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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전 Nov 13. 2022

서울대 사범대 출신자들은 뭐 할까?


나는 괴로웠다. 학교에 있으면서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기분에 항상 휩싸였었다. 혹여 내가 걸을 길이 있나 하고 주변의 서울대 출신 선배 교사들을 관찰해보았다. 물론 아래 분류는 반드시 서울대 출신이여만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며, 동문을 전수 연구한 결과도 아니다.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나누어보았을 뿐이다. 



1. 승진한다. 학교 안에서 그 어렵다는 평정에서 최고 점수를 받아 교감-교장이 되는 경우도 있고, 수업의 전문가인 수석교사가 될 수도 있고, 별도 시험을 봐서 장학사로 임용되는 방법도 있다.


2. “전공”을 살려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각종 학회에 논문을 투고하는 연구자의 길을 걸어 대학 교수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 특정 기관의 연구원이 된다.


3. 평교사로 있으며, 단위학교 바깥에서 “전공”을 살려 각종 다양한 일들을 한다. 수능이나 전국연합 학력평가 출제라든지, 교과서나 각종 문제집・교재 집필이라든지, EBS 강사나 대학 시간강사 등을 병행한다든지.


4. 평교사로 있으며, 단위학교 안에서 각종 행정 일을 도맡아 하며... 자연스럽게 1번으로 가서 승진한다.


5. 평교사로 있으며, 육아에 전념한다.



다섯 가지 루트에 대해... 과연 나는?


1번. 나는 승진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고 욕먹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자리가 높아질수록 책임 또한 커질 텐데, 생각만 해도 갑갑하다.


2번. 박사 입학을 포기했으므로 2번은 실패했다. 석사를 마치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유학이라는 선택지가 있을까 하여 외국어 공부를 계속하며 기웃거려봤으나, 외국어로 전공을 살려 인문학 논문을 쓴다는 건, 하.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한국어 석사 논문도 쓰다가 죽을 뻔했는데. 운 좋게 어찌어찌 졸업을 했다 쳐도 생기가 없어진 내 모습이 매력적이지 않았다.


3번. 운 좋게 여러 기회가 주어져 도전해봤다. 전공 관련 문제집과 교재 집필, 교육청 단위의 학력평가 출제 등. 그런데, 재미없었다. 아니, 잘하지 못했다.


4번. 교사의 본연은 가르침에 있다는 생각 일념으로 행정 업무를 극도로 싫어한다.


5번. 육아는커녕 결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미혼이다.



1번부터 5번까지의 동문 선배들의 길은 각자 나름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실 테지만, 내가 따르고 싶은 길은... 없었다. 혹시나 교사를 그만두면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는 바람에서, 우리 학교 사범대 출신 주변 지인 중 교직 이외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생각해봤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입학할 때부터 교사를 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교사를 준비하는 이가 10명 중 2명 꼴이었으니.

 


국내파와 해외 유학파로 나뉘어 박사과정까지 계속해서 공부하며 대학 교수나 연구원 등을 준비한다. 그리고 대부분 목표를 달성하는 것 같다.

공무원을 한다. 행정고시를 통과한 5급 공무원부터 7, 9급 공무원까지.

학원에서 일한다. 연간 수 백억 대를 버는 잘 나가는 강사도 있고, 자그마한 동네 학원의 강사도 있으며 재수 학원 강사도 있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서울권 대학 교직원이 된다.

경영・경제학과 등을 복수 전공하여 대기업, 금융업 등 연봉이 높은 직군에 취업한다.

사시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사법고시 응시, 이후에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하여 변호사 등 법조인이 된다.

드물게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의사가 된다.

드물게 기자로 활동하는 등 언론 쪽에서 일을 한다.

육아에 전념한다.



아쉽게도... 어느 하나 따를 곳이 없었다...


어느덧 교사만을 편협하게 고집하던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나, 전공 선택이 잘못되었나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만일 아니라면 얼른 정신 차리고 그만둬야 할 것 아닌가. 물론 원서를 넣을 당시에는 성적에 맞춰서 학과를 선택하긴 했으나, 계속 공부하다 보니 전공과목 공부가 재미있어서 그 누구의 강요 없이 관련 학과 교사는 내가 선택한 길이다. 하지만... 내가 간절히 원해서 오게 된 교직 생활이, 여러 가지 이유로(이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풀어 놓을 예정이다) 신나지가 않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내 인생을 보내야 하는가.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갑갑하고 하기 싫고 즐겁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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