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p the Soul
나는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는 꽤나 신경을 쓰는 편이다. 외적인 부분을 신경 쓰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신경 쓴다. 남들이 편견을 갖고 나를 바라보는 것이 싫으나, 동시에 “보편적인”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도 대학교 때부터는 이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어릴 때는 선생님한테 혹은 부모님한테 혼나기 싫어서 열심히 했고, 해외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하여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시험 성적이 낮게 나오면 분에 못 이겨 집에 가서 울었었다. 그래도 고등학생이 되니 생각이 좀 더 넓어지고 한국식 공부에 감이 생겨 더 이상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욕심을 내서 공부를 하면 성적이 잘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 공부에 흥미를 붙였다.
방과 후 자습실에서 공부하고 밤 10시 이후 아무도 없는 초록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올 때 희열을 느꼈고, 중학교 때 발목을 잡았던 수학도 고등학교 때는 1-2등급이 나와 수학에 대한 트라우마도 사라졌다. 그 당시에는 정해진 틀에 맞춰진 삶이 나와 잘 맞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주어진 틀 안에서 열심히 하면 인 서울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고, 대학 가서 열심히 스펙을 쌓으면 적당히 좋은 직장에 가지 않을까. 나도 어느샌가 보편적인 한국인처럼 사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들이 하는 걸 다 따라서 하는 걸 싫어하는 기질은 멀리 가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돈과는 거리가 있는 직업과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는 화가가 되고 싶었고, 중학교 때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고 인류학과에 지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남들 따라 외고 지원서를 넣을 때 흔한 외고 지망생이 원하는 외교관이 아니라 자소서에 장래희망을 문화운동가라고 작성했었다 (당연히 외고는 떨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갔더라면 이런 성향은 뒤로하고 경영, 회계, 경제학과 중 하나를 전공으로 택했을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희망 학과 이야기를 할 때 그런 전공들을 언급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문헌정보학과나 회계학과, 경제학과를 언급했고, 담임 선생님께서는 직업으로 변호사는 어떠냐고 하셨는데 변호사는 뭔가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을 많이 할 것 같아서 싫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적당히 돈을 잘 벌 수 있는 것을 할지 사이에서 고민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네덜란드로 이사를 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더 폭넓은 선택지가 생겨서 한국에 있을 때보다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 때 지리를 선택하면 바르셀로나로 답사를 간다길래 사회과목 하나로 지리를 선택했다. 그 당시에는 이게 전공으로 이어질 선택이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원한다면 이공계열도 고려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다니던 학교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내가 수학 성적이 제일 좋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참고로 절대 외국이라고 수학 수준이 낮지 않았다. 나는 우리 학교에서 고를 수 있는 수학 과목 중에 제일 난이도 있는 과목을 선택하여 벡터랑 지금은 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이과생이 대학 초반에 배우는 수학도 조금 배웠었다. 하지만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더 좋아했던 지리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이렇듯 나의 학창 시절은 대학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지, 해외에서 살고 있는 나 자신의 입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대학을 가고 나서 깨달았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 해외에서 오랜 기간 체류했으나, 부모님과 함께였고, 아버지 회사에서 여러 지원을 받아 편하게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대학 때문에 영국에서 혼자 기숙사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그게 와닿지가 않았다.
어릴 때도 필요 이상으로 걱정이 많은 편이었으나 고등학교를 거처 대학을 간 이후 내 정신건강에 무리가 갈 정도로 걱정이 심해졌다. 더 이상 부모님의 보호를 받고 정해진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내가 알아서 생존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졸업 이후 영국에 머물기 위해서는 취직을 해야 했으나 그 당시에는 영국에서 대학을 나오면 그 이후로 몇 년 간 체류를 할 수 있는 비자가 없었기 때문에 비자를 지원해 주는 회사에 일을 구하지 않으면 영국에 더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어서 이 고비를 대학원 진학을 통해 몇 년 간 미루기로 했다.
사실상 취업 준비를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대학원에 지원한 것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학 졸업을 몇 달 앞둔 시기에 처음 코로나가 터져서 급하게 짐을 싸서 한국에 있는 친척 집으로 갔다. 그 해 가을 대학원에 바로 입학할 수 있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추가 비용 없이 입학을 1년 미룰 수 있어서 입학을 미뤘다. 그렇게 해서 생긴 1년 동안 한국에서 인턴도 해보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하며 지냈다. 배움이 느린 나에게는 그 1년과 지금 하고 있는 석사 과정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또다시 취업이라는 난간이 코앞에 들이닥쳤다.
대학원 때문에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영국에서처럼 지내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어 생각을 가벼이 했다. 아무리 순화해서 표현하려고 해도 거지 같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이곳은 그렇구나"의 태도로 받아들였고, 타인에게도 매우 관대하려고 노력했다. 뉴욕에 와서 처음 만난 한인 중 한 명은 이렇게 별로인 곳은 처음이라며 욕하는 것을 보고 이해는 했으나 그 당시에는 완벽하게 공감을 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1년 반이 흘러간 현재의 나는 그 분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 여기 와서 만난 사람 중 가장 현실을 객관적으로 잘 파악하는 사람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너무 욕만 하면 힘들기 때문에 적당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내 기준으로 이해가 가지 않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욕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지만 너무 욕을 많이 하면 또 현타가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이나 상황 욕을 하다가 나 자신이나 잘하자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딱 그런 상태이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논문 쓰고 취업이나 해야지 남 욕할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내 상황에만 집중을 하면 또 온갖 걱정이 뇌를 지배해서 쉽지 않다. 최근 몇 년 간 생각을 비우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으나, 요즘 들어 다시 오만 잡생각이 들며 필요 이상으로 나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이번 글에는 이러한 잡다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단순한 일러스트로 표현하려고 한다.
내 고민들을 쭉 적어봤고 일부러 단계를 구분 지어 필기했다. 이 고민들을 등고선처럼 표현하기 위해서다. 아래 그림은 어떤 식으로 지도를 만들지 구상하는 단계에서 아이패드로 대충 그려본 것이다.
실제 지도는 푸른색으로 만들었고, 일반적인 등고선처럼 중앙으로 갈수록 위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명암을 통해 고민이 아래로 깊어지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완성된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내 머릿속 지도이다. 전혀 지도처럼 보이지 않지만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저번 글이나 이번 글에 올린 지도는 일반적이라고 보기엔 살짝 억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다음 글에는 실제 지도 데이터를 이용한 지도를 만들어서 올릴 예정이다.
사실 이 글도 몇 주 전에 구상한 것이라 현재는 위에 적어둔 고민 중 1/3 이상이 해결된 상태이다. 그래서 이런 자잘한 고민을 깊게 해 봤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렇게 오버를 해야 나중에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