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집으로 걸어오면서 아이들을 많이 봤어.
공원 놀이터에서 소리 지르며 뛰놀고 해맑게 웃으며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저 웃음은 진짜일까'
책에서 봤는데 인간이 태어나면서 제일 처음 느끼는 감정이 '분리감'이래. 엄마 뱃속에서 엄마와 하나가 되어 살아가다가 세상으로 나오면서 느끼는 감정.
엄마와 분리된 느낌, 엄마 뱃속에서 쫓겨나고 버림받은 듯한 느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뿌리는 저거인 것 같아. '버림받은 느낌' 말이야. 그래서 아기들이 태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울음인 거 아닐까?
어쨌든 내가 왜 아이의 웃음에 의문을 가졌냐면, 내가 어릴 때 그랬거든. 정말 어린 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사랑받고 예쁨 받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를 열심히 꾸며냈지. 해맑은 척,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기쁨인 척. 별로 재밌지 않았는데도 과장해서 웃고 다니고 재밌는척하고 다녔던 것 같아.
유치원을 다닐 때 나는 정말 어렸지만 어떻게 하면 선생님께 예쁨 받는지, 인간관계를 어떻게 주무르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 그래서 영악하게 굴었던 적도 많았던 것 같아. 그때 나의 영악함의 시작도 저 '버림받은 느낌'이었던 거 아닐까? 태어나면서 경험한 '버림받은 듯한 느낌'이 너무 아팠어서, 다시는 그걸 경험하지 않기 위해 해맑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버림받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 거지.
그래서 해맑게 웃는 아이들도 사실은 그냥 나처럼 버림받지 않기 위해 해맑음이라는 가면을 쓴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어.
어쩌면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우리가 겪는 모든 순간들이 다 가면이지 않을까. 과연 내 삶에서 내가 진짜였던 순간이 있었을까...
하다못해 나는 우리 집 강아지 앞에서도 가짜였던 것 같은데
혼자 쓰는 일기장에서 조차도 100% 진짜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다면 단 한순간이라도 진짜여보고 싶다. 그냥 '나'이고 싶다. 조금의 거짓도 없는 온전한 나로 존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나이고 싶어. 너를 찾고 싶어.
간절히 바라. 나는 그저 너이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