 조금씩 다르게 들렸다. 바이올린은 아침햇살처럼 투명하고 유연하다가도 찢어 버릴 듯 고음을 내질렀다. 그럴 때면 그 미세한 떨림에 소름이 돋곤 했다. 반면 첼로의 소리는 생김새만큼 묵직한 울림으로 온몸을 감싸안았다. 지훈은 자신이 그토록 음악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없이 그 시간에 빠져들었다.
그때까지도 지훈은 자신이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진득하지 못하고, 중심 없이 솔깃하고, 이런저런 말들에 쉽게 흔들리는 한심한 백수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순간의 감정으로 욱해서 전공을 바꾼다거나, 애써 편입한 대학을 그만두거나 시류에 휩쓸려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취업 노선을 갈아타다 보니 어쩌면 그런 평가를 받아도 당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를 견디고, 이부자리에 누우면 똑같은 내일을 떠올리곤 하던 이전과 달리 커피숍에서 들었던 음악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커피숍 내부 구조나 딱딱한 의자의 질감 같은 건 잘 기억나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멜로디의 느낌만큼은 또렷했다. 어디선가 들은 노래 가사가 불쑥 하루 종일 입안에서 맴돌 때처럼 독주곡의 선율이 환청처럼 따라다녔다. 기억을 더듬다 보면 거짓말처럼 마음이 고요해져서 새벽까지 잠을 설치던 이전과 달리 눈을 뜨면 아침이 되곤 했다.
피시방 알바비가 입금되던 날, 지훈은 사장 아저씨에게 줄 선물을 사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 지가 너무도 오랜만이라 며칠 밤을 인터넷 쇼핑창을 뒤적이며 고민했다, 선물을 받고 기뻐할 아저씨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뜻밖의 선물이라서인지 아저씨는 기대와 달리 조금은 당황한 듯 보였다.
“무선 이어폰이에요. 음악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지훈이 수줍게 선물 상자를 건네며 말했다. 내쫓지 않아서 진심으로 감사했다고,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말도 보탰다. 아저씨는 말없이 상자를 들여다보더니 노트북에 무언가를 타이핑 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손님의 마음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제게는 어울리지 않는 선물인 것 같군요.
아저씨는 계속 화면에 글자를 쳐서 보여주었다.
-저는 보시다시피 듣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다행히 입 모양을 읽을 수는 있지요.
아저씨가 청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지훈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러면 그 많은 음악들을 어떻게 선곡하신 건가요?”
지훈은 내심 긴장이 됐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순 없지만, 상상할 수는 있어요. 입 모양을 읽는 것처럼 손님들의 표정을 읽는 것이죠. 다양한 표정을 보면서 연주곡의 느낌을 떠올리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좋은 곡을 듣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답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나오는 곡은 비올라 독주곡이 아닌가요? 라고 물었다.
직접 선곡한 곡이니 당연히 알고 있겠구나, 했는데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동으로 재생된 곡이었다.
-비올라는 대체로 중후하고 낮은 소리를 낸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손님은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눈을 감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시더군요. 매번 그러셨어요. 그 표정을 보면서 저는 곡의 제목을 확인하고, 비올라의 선율을 상상하곤 했죠. 손님은 못 느꼈을지 모르지만 방금도 잠깐 그런 표정을 지으셨어요. 그러니 선물은 오히려 제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저씨는 여느 때처럼 빙긋 웃어 보였다. 그런 뒤에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라인더에 원두를 담기 시작했다. 곱게 간 원두를 종이필터가 꽂힌 드리퍼에 부은 뒤, 커피가 충분히 적셔지도록 방금 끓인 뜨거운 물을 조심스럽게 떨구었다. 처음 맡아보는 향긋한 커피 향이 진하게 퍼져 나왔다. 아저씨가 정성스럽게 내려준 커피를 들고 지훈은 습관처럼 매일 앉던 자리로 가 앉았다.
여지없이 음악이 흘러나왔다. 뜨끈한 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던 그는 문득 눈을 감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