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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주의자 앨리스 Oct 23. 2024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김유담의 소설집 『탬버린』을 읽고

 김유담의 소설집 『탬버린』에는 고향과 부모를 떠나 살아가는 이삼십 대 지방 여성 청년의 삶을 그린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 속 여성 청년들은 모두 삶을 개선하려는 욕망을 지녔다. 이를 위해 어려운 가정 형편을 고려하여 비교적 학비가 저렴한 지역 대학에 진학하라는 가족의 요구를 무시하고 이기적이라는 비난에도 꿋꿋하게 서울 지역 대학으로 진학한다. 하지만 서울로만 가면 충족될 줄 알았던 결핍은 여전히 그들의 삶 구석구석에 박혀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지닌 결핍은 넉넉지 못한 가정의 경제적· 정서적 사정과 서울에 살지 않는 지방 청년이라는 데서 기인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가정 폭력을 일삼거나 사업에 실패한 자신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권위를 내세우며 공격적으로 변한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아내이자 주인공의 어머니들은 가정 경제를 책임지면서도 남편 앞에 동등하지 못하고 폭력에 순응한다. 가부장적이면서 여성의 희생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성장의 기회도 나아질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반면 서울은 기회의 땅이며 가능성이 열린 공간으로 여겨진다. 실제 우리나라의 수도권에 과잉 집중된 사회적 부와 가치, 인프라 구성이 지방의 젊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듯 소설 속 지방 여성인 주인공들도 서울로 향한다.


 첫 번째 단편 「핀 캐리」에서 주인공 인숙은 오빠의 죽음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오빠가 사라진 집에는 어머니를 때리며 폭력을 행하여 오빠에게 내쫓겼던 아버지가 병들어 초라한 몰골로 인숙을 맞이한다. 인숙은 자신이 떠나 있던 시간에 오빠가 살아온 흔적을 따라간다.  「공설운동장」에서 하경은 바라던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을 시작했지만 고된 서울살이와 월세, 학비를 해결하지 못한다. 심한 위염을 앓는 채로 대학 2학년에 휴학을 하고 고향에 돌아와 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우리가 이웃하던 시간이 지나고」라는 영주는 대학원에 다니며 독일학회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치과 진료 비용으로 이를 인해 포기해야 한다. 비용이 싼 치과를 찾던 영주는 그곳에서 덴탈코디네이터로 일하는 고향 동생 성희와 재회한다. 「탬버린」은 직장 회식에서 노래방 기계로 100점이 나올 때까지 세 번, 네 번, 다섯 번 반복하여 탬버린 연주와 노래를 해야 했던 은수 이야기를 전해준다. 「멀고도 가벼운」에서 지연은 서울에서 대학 졸업 후 어렵게 취업했지만 사회 부조리 속을 떠돌고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보았던 자신의 엄마에게 휘둘리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강단 있게 행동하던 보배 이모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하려고 애쓰지만, 변화는 쉽지 않다. 애를 써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고 참고 견딘다고 좋아지지도 않는다. 서울에서 보통이라고 여기는 중산층의 생활이 주인공에게 전혀 보통일 수 없다. 떠나온 자리에서 뽑혀 들려진 뿌리는 도착한 곳의 허공에 들려 표류한다. 


 소설은 청년들의 고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를 그린다. 아름다운 미래를 암시하지 않으며 성공의 방법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암울한 현실에도 주인공들이 내일을 향해 발을 내디디며 삶을 계속 이어가려는 의지가 있음을 알릴 뿐이다. 


 소설을 읽고 나서 이삼십 대 청년들과 과거 이삼십 대의 나를 위로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가볍게 위로의 말을 소리 낼 수 없었다. 청년기를 지나 그 후의 삶을 살아 지금에 도착한 나는 삶이 녹록한 순간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비가 온 다음 날이 화창하게 개기보다 더 세찬 비바람이 부는 날씨로 이어지는 게 삶이니까.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내놓을 수 없는 답을 소설은 책임지고 알려주고 있다. “지금 이 시간이 나중에 후회로 남을지 그리움으로 남을지 아직은 예상할 수 없었고, 우리 모두에게 너무 많이 후회되거나 그리워지는 순간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두고두고 후회, p276). 삶이 징글징글한데도 살아가는 이유를 제시하지 않지만 견뎌낼 힘을 전해준다. 후회로도 그리움으로도 남겨두지 말고 그 순간을 흘려보내는 것, 삶의 해답이나 위로는 나중에 삶의 끄트머리에서나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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