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우리 반 학생이 자살 시도를 했다. 마음이 쿵 내려앉은 내가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은 바로 학교 위클래스 상담실이었다. 그 학생으로 인해 위클래스 선생님을 여러 차례 만나면서, 담임인 나 또한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선생님은 파악하셨던 것 같다. 위클래스 선생님은 우리 반 학생에게는 자살위기학생 심리상담 및 치료비 지원 프로그램을, 담임인 나에게는 일대일 교원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연결해주셨다.
물론 나 또한 내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는 있었다. 눈 딱 감고 신경정신과를 가서 의사에게 제대로 상담받아 볼까. 아니면 강남에 유명하다고 하는 사설 심리상담센터 등을 방문해볼까.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한 두 번 돌린 게 아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약사 친구가 병원 방문 기록은 평생 남는 것이니 정말 신중해야 한다고 한 조언이 불현듯 떠올랐다. 상담을 위해 시간당 10만 원 이상을 지불하기에는 현재 받는 교사 월급이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나의 편협된 관점에서 이익-손해를 계산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위클래스 선생님이 소개해 준 일대일 교원 심리상담 프로그램은 교육청이 사업비를 지원하여 상담사가 학교로 직접 찾아와 나와 단 둘이서 총 10회기로 진행되는 무료 프로그램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한 번 해 보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을 신청하기 위해 부장교사, 교감, 교장의 결재라인을 거쳐야 했으므로, 그들에게는 '나 지금 힘들어요!' 하고 알리는 꼴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후 두 종류의 상담을 동시에 받게 되었다. 하나는 자살위기학생 상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 학생의 담임교사로서 그 학생을 돕기 위한 상담. 나머지 하나는 그 학생 일과는 별개로 신청한 일대일 교원 심리상담. 전자의 상담은 담임교사로서 학생이 혹여나 아픈 선택을 다시는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충실히 참여했지만, 후자의 상담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했다. 무료 프로그램이라는데 혹시 방문상담사가 '전문가'스럽지 않으면 어떡하지. 괜히 내 개인정보가 다른 곳에 떠벌려지는 것 아니야. 모르는 사람과 단 둘이서 10번 만나는 거면 10시간짜리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 아닐까.
첫 상담일에 상담사를 테스트한다는 못된 심리로 아래의 글을 적어 갔다. 글을 통해 내담자가 만만치 않은 사람임을 보여주면서, 이 글에 대한 상담사 반응을 관찰한 후 기대한 피드백이 없으면 10차례를 모두 진행하지 않고 애초부터 끊어낼 마음으로 말이다. 물론 한편으로는 혹여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교육학 이론으로만 배웠던 심리상담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 하는 기대도 살짝 있었다. 글을 미리 써 가면 나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데에 시간도 아끼고, 첫 만남부터 눈물을 안 흘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 반 의심 반이 아니라 기대 1 의심 99의 심정으로.
1. 상담 신청 계기: 심리적, 신체적 문제 등으로 현재 나의 상태가 어떤지(병원을 방문해보아야 하는지? 수많은 심리검사 중 어떤 검사가 나에게 적합한지?) ‘전문가’로부터 객관적인 진단(평가)을 받고 싶음
가. 심리적 문제: 번아웃(소진, 방전, 탈진) 증상, 매일 학교를 그만두고 싶고 교사는 나와 맞지 않는 불행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가득함, 휴직할 방법에 대해서만 생각함, 근무 시간 중간에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 실제로 몇 번 실행했다가 산책 후 다시 돌아오기만 수 차례 반복함.
나. 신체적 문제: 너무 답답해서 숨이 잘 안 쉬어질 때가 있음, 안압 매우 높음, 어깨 및 목, 손목 결림, 항상 긴장 상태, 커피로 매일 각성,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피부 가려움증
2. 본인 소개
가.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쭉 정리했음.(삭제)
나. 성격: 과거 외향적에서 현재 내향적으로 변화함. 배우는 것을 좋아함. 최선을 다하고 좋은 결과물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큼. 내가 ‘못한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무리할 때도 있었음. 가식과 위선을 혐오함. 본인만의 삶의 기준과 틀이 견고하다고 가족이 (부정적으로) 이야기함. 좁고 깊은 교우관계를 선호함. 보통 경청하는 편이지 대화를 주도하지 않으나, 친한 사이일수록 말이 많아짐.
3. 교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든 까닭
가. 교사를 꿈꾸던 시절의 교사 모습과 현실의 교사에 대한 괴리감이 너무 큼. 고등학교 교사임에도 수업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근무시간 중 없음. 만족할 수 없는 수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절망감. 퇴근 후부터 밤을 새워가며 수업 준비하던 습관을 (피부 가려움증이 너무 심하여) 201X 년도부터 겨우 놓음. 퇴근 후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여서 현재는 수업 준비 시간이 많이 줄었음. 주말을 활용하여 수업 준비를 해 왔으나, 주말에 수업 준비하는 것도 이제는 기쁘거나 설레지 않고 힘듦. 놓아버리고 싶음.
나. 근무시간 중 아주 사소한 것들(심지어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다고 보이는 것들)로 느껴지는 것의 무한반복 행동. 사소한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면, 매일 학급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지각 조퇴 결과 결석을 반복함. 오늘은 A, B, C, D, E, F, G, H학생이 미인정지각함, 미인정지각한 학생 및 학부모에게 연락하지만 답 없음, I학생 2교시 미술학원 간다고 미인정조퇴함, J학생 및 K학생은 3교시에 두통 복통으로 질병조퇴함, L학생 미인정조퇴함, 아침에 학교 안 온 G, H학생이 4교시에 등교함, D, E, F학생은 차례로 6, 7교시에 왔으나 수업에 안 들어가서 결과 처리됨, A, B, C학생은 7교시까지 학교 안 와서 지금까지 5번 전화했으나 전화 안 받고 부모도 연락 없음 등, 이로 인해 출석부 및 나이스 기록을 수시로 해야 할 사항이 생김... 이 상황이 매일 반복됨.
다. 과도한 클릭질이 포함된 과도한 행정업무: 그동안 학교에서 해왔던 XX, XX, XX 업무 등은 단 하나의 오차도 발생하면 안 되는 일이었음. 학교는 온라인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데 이로 인해 단순노동(무한 클릭질 반복...) 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음. 오른쪽 손목, 어깨, 허리, 목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림. 내가 교사인지 행정 지원사인지 행정실 직원인지 전혀 분간이 안 됨. 또한 방대한 분량의 매뉴얼을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꼼꼼히 읽어가면서 해내야 하므로 부담이 큼. 업무도 매년 변경되었으며, '유능'하다는 이유로 매해 모든 선생님이 지원하지 않은 기피업무로 배정됨.
라. 30대 중반 약 10년 경력의 미혼 교사를 학교의 입장에서는 소위 “부려먹기 좋은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 속상함. 올해 학교 처음 이동하자마자 XX선생님이 나이, 경력, 결혼 여부를 물어보시면서, “경력도 쌓였고 결혼도 안 했고 딱 일 잘할 시기네.”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음. 앞으로 남은 교직 생활이 약 30년인데, 그 미래가 너무 암울함. 나는 평생 다른 사람이 기피하는 일들만 하다 교직생활을 마칠 것 같아 끔찍함.
4.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를 그만두는 결단을 못 내리고 지금까지 겨우겨우 버텨온 이유
가. 교사 이외에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없음: 교사를 그만두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여 실제 대학원을 가서 연구(공부)를 시도해보았으나 부족함을 많이 느껴 석사까지 마침. 교수님은 계속 박사 공부를 해서 교수직을 권유하셨으나, 자신이 없어 중도 포기. 하지만 아직도 그 끈을 놓지 못해 관련 교재 작업 등을 하고 있음. 혹시나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박사 공부를 도전하기 위해 2018년부터 외국어를 다시 배우고 있으나, 학교 생활과 병행하다 보니 마음먹은 만큼 쉽지 않아 이도 좌절. 명상, 요가 등 내적 수행 및 활동에 관심이 많아 2019년부터 꾸준히 요가 수행을 하고 있고 요가 강사 등에 도전해보려 했으나 신체적 유연함이 없어 또 좌절.
나. 수업 구현이 잘 되었을 때 성취감이 매우 크며 학생들은 본인 수업을 좋아하는 편임. 학생들에게 있어 좋은 교사로 비추어져서 감사함.
다. 교사 직업에 대한 외적 매료도도 무시하지 못함. 일 년에 두 차례의 방학이 있고(물론 업무 상 방학을 반납하고 출근해서 일하는 경우도 다수였지만), 교직에 있는 딸은 부모님의 유일한 자랑거리며, 이 롤러코스터 같은 불안정한 시대에 여전히 안정적인 직종에 해당함.
일단 상담사는 놀란 눈치였다. 나같이 철저한 내담자는 처음이라면서. 처음엔 나의 모든 글에 대해 최대한 공감해주셨다. 정말 힘드셨겠어요. 예견된 반응이었다. 나는 재빠르게 내 요구를 말씀드렸다. 상담 신청 계기가 적혀 있는 1번 부분을 가리키며, 현재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신경정신과에 가는 게 좋을까요? 혹시 제가 미래를 다시 설계한다면 저에게 꼭 맞는 진로심리검사나 현재 심리 상태를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검사지 등을 추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상담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XX(내 이름)씨는 이게 문제예요. 지금 본인이 이렇게 아프고 힘든데,
왜 '객관적으로' 아픔을 증명받으려고 하세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어버버 하다 보니 약속시간인 1시간이 금방 흘렀고 1회기가 끝났다.
그 이후로도 상담 선생님을 매주 만날 때 경계하는 마음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성격 상 정말 친한 친구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나의 진짜 커다란 아픔과 고민을 잘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가 머뭇거릴 때면 선생님은 종종 자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나보다 몇 살 아래의 따님이 파혼(...)한 이야기도 해주셨다. 본인이 하고 있는 업인 상담 일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씀하기도 했다. 5회기가 넘어가면서는 참고 참던 눈물을 펑펑 흘렸다. 원래 만남은 총 10회기였으나, 코로나 방역 문제 등으로 마지막 한두 차례는 선생님과 만나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그 사이 재외 한국학교 교사 합격자 발표도 났다. 아래 문자는 선생님과 나눈 마지막 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