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탄생 110주년 기념전
올해 여유로운 시간이 생기기를 바랐던 이유 중 하나였던 환기 미술관.
급한 마음에 그저 둘러보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여유시간이 생길 때까지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 한 해가 끝나기 직전 환기미술관에 다녀왔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는 길에서는 낮은 건물들과 그 사이사이에 있는 작은 갤러리들이 만들어낸 오목조목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김향안 여사가 수화를 위해 만든 이 공간이 왜 여기 위치해야만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지금 환기미술관에서는 수화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걸작인 점점화를 주제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수화는 김환기의 호이다. 자연을 사랑했던 그의 마음이 수화라는 호에 담겨있는 것 같아 김환기보다 수화로 부르는 게 더 좋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받은 입장권을 사용하면, 위 사진에서 보이는 스티커 형식의 환기미술관 입장권을 준다. 그러면 이걸 잘 보이는 곳에 붙이고 각 전시관을 관람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본관이었다. 환기미술관은 본관과 별관, 그리고 달관으로 이루어져있다.
본관에서는 이 전시의 메인인 ‘점점화’를 볼 수 있다. 김환기의 그림은 실제로 봤을 때만 느껴지는 감동이 있다.
그가 뉴욕에서 서울을 생각하며 한 점 한 점 오만가지 찍어낸 점들은 그의 마음이 담겨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 어느 점도 허투루 찍힌 것이 없었다. 점들을 이루는 물감의 농도, 색의 진함과 옅음, 퍼짐의 정도. 각기 다른 점들이 모여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다. 멀리서 보면 우주가 보이고 가까이서 보면 점들의 옹송거림이 보였다. 점 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자꾸만 그의 그림을 찾는 것 같기도 하다.
김환기의 작품은 대부분 제목이 없다. 그래서 더욱 자유롭게 그림을 보고 느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위 그림을 감상하면서도 그랬던 것 같다. 수많은 점들을 배경으로 흰 선과 큰 점이 찍혀 있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 각자 자기만의 세상을 갖고 살아가고 그 세상들은 또다시 하나의 세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혼자만의 공간과 사람들과 공유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 내가 철저히 세상과 떨어져 혼자라고 생각되어 힘든 삶을 살더라도 결국 우린 연결될 수 있다는 것. 많은 위로를 받았다.
화제란 보는 사람이 붙이는 것. 서러운 생각으로 그리지만 결과는 아름다운 명랑한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
1972.09.14 김환기 일기
점을 찍어내는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고된 노동이었다고 한다. 허리를 굽히고 하루 종일 한 점 한 점 심혈을 기울여 찍는 예술의 과정. 점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가 그리는 것만큼 아름답지만은 않은 듯 하다.
본관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래서 더 좋았다. 오롯이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다음으로는 달관, ‘수향산방’으로 갔다. 이 공간은 김환기의 방을 재현해 ‘예술가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시관 내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뉴욕 아뜰리에, 수화의 방에는 점을 향한 수화의 마음이 보였다. 수없이 노력하고 계속해서 그려냈던 것들이 있었다. 예술을 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환기에게 그림은 그의 삶이었을 것이다.
수향산방 안쪽에 관람객들의 마음을 적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 분이 써두고 가신 수화의 말이 기억에 남아 한 장 찍어왔다. ‘꿈은 무한하고 삶은 모자라고’ 환기가 했던 말이다.
아트샵에 있던 화일에 프린트 된 수화의 글.
김광섭의 시 <저녁에>이다. 수화의 글씨는 참 멋지다.
수화만큼 향안을, 아니 어쩌면 향안을 더 좋아해서 김향안과 관련된 책 두 권을 사서 돌아왔다.
아껴두고 한 장 한 장 읽으며 그녀의 마음에 조금 더 다가가보고자 한다.
향안에게 보내는 수화의 편지에 향안의 이름을 수없이 다른 글씨체로 써내려 간 것이 굉장히 귀여웠다. 향안을 사랑하고 귀여워하고 애정했던 수화의 마음이 보였다.
<월하의 마음(김향안)>을 읽을 때 ‘비트라유’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수화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환기 미술관을 지으며 설계했던 그 비트라유. 실제로 보니 그 아름다움이 장관이었다. 간결한 선에서 강렬한 마음이 느껴졌다.
수화 김환기의 첫 점화 <겨울의 새벽별>은 현재 작품으로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그의 일기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겨울의 새벽별>. 얼마나 멋진 작품일까 매우 아쉽다.
총 3층으로 이루어진 환기 미술관의 본관은 건축물 자체로서도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향안의 글에서 어렴풋이 기억을 되살려보면 ‘3층으로 된 건물,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개방감’ 등의 단어들을 봤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 공간이었다. 1층부터 3층의 모든 공간이 자신의 공간을 가지면서도 다른 공간과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었다. 수화의 그림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