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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ug 20. 2023

파스타에 샐러드·고추장 비비면 ‘냉면’…재밌는 미국한식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미국 대형마트에서 소개한 'Korean-Inspired Cold Noodeles' 조리법.

1. 카펠리니 파스타(실처럼 가는 이탈리아 파스타)를    끓는 물에 3분간 익히고, 완전히 익으면 물을 따라버  린 뒤 찬물에 헹군다.

2. 고추장 소스를 커다란 볼에 따르고 파스타를

  더해 잘 섞는다.

3. 파스타가 완전히 소스와 비벼지면 원하는 만큼

  후리카게(생선가루·김·깨소금 등을 밥에 뿌려  먹도    록 만든 일본의 맛가루)를 뿌린다.

4. 면 위쪽에 골고루, 일정한 양의 푸른 샐러드를

  담는다.

5. 삶은 달걀을 반으로 잘라 1~2쪽을 더한다.     


이게 무슨 음식이냐 하면 바로 ‘냉면(Cold Noodles)’이다. 한국과는 전혀 관계없는, 미국의 대형 마트 체인점이 정기적으로 소개하는 요리코너에 실린 글이다. 이 요리법엔 ‘한국식에서 영감을 받은(Korean-Inspired)’이라면서 “한국 고추장(Gochujang) 소스는 프렌치 프라이부터 볶음밥까지 어디에나 곁들이기 좋다”고 설명해 놨다.     

미국 마트에 진열된 한국 초코파이와 라면.

웬만한 나라에 가면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고, 김치나 불고기 같은 음식은 이미 널리 알려진 지 오래됐다. 하지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와서 참신했던 건, 미국인들이 이제 한식, 한국 음식에 쓰이는 식재료들을 자신들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활용하는구나, 하는 점이었다.     


미국 중남부에 가까운 노스캐롤라이나는 LA나 애틀랜타, 뉴욕처럼 한국인이 많은 곳이 아니다. 남한 전체 면적보다 큰 주에 2만 명 정도의 한국인이 산다. 미국의 유명한 한식재료 전문점인 ‘H마트’만 해도 LA가 있는 캘리포니아주엔 20개나 있는데, 여기엔 딱 하나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도시 '캐리'에 있는 H마트. 이마저도 몇 년 전에야 처음 생긴 모양이다.

H마트엔 비싸서 그렇지 쌀부터 나물류, 깻잎까지 한국 식재료가 없는 게 없어서(심지어 각종 횟감도 있다) 한국 연수자들도 늘 장을 보러 가는데, 나는 평소에도 그다지 한식파가 아닌 데다 차가 없어 H마트까지 갈 수도 없어서 그냥 집 근처 미국 마트들에서 장을 보며 살았다.     


하지만 웬걸, 근처 미국 마트들에서 가장 많이 산 음식 중 하나가 고추장이다. 내가 다닌 트레이더스조(Trader Joe’s)와 웨그먼스(Wegmans), 푸드라이언(Food Lion)같은 곳에서도 ‘생각보다는’ 한국 식재료를 꽤 많이 팔고 있었던 거다.      

사실 미국의 어느 마트에나 아시안 푸드 코너는 빵빵하다. 하지만 대체로 중국·일본·인도 쪽 음식재료가 많고, 식당들도 여기에 동남아나 한국 음식 메뉴를 한데 묶어 두루뭉술 ‘아시안 레스토랑’이라고 한 곳이 많다.


한국교포나 한국인이 많이 사는 대도시에는 한국 현지 못지않게 맛있는 한식당도 많지만, 적어도 노스캐롤라이나엔 한식당도 몇개 없고 그마저도 먹어보니 엄청 비싸기만 하고 맛은 별로였다. (해물탕이라면서 라면 스프만 풀어놓는다든지….) 그래서 이곳에서, 미국인 소비자들을 주로 대하는 대형 마트들에 한국 먹거리가 눈에 띈다는 게 더 신기하고 반가웠다.       


특히 라면이나 김 같이 그 자체로 한국 음식인 것도 있지만 ▶투명한 누들과 야채볶음(알고보니 잡채) ▶달콤한 시나몬 팬케이크(알고보니 호떡) ▶비건 불고기(알고보니 어묵을 넣은 김밥) ▶볶은 쌀 케이크(알고보니 떡볶이) 같이 자신들의 버전(?)으로 한국 메뉴를 만들어 먹는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한국식 호떡(왼쪽)과 떡볶이. 어슷썰이한 떡국떡을 사용해서 눈에 띈다.

사실 미국 사람들이 파스타나 피자를 먹으면서 ‘음, 이건 이탈리아 음식이지’ 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 나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편하고 익숙한 재료로 자주 만들어 먹는 게 진짜 한식의 세계화라고 생각한다. 일부러 전문 한식당을 찾아가거나, 우리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식재료와 조리법만을 고집한다면 아무래도 해외에서 대중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맨 위에 소개한 냉면만 해도 파스타 면에 일본식 맛가루를 뿌리고 샐러드를 올린 게 무슨 제대로 된 한국 냉면이라고 하겠나. 하지만 미국인들 입장에서 그런 재료들이 익숙하고, 맛도 있고, 별미라고 생각한다면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한국식 차가운 면요리’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호떡도 뭐 계피가 시나몬 가루인 거고, 거기에 꿀같이 단 설탕을 넣은 것이니 반죽에 찹쌀을 얼마나 섞었든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지져냈든 일단 맛있는 한국 팬케이크면 그걸로 된 거다.      

얼마 전 산책하다 발견한 '포차(POCHA)'. 새로 생긴 식당 같은데 이제 노스캐롤라이나에도 한국식 포차가 생겼다.

비만율이 높아 심각한 사회문제인 미국에서는 영양가가 많으면서 기름기가 적고 칼로리가 낮은 음식들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태국에서 유래한 핫소스인 ‘스리라차 소스’가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필수품처럼 된 것도 치즈나 크림이 잔뜩 들어간 서양 소스들에 비해 칼로리가 매우 낮은 ‘다이어트 소스’로 홍보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음식은 일본에 이어 ‘뜨는 음식’이다. 기본적으로 한국 음식은 건강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다. 특히 한국 고추의 매운맛이 식욕을 돋울 뿐 아니라 기름진 음식에 느끼한 맛을 잡아주고, 칼로리를 더 많이 태운다고 알려져 고추장이나 고추장 소스를 찾는 미국인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한국 통영산 굴을 훈연해 올리브 오일에 절여놓은 제품(왼쪽). 계란부침과 밥, 고기 등을 미국에서 대중적인 멕시칸 '치폴레'식으로 만든 한식메뉴.

미국 대형 마트들도 한국 음식에 ‘글루텐 프리’나 ‘비건’이란 문구를 넣어 마케팅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결국 사람 입맛이란 다 비슷해서, 갑자기 삭힌 홍어나 선짓국 같은 음식을 먹으라는 게 아니라면 한국인한테 맛있는 게 다른 나라 사람들 입에도 다 맛있는 것 같다.


전통 한식이든, 퓨전 한식이든, 흉내 낸 한식이든…외국 사람들이 우리가 봐도 신박하고 간편하고 맛있는 응용 한식 메뉴를 많이 많이 개발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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