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무계획 제주여행(9) 인생과 여행에 대한 단상 (230117)
오늘은 오전에 부모님 개인 업무를 도와드리기로 했다. 눈을 뜨자마자 한두 시간 정도 노트북 앞에 앉아 일처리를 시작했다. 일처리를 하는 중간에는 아침밥도 차려 먹었다. 그리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창문을 바라봤는데... 정말 나가기가 귀찮았다. 사실 싫었다. 제주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고 뭘 하고 싶지도, 먹고 싶지도 않았다.
일단 누웠다. 눕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까? 딱히 생각을 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니 여행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여행이라고 하면 일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보고, 즐기는 활동들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사실 인생 그 자체가 여행이라고 한다면 어떤 장소에, 어떤 시간에 놓여있든 모든 순간이 여행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제주도 한달살이를 결정했을 때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으로 장기여행을 떠날 때도 다짐했었다. 그냥 일상을 보내듯 살아가자, 대단한 관광지나 맛집에 목메지 말고 그냥 자유롭게 살자.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가자. 발길 닿은 대로 걸어보고 가보고 싶은 곳이 떠오르면 그때 또 움직여보자.
그런데 왜 오늘따라 다짐한 것과 달리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언제 또 제주도를 이렇게 길게 내려올 수 있겠어, 시간 낭비 하면 안 될 것 같아.' 같은 생각이 들었을까.
사실 시간 낭비 좀 해도 된다. 제주도'까지' 내려왔지만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도 되고 삼시 세 끼를 꼭 제주도 명물로 채우지 않아도 된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국과 반찬으로 밥을 먹어도 상관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냥 내가 나를 잘 돌보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다. 어디 불편하거나 아픈 곳은 없는지, 배고프진 않는지 오늘은 뭘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주고 나의 욕구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 혹여나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일이 상충한다면 내가 나를 잘 달래 가며 해야 할 일도 묵묵히 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수반되는 의무가 뒤따라오기에 해야만 할 일도 잘 해낼 수 있게끔 나를 잘 달래주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나를 돌보며 달래고 응원해 주면서 하루를 보낸다면, 혹여나 그게 잘 되지 않아서 허송세월로 시간을 보냈대도 괜찮다. 정말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에 시간 낭비라는 건 없다고.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하기 전, 숨을 조금 고르고 있는 중이라고 해주고 싶다. 왜냐면 난 내 인생 하나만큼은 책임지며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또 열심히 달릴 때가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