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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재 Jun 06. 2023

[편론] <썰전>을 보고서 적은 교육에 대한 고찰

어느샌가 TV라는 매체에서 멀어져 버린 나지만, 그런 내가 다시 보기로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jtbc의 <썰전>이다. 최근 <썰전>의 보수 논객이 전원책 변호사에서 박형준 교수로 바뀌었는데 이 변화가 가져온 영향을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나는 단연코 긍정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전원책 변호사가 있던 시절에도 <썰전>은 그 나름의 영역에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썰전>의 방송 초기부터 시청해왔던 입장에서 현재의 진보-보수 논객 라인업은 그동안의 어느 파트너 조합보다 안정감 있게 느껴진다. 박형준 교수가 썰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보수주의자의 태도와 가깝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인식되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 논쟁에서 보수주의자들의 태도는 사실 강경하고 고집스러우며 기득권을 옹호하는 수구주의자라는 편견 섞인 이미지에 부합했다. 그러나 박형준 교수가 유시민 작가와 나누는 토론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두 패널이 가진 전문성과 지적인 깊이 그리고 토론을 성숙하게 이끌어 나갈 줄 아는 지식인으로서의 성품마저 보는 사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느껴진다. (<썰전>의 패널들이 다른 방송에서 간혹 보여주는 전문성이 결여된 논평이나 발언도 있었지만 <썰전>에서만큼은 그들의 논평이 상당히 수준 있고 전문적인 것처럼 보인다.) 특히 유시민-전원책 조합의 <썰전>에서 조금은 과격했던 전원책 변호사와 그런 상대를 부드럽게 받아주며 토론을 해왔던 유시민 작가의 진보-보수의 양상이 지금의 조합에서는 완전히 뒤바뀐 느낌마저 든다. 오히려 유시민 작가가 진보적인 입장을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표현하면 박형준 교수는 부드럽게 그것을 받아주면서 자신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펼칠 줄 안다. 이것조차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던 진보-보수의 논쟁에서는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구도이기도 하다.

  사실 이 글을 적게 된 이유는 단지 썰전을 재밌게 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주 썰전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온 토론 주제인 “외고-국제고-자사고 폐지 문제”에 대한 두 사람의 토론을 보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고 싶은 이유에서다. “외고-국제고-자사고 폐지 문제”에서 시작한 두 사람의 토론은 우리나라 교육 전반에 걸친 문제 인식을 나누는 것까지 발전해 갔다. MC 김구라가 마지막에 말했던 것처럼 오랜만에 힘들었던(?), 썰전다운 명품 토론을 볼 수 있었다.

  오늘 방송을 통해 본 진보와 보수는 어쩌면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방식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육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로 사실 두 패널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목적은 같아 보였다. 다만 유시민 작가는 박형준 교수의 태도를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고 비판했고 박형준 교수는 유시민 작가의 주장이 다소 과격하다고 비판했다. 유시민 작가는 진보 논객으로서 현행 교육제도가 가지는 사회 구조적 문제와 폐단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대학의 왜곡된 역할을 끊임없이 지적했다. 나 역시 유시민 작가의 주장처럼 현재 대학의 왜곡된 사회적 기능을 바로잡는 것이 교육 개혁에 있어 필수적인 것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또한 교육 정책과 방향을 논하는 사람들이라면 박형준 교수의 주장과 같은 교육의 이상향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시민 작가가 말한 것 같이 교육의 본질에 대해 논의할 시간은 앞으로도 충분하지만 현재의 교육 제도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을 위한 즉각적인 조처가 시급하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유시민 작가가 이 주장을 할 때 본인이 고등학생의 학부모 입장이라고 어필하는 것이 그의 주장에 큰 설득력을 더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적어도 교육 정책의 결정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면한 현안 대책뿐만 아니라 교육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역시 시급한 일임을 충분히 인식했으면 좋겠다.

  박형준 교수는 교육이란 5년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50년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격언이 친숙하다. 두 문장이 시사하는 점은 교육이 그만큼 오랜 시간을 준비해야만 하는 것이며 그 결과나 영향 역시 장기적인 안목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한 세대 전에 결정된 교육 정책에 영향을 받고 한 세대가 지나야 이 사회의 주축이 되며 그들의 사회 활동의 결과물은 다시 한 세대가 지나야 만 제대로 드러나게 된다. 때문에 교육의 현안을 논할 때에는 반드시 장기적인 (때로는 이상적인) 안목에서 교육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이는 사실 무엇보다도 시급한 논제가 된다.

  내가 교육학을 공부하려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교육이 왜 중요한지, 그 중요한 교육이 대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 우리 사회의 교육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이미 교육의 본질이 아닌 피상적인 교육 현상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교육의 개혁은 교육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교육의 사회적 담론을 형성할 때 우리는 지금보다 교육 전문가들에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권위를 존중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담론의 형성을 위해 나는 교육학을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다음으로 내가 박형준 교수의 토론의 내용 중 가장 공감했던 주장은 ‘수업의 개혁’과 ‘교사에 대한 투자’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은 현행 제도의 폐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이다.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교육의 모습을 설정하고 현재의 제도를 그 이상에 맞게 점진적으로 조정해가는 것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현재 가장 필요한 변화가 바로 ‘수업 개혁’과 ‘교사에 대한 투자’ 두 가지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리고 교육이란 그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할 수 있는 모습으로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썰전>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육의 형식은 특히 수업의 형식은 산업화 시대에 제도화되었던 것이다. 형식을 바꾸지 않은 채 그 안에서 내용만 시대적 필요를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최근에서야 수업의 형식에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지만 시대적인 흐름에서 볼 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우리가 교육의 문제를 개선하려고 할 때 가장 쉽게 떠올리는 방법이 입시 제도의 개혁이다. 그러나 입시 제도의 개혁은 박형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위로부터의 개혁이며 이는 때때로 (사실 꽤나 종종) 정책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문제점을 야기한다. 그래서 나 역시 교육 현장에서 먼저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우리가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어야 할 것은 입시가 아니라 시대에 맞는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수업의 형식과 교사의 권위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내가 논의하고 싶은 주제는 바로 ‘공교육’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어째서 교육이 공공 영역에 속하는 것을 이토록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현재 우리 교육의 문제를 보다 명확하게 진단하고 개선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한다. 문명화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이 사회의 계층 이동에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혹은 기준마다 다양할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답해야 한다면 나는 교육이 인간 본연의 활동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인간은 무지(無知)의 상태로 세상에 태어난다. 그리고 이 무지(無知)는 교육을 통해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길을 열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교육을 받아야 하고 공공의 영역에서 그 기회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공교육을 바로잡는 것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이 될 수 있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사람을 바꾸어야 하는 일이고 사람을 바꾸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이 교육을 바로잡는 것은 교육 현장의 최전선인 공교육의 ‘수업’과 ‘교사’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 이상 우리 사회는 공교육 특히 수업과 교사에 투자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 <썰전>에 나온 유시민 작가와 박형준 교수의 토론을 바탕으로 쓴 글이므로 중간중간 토론 패널의 의견을 인용하고 그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글이 전개된 부분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그들의 주장은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 내용의 연결이나 주장의 근거가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문이 생기는 분이 있다면 jtbc <썰전> 170720 방송분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17.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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