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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우어 Nov 08. 2023

전무님과 @@의원의 콜라보

나를 채찍질하는 그들

 

알바를 시작한 지 어느덧 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포스기 앞에 서면 여전히 작아지지만 다른 것들은 손에 익어서 두려운 게 없다. 주문이 쏟아질 땐 고도의 집중력으로 주문사항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 배민, 배민 1, 요기요, 요기요 요기, 쿠팡이츠 이 5가지 경로의 배달 주문과 네이버 주문, 어플 주문까지 머리 아팠던 주문 방식에 적응했다. 중간중간 키오스크 주문과 전화주문 고객까지 순서가 꼬이지 않게 정렬하는 일머리도 어느 정도 갖췄다.


 하지만 언제나 복병은 있는 법...

전무님이 오실 때와 @@의원의 배달주문이 동시에 들어오면 잘 돌아가던 머리가 순간 멈춰버린다.


 일주일에 두세 번 매장에 오시는 전무님은 보증된 vip고객이다. 실제 그의 직급은 모르지만 부하직원을 대동하고 오는 50대로 추정되는 그를 우리 마음대로 전무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한두 명의 부하를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키오스크로 돌진한다. 메뉴가 생소한 일행에게는 샐러드 종류부터 토핑까지 상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그가 vip인 이유는 기본 샐러드에 항상 2가지 이상을 추가 주문하기 때문이다. 주로 채소를 두 번 추가하고 토핑으로 연어나 고기류를 추가한다. 그의 부하들도 그의 추천대로 채소와 토핑을 추가하니 우리에겐 고정된 vip고객이다. 그뿐인가 수프와 음료까지 빠지지 않고 주문해서 빈틈 하나 없이 쟁반에 가득 차려진 음식의 풍성한 자태가 나를 뿌듯하만든다. (채소의 상태가 한시적으로 나빴던 여름장마철엔 온전한 채소를 골라내기가 평상시보다 두 배는 힘든데, 꼭 채소를 추가로 시키는 그가 좀 원망스럽기도 했던 건 비밀이다.)


 전무님의 깐깐한 주문에 집중하다가 또 다른 vip고객의 주문이 들어오면 초 긴장 모드가 된다.


 그곳나름 중심가에 위치한 @@의원, 일명 공장형 피부과이다. 적게는 6개부터 많을 땐 16개의 메뉴를 주문한다. 보통 12개 내외로 주문이 들어오는데 배민 주문서가 세 뼘을 채우는 날이 많다. 헷갈리지 않도록 형광펜으로 메뉴 하나하나 표시하고 만든 건 재빨리 X 표시를 해둔다. 그나마 따로 토핑을 추가하거나 빼달라는 요청 사항은 거의 없는 순정의 주문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보통 비닐백으로 배달 포장이 나가지만 이곳은 커다란 종이 쇼핑백이 필요하다.( 아직 난 종이백 포장은 해보지 못했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 비닐 포장만 가볍게 들고 가는 기사님들도 이곳의 종이 쇼핑백 배달은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잘 부탁드린다는 점장님의 당부가 더해지니 아마 더 신경 써서 가리라.




 이렇게 전무님과 @@의원의 주문 콜라보레이션은 안일한 나를 한순간에 정신무장 시키는 사령관 같은 존재다. 제대로 집중하라는 무언의 채찍질이요, 나의 업무 능력을 시시때때로 평가하는 테스트다.  산적해 있는 메뉴를 기계처럼 휙휙 처리하다 보면 말이 없어지고 한숨만 옅게 내뱉게 된다. 테스트가 무탈히 끝나면 토할뻔했다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점장님과 동료와 잠시 아아 한잔과 초코바 따위의 간식을 먹으며 긴장을 푼다. 누군가와 팀이 되어 같은 공간에서  일종의 성취감과 안도감을 느끼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


오늘도 우 무사히 해냈어!!







#알바#vip#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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