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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 Feb 22. 2023

작은 마을의 작은 글_ 책방(小里小文)

책방에선 인생샷보다 인생책을 만나세요


책에 집중하는 서점입니다.
책과 친하지 않은 분들은
기필코 친하게 해 드립니다.
책과 이미 친하신 분들은
더 깊은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 책방 소리소문 小里小文 (작은 마을의 작은 글) -


'책방'이라는 단어는 왠지 서점보다는

소박하면서도 조용한.

더불어 나지막하게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힐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서점과 동일어임에도 불구하고 어감의 차이인 건지 그냥 나의 개인적인 느낌인 건지 모르겠지만

'책방'이라는 단어부터 왠지 마음에 쏙 든다.


처음에는 sns로 우연히 책방 사진을 보고 그 공간에 쉽사리 매료되었다.

그러다가 책방지기님이 가끔 올려주는 '글'들은

짧지만 강력하게 마음에 남았고, 그런 책방지기님이 가꾼 공간은 어떨지 보고 싶어졌다.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각과 숨결이

담긴 그 '공간'말이다.


다시 한번 ‘글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조용한 어느 동네였다.

차보다는 저벅저벅 걸어가는 것이 더 어울릴법했던 구부러지고 좁은 길 끝에 다다랐을 즈음 차곡히 쌓인 돌담 사이로 외딴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지독한 길치인 내가 몇 번을 헤매고서 마주한 그곳에 '책'이라는 큰 덩어리의 활자를 확인하는 순간,

하마터면 '만세'를 외칠뻔했다.


그곳은 마치 어린 시절 외할머니댁에 온 것 같은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흙냄새는 마당에 있는 먹지도 않은 귤나무의 귤을 따먹은 것 마냥 상쾌했다.

(실제로 귤밭은 책방 소유가 아니라 귤을 따먹으면 절대 안 된다는 안내가 되어있다.)


모든 것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꽤 다녀간다는 것 외에는.

큰 숨을 내쉬는 것, 책장을 넘기는 일조차도 조심스러울 만큼 혼자였던 나에게 집중이 될 법했지만

나보다 책과 공간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필사하는 공간에 앉아 서걱서걱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 책장을 걷어보는 사람, 책방을 돌며 배회하는 사람, 책장에 기대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

가지각색의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활자들에 둘러쌓인 그 공간을,

그리고 그 공간의 가득찬 공기를 만끽했다.


덧붙여, 엄마에게 끌려온 듯한 어린아이들은 몇 번의 발악 끝에 아빠에게 질질 끌려나가기도 했다. (끌고 나간 아빠도 마당에 나가서야 표정이 피는걸 보니 끌려온건 어린아이들만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구미가 당기는 책은 또 왜 이리 많은 걸까.

 '역시 난 책에 관심이 많은 지적인 사람인 건가.'라는 착각도 잠시. 가만 보고 있자니 구석구석 책방주인님의 놀라운 마케팅이 허를 찌른다.

그(혹은 그녀)는 아마 '장사의 신' 일지도 모른다.


나의 가슴팍에 뜨끈하고 단단한 덩어리들의 책들이 함께 묻혀 나온 걸 보면.




책방지기님의 sns<책은 보고 싶고 손 타지 않은 책은 사고 싶고>은 그저 독자에 그치지 않았던 내게 조금 놀라웠고, 나는 과연 어떤 독자였는지 돌아보게 했다.


대부분의 서점은 독자들이 편하게 책을 읽고 구입할 수 있게끔 모든 책을 오픈한 상태로 운영하는데

독자들은 자유롭게 책을 읽고 싶은 욕구는 있는 반면에 자신이 살 책은 손이 타지 않은 책이길 원한다는 것이다.

실컷 책을 보고 계산대로 간 뒤 “이거 새 책 있어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물론 서점에 있는 모든 책은 새 책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닐테지.

끊임없이 신간이 쏟아져 나오고 진열되어 있는 책들은 계속해서 변하는데 열악한 책 마진 구조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대한 관리를 잘하고 책이 빨리 순환되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책방지기님의 가지고 있는 팁은 꽤나 흥미로웠다.

보통 같은 책이 3~4권 진열되어 있으면 90%의 손님들은 두 번째 책이나 세 번째 책을 꺼내게 된다고 했다.

당연히 첫 번째 책이 손이 많이 탔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독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반대로 항상 맨 위에 새 책이 진열되게끔 관리한다고.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도 이게 책방 운영의 현실이구나 싶기도하여 어느새 쓴웃음이 난다.




그 글을 이미 보고 온 터라 나는 몇 번째에 진열된 책을 골라야 할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사람들이 본인의 글을 보고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맨 위의 책을 또 반대로 진열하는 심리게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를 덧붙여 남겼기 때문이다.

나는 손에 잡히는 맨 위의 책을 집어 서너 장쯤 훑어본 뒤 그 책을 그대로 구입했다.  
또 다른 보고 싶었던 책 한권은 책방지기님께 찾아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손때가 조금 묻은 책으로 골라주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내가 사고자하는 것은  지적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덩어리가 아니라 조금 낡더라도 그 안의 지혜와 위안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블라인드책. 그리고 필사 공간 (photo by 미상)


책방지기님의 당부가 무색하게 인생샷을 건졌다.

물론 인생책도.



책방에선 인생샷보다 인생책을 만나세요
-책방 소리소문(小里小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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