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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 Oct 30. 2023

아무튼, 책



#책변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모로 놀라움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지, 머릿속에 둥둥 정처 없이 떠다니는 조각들을 어찌 이렇게 정갈한 덩어리로 뽑아낼 수 있는지 그저 경이로울 지경이다. 그 와중에 가장 놀랍게 마주하는 것은 단연 나의 무지함이었다.


한평생 ‘말’을 하고 살아왔지만 모르는 ‘말’ 투성이인 세계에서 이토록 많은 ‘말’들의 존재를 새삼 실감해야 했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보통 앞뒤 문맥상 흐름으로 어휘의 뜻을 짚고 넘어가기 마련이나, 언제부터인가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며 나의 무지함과 당당히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이상한 쾌감에 휩싸이며 짜릿짜릿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는 기분 좋은 느낌을 받는다.


지막 문장의 조합을 보니 왠지 모르게 변태스러운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소멸되지 않는 마일리지 적립

©unsplash


'독서는 첫 페이지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보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멈출 곳을 찾는 것이다.' 김종원 작가의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뼛속까지 들어와 나를 사정없이 흔들고 찌르는 문장들을 발견한다. ‘아!’하는 짧은 탄성과 동시에 나는 또 작가에게 반해버리고 만다.


기어이 독서의 흐름을 끊고, 재빨리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옮겨 적는다. 

짧은 흐름이 끊기는 것도 싫을 때는(발췌하고 싶은 문장들이 끝도 없이 수두룩 튀어나오는 책들이 있다) 사진을 찍어두고 그 이후에 옮겨 적는 경우도 다. 반해버린 작가의 문장이 내 것이 된듯한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 한참을 허우적거리곤 하는데

기분이 꽤나 괜찮다.


차곡히 모은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수북이 쌓인 마일리지 같다.  다른 점이라면 내가 모은 마일리지는 아무리 닳도록 보고, 써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더 커지고 확장된다는 것. 비행기를 탈 때, 비행기모드에서는 더 빛을 발했다. 애정하는 나의 문장들로 함축되어 나만의 최애도서집이 된다. 데이터 따위 필요 없다.


“왜 거기서 멈췄니?” 나의 메모장에 적힌 수많은 활자사이에서 나의 영역은 더 넓혀져 간다.






#지켜보고 있다 ‘책날개’

©unsplash


책의 겉표지에 연결되어 고이 접혀있는 책날개. 책의 양끝을 펼치면 팔랑팔랑 날개 같아서 책날개인 건가?


대부분 앞쪽 책날개에는 저자 소개, 책 소개가 실려있고, 뒤쪽 책날개에는 도서 시리즈, 출판사의 추천 도서 목록, 서평 등의 내용이 실려있다. 처음에는 책날개를 책갈피 용도로 사용했으나 책날개가 휘고 붕 뜨며 처음 깔끔한 모양의 자태를 잃어가는 게 거슬렸다.


낡은 종이의 질감, 손때 묻은 세월의 느낌을 뿜어내는 책을 좋아하는 매니아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소장책이라 할지라도 인상 깊은 문구에 형광펜을 쭉쭉 그어놓으면 간편할 일을, 얇고 길쭉한 인덱스를 한 장씩 뜯어 행간을 맞추고 끝부분은 가위로 깔끔하게 잘라내어 길이까지 맞춰 표시하는 제법 비효율적이고 성가신 작업을 하는 편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책의 모양을 망가트리는 책날개보다는 책갈피를 훨씬 더 선호한다. 그러다 가끔 급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책날개를 책갈피 삼아 중간 페이지에 끼워두기도 하는데, 앞 책날개에서 뒷 책날개로 넘어갈 때의 짜릿함이 또 한몫을 한다.


책날개에 작가의 얼굴이라도 떡하니 박혀있을 때면 ‘어때요? 내 책 볼만합니까?’라며 감시받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작가의 눈을 다정하게 마주치며 ‘쏘 굿! 설거지 끝내고 다시 돌아올게요.’라는 사인과 함께 책을 살포시 덮는다.






#도서관,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가


©unsplash


빼곡한 책장에서 느껴지는 종이 냄새가 좋다.

이 공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있을까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묵직해지는 마음이다. 종이의 촉감과 넘기는 소리가 좋다. 여유로우면서도 조심스러운 사람들의 발걸음이 좋다. 서로를 의식하지 않은 채로 묵묵히 배려하고 배려받는 곳. 이토록 많은 것들이 나의 것이 아니면서도 어쩌면 나의 것이라는 그 느낌이 좋다. 
 
우연히 읽은 책은 나를 다음 책으로 안내했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책은 보통 한 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리즈물, 후속 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다음 읽을 책이 정해지는데 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식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도서를 기간 내에 읽기 위한 혼자만의 조용한 싸움과, 소장하고 싶어 나에게 온 지 한참이 되었지만 펼쳐지지 않은 채 고이 기다리고 있는 책들 사이에서 나는 늘 안달이 난다.






#쾌락은 어디에서 오는가


미간을 찌푸리고 검지 손가락 하나는 곧게 세운채 휴대폰 화면에 빨려 들어갈듯한 친정엄마는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보다 더 짙어진 주름에 사뭇 집중한 입이 봉긋 솟아올랐다.
휴대폰에서는 ‘착착’ 찰진 소리가 들려오고 뒤이어 “고도리”를 외치는 앳된 목소리가 쾌활하게 울려 퍼진다. 나이 든 엄마의 주름에 마음이 아려오기도 전에 쾌활한 음성과 동시에 화사해지는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거짓말처럼 엄마의 주름이 사라졌다.

책을 보는 나의 얼굴을 누군가 본다면 저런 표정일까.


집중하느라 봉오리같이 앙다문 입술은 따사로운 햇살을 만나 꽃잎을 펼치듯 조용히 벌어지고, 경직된 근육들은 서서히 이완되어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지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고 맞고를 치거나 동물얼굴을 터트리며(내가 알고 있는 얄팍한 게임의 세계) 느끼는 쾌락을 책으로 얻는 것이다.
책에서 나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글귀라도 마주하는 순간이면, 수많은 동물들의 얼굴이 줄지어 팡팡 터지며 폭죽을 터트리는 그런 느낌. 소장하고 싶은 어휘의 조합들을 볼 때면 '원고'에 '쓰리고'까지 못 먹어도 고! 느낌으로 붕 떠오르는 마음이다.
시간이 지난 뒤 쌓여간 게임머니나 하트들은 쓰고 나면 사라질 것들이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고요하고 깊게 내 안에 오래도록 머무른다.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가가 갈아 넣었을 피땀눈물과 정성을 나는 그저 읽어 내려가는 작은 수고로움 하나로 얻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맞고를 치며 상대의 패를 읽는 노력보다, 작가의 의도를 살피는 노력이 더 큰 쾌락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불면증 치료


sns에 ‘낮술에 책’을 즐기는 사진을 보고 ‘바로 이거지.’하며 이마를 탁 치고 말았다. 하물며 평소 좋아하는 작가님의 피드였다.
나에게 ‘술’이라 함은 함께 취하고 즐길 친구와 함께여야 하고,‘혼술’이라 함은 드라마 속 주인공에 한껏 이입된 채로 즐겨왔던 것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술의 곁에 고요함이란 없었다.
반대로 ‘책’이라 함은 적어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나에겐 주변 모든 데시벨을 줄이고 나서야 겨우 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술과 책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아름다운 조합이 아닐 수 없다.

테이블 위로 쏟아져내리는 따사로운 가을햇살을 등지고 앉았다. 나의 작은 몸으로 만들어낸 소박한 그늘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과 햇살의 온기가 더해진 책을 올려두고 괜스레 경건해지는 마음이다.

사실 고백하건대 나는 책을 좋아하면서도 책을 읽으면 그렇게 잠이 쏟아진다. (여태까지 책에 대한 애정을 열정적으로 토로하면서도 책을 보면 잠이 온다는 게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엄연히 별개라고 조용히 외쳐본다.)

그렇지 않아도 활자와 잠 사이에서 무거워지는 눈꺼풀과의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는 내게 술은 더할 나위 없는 승패의 히든카드다. 겨우 붙잡고 있던 종이와 함께 살포시 포개어진다.


우선 잠부터 자야겠다.






#읽지 않을 이유


“요즘 책 많이 읽던데 좋은 책 하나 추천해 줘. 시간 나면 좀 읽어보게.”

언제부터인가 sns에 읽었던 책 피드를 간간이 올렸다. 꾸준히 읽어온 책이 좋았고, 그 책들이 쌓여가는 내가 좋았다. 그것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좋은 문장을 공유하고 싶었다.

아마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면 넷플릭스 드라마 몰아보기 혹은 웹서핑을 했을 거다. (물론 지금도 책 읽기 못지않게 하는 것이지만)
시간이 나서 책을 보는 건 아니다.

단 한 장이라도, 짧은 5분이라도 책 볼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비단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읽는 사람' 그 어느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속에서 책 볼 시간을 마련한다는 건 나를 더 분주하게 하는 것이 아닌 '쉼'을 가져다주는 이유를 알기 때문일 거다.

오히려 바쁜 일상에 과부하가 오지 않도록
기계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활력소가 되도록

책으로 인해 나는 오늘도 한껏 더 충만해진다.

더 넓게 바라보고 더 깊게 사유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에너지를 쏟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매 순간 마주하는 크고 작은 선택들 앞에 좀 더 지혜로운 사람이고 싶.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은 나를 '쓰게' 한다.

스스로에게 가장 손쉽게 줄 수 있는 귀한 선물.
나는 그것들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시간 나면 읽지 말고, 시간 내서 한 권만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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