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의 뉴욕일기
그의 그림을, 그의 글을 보다 보면 이상하게 슬퍼진다. 그리 슬픈 이야기가 담겨있지도 않고 누군가를 울리고자 하는 목적이 없는 것이 확실함에도 눈물이 나고 슬프다.
요즘의 내가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고 걱정도 많고, 또 우울해서일까. 김환기의 글과 그림이 위로를 해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평범한 말과 다정한 단어들로 이뤄진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동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나의 상황과 감정이 무언가를 만났을 때 딱 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 예술은 언제나 내게 무한한 감정을 주었다. 물론 매일이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그 예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순간과 상황에 예술을 만났을 때, 예술은 언제나 고마운 존재였다. 예술은 자신의 자리에 있다. 그리고 난 준비가 되었을 때 혹은 우연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예술을 꺼내보면 된다. 그렇게 김환기의 뉴욕 일기가 오늘의 나에게 꺼내진 것이다.
p. 39
1967년 10월 13일
내 재산은 오진 ‘자신’뿐이었으나 갈수록 막막한 고생이었다. 이제 이 자신이 똑바로 섰다. 한눈팔지 말고 나는 내 일을 밀고 나가자.
그 길밖에 없다.
이 순간부터 막막한 생각이 무너지고 진실로 희망으로 가득 차다.
p. 44
1968년 1월 26일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 문한 무용 연극 모두 다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
p. 70
1970년 1월 12일
고생하며 예술을 지속한다는 것은 예술로 살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을 믿기 때문이다. 고생이 무서워 예술을 정지하고, 살기 위해 딴 일을 하다가 다시 예술로 정진이 될 것인가.
p. 163
1973년 4월 8일
일을 하며 방송을 듣자 하니 “Pablo Picasso died this morining at agee 91.” 태양을 가지고 가버린 것 같아서 멍해진다. 세상이 적막해서 살맛이 없어진다. 심심해서 어찌 살꼬. 전무후무한 위대한 인간, 위대한 작가, 명복을 빈다.
p. 173
1973년 10월 8일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 보다.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