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발로 병원 문을 여는 일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은 2년마다 연초가 시작되자마자 대상자 알람을 받고 바로 병원을 찾는 재빠른 사람이 아니다 보니 올해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계속 미루고만 있었던
'국가 건강검진'
연초부터 짝수 년도 출생자 검진 대상자라서 이곳저곳에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으나 계속 모른척하다 보니 다음 주면 벌써 12월이다.
'올해도 하긴 해야 할 텐데...'
병원에서는 10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문자 메시지를 자주 보내왔다. 아마 나같이 계속 미루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은 그들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이다. 연말이 되면 너무나도 밀려드는 검진자들 덕분에 그들도 최대한 한 사람이라도 빨리 와주길 바라는 마음이겠지?
평소 부지런하고 파워 계획형 인간이 아니라서 보통 건강 검진 예약은 하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애를 키우는 엄마들은 항상 변수가 많기 때문에 섣불리 뭘 예약하면 취소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미리 예약도 안 하고 미루기만 하고 핑계만 대는 이 성격은 도대체 언제 바뀌는 거니!
에라이! 제발 정신 좀 차려라!)
그리고 왠지 건강 검진을 예약해 두면 한참 전부터 체중 관리를 위해 야식을 먹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식후에는 무조건 운동을 해야 하고, 가끔씩 당기는 시원한 맥주의 기쁨도 잠시 누릴 수 없다는 중압감이 싫었다.
그냥 평소 그대로인 내 생활 습관과 몸을 그대로 검진해야 검진 결과가 좀 더 객관적이지 않을까? 하면서 혼자 합리화를 시키는 나를 위해 하필 내가 아이를 출산한 병원 검진센터에서 11월 중순 경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예약 없이 당일 선착순 굿모닝 건강검진 실시'
문자 메시지가 올 때마다 '조만간은 해야지' 하며 의식은 하고 있었다. 다만 내게 중요한 건 타이밍이었다.
몸 관리는 평소에 한다고 생각했지만 비교적 컨디션이 좋은 날,
매달 치르는달거리를 끝내고 일주일 정도 지난날,
전 날 저녁 식사를 빠르게 해치우고 산책 후 야식도 맥주도 먹지 않는 다음 날,
무엇보다 숙면을 취한 후 당일 일찍 일어나 활짝 웃으며 '굿모닝'을 외칠 수 있는 날이 바로 검진 날이다.
"아, 오늘이다, 가자! 병원으로!"
아침부터 굿모닝을 외치며 (학교 갈 준비 하는 아이 혼자 내버려 두고) 부리나케 서둘렀다.
급격히 추워진 날씨와 폭설에 평소보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예약 없이 당일 선착순으로 위내시경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래, 미리 예약할 필요 없다니까?!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야! 유후~)
4년 전 같은 병원에서 한 푼이라도 아낀다는 심정으로 일반 위내시경 검사로 혹독한 흑역사를 치른 경험으로 2년 전부터는 위내시경은 무조건 수면이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검진센터에서는 자연스럽게 다른 검진을 추가적으로 진행할 것이냐고 물어봤다.
이미 위 내시경에 68,900원이라는 자기 부담금을 내기로 했는데?
복부 초음파에 10만 원, 자궁초음파에 7만 원 내외라는 비용을 더 써야 할까?
잠시 고민은 했지만 소심하게 '그건 다음에 할게요'라고 대답했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그 돈이면 애 피아노 학원 한 달 학원비하고도 치킨까지 먹을 수 있는 돈인데?
얼마전 친청엄마한테 김장값도 20만 원 보냈고 담주에 제주도 여행 가시는데 용돈도 보내드려야 하지 않을까? 이제 12월이면 각종 행사와 모임 때문에 연말에 돈 들어갈 곳도 많은데 갑자기 그 돈을 추가로? 아직까지 딱히 아픈 곳은 없으니까 이번에는 패스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안 되겠다, 2년 뒤에는 연초나 비교적 여유 있는 달에 (내 몸 아프면 나만 고생이니) 추가검진까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또 2년 뒤에 같은 상황에 놓여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검진은 일사천리는 아니었지만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어 11시 조금 넘어서 마칠 수 있었다.
준종합병원이라 피할 수만 있으면 끝까지 피하고 싶었던 여성 2대 굴욕검진(유방초음파와 자궁경부암검사)까지도 한 번에 해결하니 속이 뻥 뚫린 기분이다. 이 기분 그대로 놓치고 싶지 않아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점심 메뉴를 고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하기 싫었던 숙제가 드디어 끝났다!
검사 결과는 아직은 직접 글씨로 쓰인 종이가 편해서 우편으로 신청했다.
보름 후에 도착할 예정이라 했다.
이번에도 정상 판정에 ■표시가 체크되길 간절히 바라며 서둘러 유명한 칼국수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빈 속에 밀가루를 먹어도 비교적 소화는 잘 되는 편이니 복부초음파는 다음번에 한다고 하길 잘한 것 같다며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