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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주의자 앨리스 Apr 05. 2024

길에 똥 싸는 것을 보고 말았다

꿈이었다면 횡재라며 복권을 샀을 텐데

일주일에 한 번은 걸어서 출근한다. 그러다 보고 말았다, 앞서 가던 사람이 바지를 내리고 똥을 싸는 걸. 30m 앞에서 윗옷을 걷어 올릴 때만 해도 설마 했다. 그러다 순식간에 하얀 엉덩이를 보이며 쭈그리고 앉더니 똥을 뚝 떨어뜨렸다. 0.01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미처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적나라한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다행인 건 옆모습이라 엉덩이 골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연관어로 '길에 똥싸는 꿈'이 뜨는 중에 똥 목격담이 있었다. 그런 일이 많은지 여러 사연과 함께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는 말이 많았다. 내가 싼 것도 아닌데 왠지 안심이 되었다. 똥을 싼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 옆에 있는 장애인보호작업장의 사원으로, 인사를 주고받아 본 적은 없었지만  오고 가는 모습을 자주 봤었다. 

길가였으니 걸쳤던 옷이라도 펼쳐서 그를 가려줬어야 했나? 화장실을 찾지 못하더라도 길은 벗어나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도와야 했나? 뭔가를 해야 했었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나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장애인 지인의 노상방뇨를 목격했다면 아는체를 하지 않는 태도가 매너있는 모습이었으리라. 그러니 이 오지랖이(실천하지 않았지만) 장애인을 향한 차별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나보다 어린 이, 약자에게 그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할 때가 있다. 얕은 지식으로 훈계와 충고를 하고 나서 후회를 한다. 내 경험과 지식는 그들에게 습기먹은 나무 문처럼 문틀에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소리 같을 텐데. 내가 나고 자란 세상은 현재와 달라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른 곳이니 말이다. 

장애인이라고 달라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장애인이 보고 듣는 방식을 짐작하고 생각과 느낌을 추측할 뿐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를 설명하듯 그들에게 해법이라며 맞지 않는 옷을 강요한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자신이 싼 똥은 그들이 치워야지. 나는 매너있게 못 본체 하면 되는 일이고. 나는 길에 똥을 싸지 않으면 되는 일이고. 근데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용감한 시민이 되어 지적하고 신고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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