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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Dec 06. 2022

지도 만들기 챌린지

지도로 보는 시선


나는 영국에서 지리학과를 졸업했다. 지리를 전공했다고 하면 한국에서는 지역별 특산물, 해외에서는 색연필로 지도 그리기, 만국 공통으로 세계 지리와 수도 암기에 특화되어 있냐고 물어본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대학까지 가서 지역별 특산물을 외워서 뭐가 남는단 말인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공부가 하기 싫어 딴짓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 해의 대학 수학능력시험 문제지를 구경한 적이 있다. 사회탐구 쪽 과목 시험지는 대충 다 훑어보았고, 한국지리와 세계지리 시험지는 조금 더 자세히 봤다. 왜 한국에서는 아무도 지리를 공부하지 않고, 사람들이 지리학이 뭔지 감조차 못 잡는지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수능 과목은 해석의 여지를 없앤 객관식 문제만 출제하기 때문에 사회과학 같은 경우에는 정말 문제가 재미없을 수밖에 없다. 사회과학은 다양한 해석이 중요한데 확립된 사실만 암기해서 보는 시험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쯤 되면 지리학이 대체 뭔데 이렇게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건지 궁금할 것이다. 사실 만나는 사람마다 나한테 묻는 질문인데, 아직까지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쉽고 간결하게 지리학의 매력을 느끼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애매모호하게 답을 하자면, 여러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리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다양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유명인 중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 박정자 역으로 나오는 김신록 배우,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 2014년 방영을 시작한 JTBC 예능 "비정상회담" 초기에 나왔던 제임스 후퍼, 영국의 총리였던 테레사 메이 등이 지리학과를 전공했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 네 명을 보면 지리학을 공부해 봤자 진로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마이클 조던을 제외하고는 전부 지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신록 배우가 출연한 "지옥"이라는 작품은 최근 몇 년 동안 본 드라마 중에 가장 인상이 깊었던 작품이다. 모든 것에 규칙을 부여하고 옳고 그름을 나누려는 인간의 습성이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지옥"의 큰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며, 우리가 불편해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꼬집어 낸다. 지리학 또한 여러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게 하고,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김신록 배우가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개인적인 궁예 일뿐이다. 그리고 제임스 후퍼나 테레사 메이는 좀 더 흔히 지리학과 출신들이 가는 진로를 선택한 경우이기 때문에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내가 나온 대학은 굉장히 오래되었고, 정통적인 학문을 배우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같은 과를 전공하더라도 어느 학교에서 배우느냐에 따라 배우는 것이 많이 달라진다. 우리 학교 같은 경우에는 취업을 준비해 주기보다는 박사나 교수까지 할 학문적 인재를 양성하려는 목적이 강한 곳이었다. 물론 똑똑한 친구들은 알아서 졸업 후 취업을 했지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어서 취업을 회피하고, 이후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대학원을 갔다. 대학원에서는 학부 때 공부한 학문적인 "공간 정보 시스템"(GIS -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을 넘어 좀 더 실용적이고 보기 좋은 지도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다른 과 수업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저널리즘 교수들이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데이터 저널리즘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 수업은 코딩을 해본 적 없는 학생들이 조별 과제를 통해 웹사이트까지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수업이었다. 조별 과제는 주어진 주제로 기사를 작성하되, 전형적인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스크롤리텔링"(Scrollytellling) 형식의 기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스크롤리텔링"은 "스크롤"(scroll)과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합성어다. 웹페이지를 "스크롤"해서 보는 이야기인데, 시각적인 효과가 섞여 들어간 형태의 기사다. 한국의 언론사에서는 이러한 형식의 기사를 제작한 것을 본 적이 없는데, 해외에서는 스크롤리텔링 위주로 기사를 올리는 언론사들이 있다. 데이터 분석 기법과 그래픽이 들어가는 스크롤리텔링 기사는 하루 이틀 만에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보통 속보보다는 한 가지 주제를 깊게 파고들 때가 많다. 이 수업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라고 표현한 것은 지도를 개별적으로 보기보다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로 해석하며, 여러 가지 기술력이 더해져 창의적으로 독자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최근 온라인 지도를 제작하는 회사 맵박스(Mapbox)에서 일하는 토피 추카노프(Topi Tjukanov)라는 지리학자이자 개발자가 2019년에 시작한 "30일 지도 챌린지"(30 Day Map Challenge)를 알게 되었다. 이는 매년 11월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챌린지이고, 날마다 주어진 주제에 맞춰 한 달 동안 매일 지도를 제작하는 챌린지이다. 참여는 아무나 할 수 있다. 올해는 챌린지 진행 중에 이 챌린지를 알게 되어 참여하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해볼 생각이다. 그전까지는 브런치를 통해 나 스스로에게 비슷한 도전을 안겨주기로 했다. 나에 대한 글을 쓰되, 나의 일부를 표현할 수 있는 지도를 함께 제작하여 글을 작성하여 올리고자 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도를 만들며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관심사를 지도로 표현하고 이에 대한 스토리텔링까지 덧붙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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