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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굴씨 Sep 22. 2023

브런치의 독촉독촉독촉독촉 알람

원하는 구독자는 없었으나

몇 개의 공모전과 환절기 감기로 브런치 글 발행을 잠시 쉬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초보가 더더더더더 노오력을 하고 열심히 써야 할 것을.




지인들의 이름이 심사위원에 떡 하니 들어가 있고, 글 쓰는 제자들에게도 투고를 격려하였는데 그 공모전 판에 나도 슬쩍 끼어들어 몇 편의 원고를 던져 보았다. 뭔가 최종 영상을 고려하거나 누구에게 컨펌을 받아야 하는 그런 작업용 글 말고 학부 때로 돌아가 순수한 개인적인 글을 써 보자 했을 때, 가장 먼저 공모전을 떠올렸다. 심사나 하고 있을 나이에 공모전이라니. 

언제나 내게 동기부여를 해 주는 스승님이 계시는데, 십 대에 처음으로 소설을 쓰게 한 분이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단편 하나만 써내라고 해서 , 후다닥 쓴 글이 어마어마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확인할 수 없으니 일단 말하고 보는 거다), 나는 촉망받는 문학소녀가 되었다. 그 기세를 몰아 문예창작학과로(스승님의 강권强勸으로) 진로를 정하게 되었고 가서 망했다. 너무 못 써서. 

대개 행복하고 즐거운 나였지만, 문창과에 가서 하도 기가 죽고 자괴감에 빠진 나머지 순수 문학은 들여다보지도 않겠다고 절필을 선언하고(아무도 안 알아줌) 이런저런 잡글들을 쓰며 청춘을 다 보냈다. 사실, 부끄러운 잡글을 쓴다고 자학에 가까운 자책을 하며 살았지만, 어느덧 경력자의 나이가 되어 보니 이래저래 쌓인 작가로서의 시간과 경험이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다 나의 자산이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 나의 스승님으로 돌아가서, 그분은 이 나이 먹도록 늘 나를 만나면, 


박완서 선생님은 마흔이 훌쩍 넘어서 등단을 하셨어. 늦지 않았어. 너는 내가 아는 학생 중에 가장 글을 잘 쓰는 아이였어. 


하면서 가슴에 문학의 열정을 들끓게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찌어찌하여, 나는 브런치에 입성을 하고 글을 쓰게 되었고, 이 플랫폼에 맞춰 뭔가 하나의 시리즈를 엮어야 했는데 열심히 쓰고 보니 벌레 얘기를 적어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하, 돌고 돌아 벌레 얘기를 쓰고 있다니. 거대 담론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어.


그나마 학부 첫 수업 때, 문학이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글 거울' 연습을 하는 것, 이라는 감명 깊은 교수님의 말씀을 되새겨 자전적 스토리를 쓰기도 했다. 쓰면서 몇 번을 지우고 다시 쓰고 파일을 다 날리고 살리고 난리를 부렸지만 아직도, 여전히 내게는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을 한다. 글의 끝은 아직 남아 있지만 그건 열심히 잘 마무리할 생각이다.

아무튼 나는 벌레 얘기를 열심히 쓰면서도 현타가 올 때면 그 옛날 학부 때처럼 깊고 깊은 자괴감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매체의 특성상 글에 어울리는 사진을 찾고 편집을 하고 업로드를 하는 일들은 또한 디지털 시대에 아직 최적화되지는 못한 혹은 그러고 싶지 않은 아날로그적인 나에게 고된 과정 중의 하나였다.




여전히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부딪히고 깨지고 펴지고 어쩌고 할 때마다 그 번뇌를 파바박 깨 주는 알람이 온다.

하루에 오천자는 쓰겠다는 목표에 열심히 손가락 관절을 혹사시키는 동안, 발행하지 못한 숱한 글 파일들이 노트북 바탕 화면을 꽉꽉 채우는 동안, 언제나 그 동기 부여에는 브런치 독촉 알람이 있다.


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

독촉독촉독촉독촉독촉독촉


아 물론 내게 직접 온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가 구독을 누른 작가님들의 글 발행을 알리는, 내게는 너도 얼른 뭐라도 하나 발행 안 하고 뭐 하고 자빠졌냐는 그런 독촉 알람인 것이다. 

사실 모든 구독 신청이 내가 원해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내 글을 읽어 주는 게 감사해서 눌렀고, 그다음엔 어디서 듣자 하니, 처음엔 열심히 손품을 팔아 구독이나 라이킷을 눌러야 내게도 비슷한 피드백이 온다고 하여 딱 그리하도록 누르기도 했다. 혹은 인기 폭발 작가님의 글에 라이킷을 누르고 구독을 누르며 마치 소녀 시절, 여드름 투성이 얼굴로 변진섭 오빠, 문경은 오빠, 뉴키즈오빠들, 김건모 오빠 등등에 펜레터나 선물을 건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누구나 겪을 법한 브런치 마을의 그렇고 그런 법칙들을 경험하면서 나 역시 브며들어가며 글을 쓰고 있다. 

어떤 작가님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싶을 정도로 글을 잘 썼다. 본업이 아닌데도 이렇게 글을 잘 쓰고 감동을 주고 하, 깔끔하다 깔끔해를 연발하게 되는 그의 문장을 보고 있노라면 또또 그놈의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글 파일들을 껴안고 동굴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떤 작기님은, 어, 이런 글이 왜 인기가 있지? 왜 때문에? 이 숱한 응원댓글과 라이킷은 무어람, 나는 이만큼도 못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종종 여러 글에 언급되는, '암에 걸리거나 이혼을 하지 않는 이상' 부류의 비판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어찌 되었든 모두 다는 아니겠지만 그들은 대개 부지런히 글을 쓰고 있다. 어떤 분은 하루에도 몇 개씩!

나는 글 하나를 쓰는데 시간이 이렇게도 오래 걸리는데, 그들은 대체 무슨 시간에 이런 명문을 만드는 것일까. 하루에도 쉬지 않고 울려대는 저 알람을 꺼 놓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부지런함을 곁에 두려 함이고, 글을 쓰게 하는 동기부여를 붙잡고 있는 것이며, 정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작가님들의 루틴에 따라 울려대는 브런치 알람이 너무나 경이롭고 소중하며 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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