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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Dec 13. 2022

내향인의 생존 방식

언제나 거리 두는 삶


나는 내향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이다. 사람은 기질적으로 타고난 특성과 환경에 의해 변화하는 성격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그걸 구분할 필요가 없을 만큼 기질적으로나 성격적으로나 I이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번에 만든 지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도로 넘어가기 전에 내가 얼마나 내향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인지 말을 해보자면, 예전에 JTBC의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에 핀란드 게스트가 버스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1미터 이상 떨어져서 대기하는 사진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지낼 때도 혼자 있을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고, 기계와 대화하는 것마저 불편하고 시끄러워서 아이폰의 시리 설정은 절대로 활성화시키지 않는다. 이쯤 되면 도대체 친구는 존재하며,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는 가끔가다 사귀고 오랫동안 소수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에게 대부분의 에너지를 할애하면 되는 것이며, 사회생활은 정말 피곤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기를 충전하면 소화할 수 있다.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할 말은 또 굉장히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썰을 풀 친구들이 꼭 필요하다.


최근에 공공데이터포털에서 재미있는 데이터 없을까 하고 살펴보다가 문화체육관광에서 올린 부산광역시 맛집 정보 SHP 파일을 발견하게 되었다. SHP 파일은 shapefile의 줄임말로 ESRI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지리적 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만든 파일 구조이다. 이 파일만 있으면 ArcGIS나 QGIS 등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손쉽게 데이터를 읽어 지도를 제작할 수 있다. 아무튼 이 맛집 정보 파일에는 150여 개의 부산 맛집들 위치가 들어있다. 나는 이 맛집들 위치를 그대로 두지 않고 맛집들이 대충 어느 지역에 모여있는지 보여주는 히트맵(Heatmap)을 만들었다.



맛집을 보여주는 지도인데 왜 디자인이 이 꼴인지 궁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부산 맛집 밀집 지역"이라 쓰고 반 농담으로 "부산에서 내가 피해야 할 지역"을 그려놓은 지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산 거주민이 아니라 관광객으로 부산을 놀러 가는 나는 항상 저 지도에 표기된 동네 위주로 여행을 가지만 부산 거주민이었으면 저 주요 관광지들은 내 성격상 가지 않을 것 같다.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하자면, 중학교 때 전염병을 확산시켜 세계를 멸망시켜야 하는 핸드폰 게임을 잠깐 했었는데 세계 지도를 보며 붉은색으로 전염병이 얼마나 퍼졌는지 보며 진행시켜야 하는 게임이었다. 그 당시에는 참 새디스틱 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만든 게임이라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굉장한 예지력과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그 게임을 개발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 게임을 접한 이후로 붉은색 히트맵은 좋지 않은 것의 밀집을 표현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실제로도 범죄나 인구 밀도 등을 히트맵으로 많이 표현하곤 한다.


또 개인적으로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사람이 많을 것 같다고 예상이 되면 남들이 가지 않는 시간대에 맞춰 방문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한 거리 두기가 한창일 때, 5시에 종묘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남들이 저녁을 먹는 7시에 익선동에 있는 유명한 카페에 가서 놀았던 적이 있다. 이처럼 시간대 별로 달라지는 인구 밀도가 드러나는 지도를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다음에 해봐야겠다.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맛집에 대한 악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싫어하는 내향인에게는 맛집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피해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만든 단순한 지도일 뿐이다. 모델 및 방송인이자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주우재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인스타 맛집"이다. 물론 맛있는 음식은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맛집이라고 프레임을 씌워 모두가 "꼭 가봐야 한다"라고 하는 곳은 피하기 상책이다. 줄을 서는 맛집은 더하다. 줄을 서야 할 만큼 음식에 진심이지도 않고 줄을 서는 동안 앞뒤로 사람들 사이에 끼여있을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우연히 웨이팅이 없는 유명한 맛집에 가게 된 것이면 몰라도 내가 스스로 인스타에 맛집이라 검색을 해서 식당을 찾아갈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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