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8년 만에 위기의 아침
나는 학창 시절 동안 엄마가 아침에 잠을 깨워주신 적이 없다. 단언컨대 단 하루도 지각한 적이 없으며, 심지어 꽤나 우리 집에서 게으르다는 내 남동생마저도 마찬가지다. 알람 소리를 못 듣는다는 건 우리 집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혼하고는 남편도 알아서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하고 아침잠이 많지 않다는 아주 다행스러운 공통점 때문에 주말이 되어도 우리의 늦잠은 9시를 넘겨본 적이 없었다. 그랬는데 이런 DNA를 갖고도 꽤나 돌연변이 같은 느낌이 드는 존재 내 딸은 아주 다르다.
딸아이는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알람이 울려도 안 일어나서 보통 내가 깨워야만 한다. 10분은 거의 실랑이해서 보통 윽박을 지르는 수준에 이르러야 아이가 일어난다. 게다가 식탐이 있는 편이라 아침을 많이 먹진 않지만 꼭 먹고 가야 하고, 아주 느릿느릿 등교를 준비한다. 일어나자마자 자신이 먹고 싶은 간식을 챙기는 거까진 좋은데, 그다음이 문제다. 간식은 챙겼으나 가방에 넣지 않고 세수도 안 하고 교복도 입지 않은 채 고양이와 놀거나 혹은 동영상을 보고 있다. 잔소리를 하면 듣는 날이 3 안 듣는 날이 7이라,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불의 고리의 활화산처럼 정말 용암이 들끓는 기분이다. 아침은 보통 7시 전후로 먹게 되는데, 이제 더 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아침에 친정엄마와 영상통화를 매일 하는 딸아이는 이탈리아에서 자란 아이답게 아침을 먹는 동안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매우 수다스럽고 느긋하게 먹는다. 그 바람에 7시 40분에는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나서야 하는데 7시 20분이 되도록 아침을 먹고 있다. 게다가 부랴부랴 양치를 하고 옷을 입으면 좋으련만 나무늘보가 따로 없다. 거의 대부분 나의 목소리는 저 밑 단전에서부터 나오는 데시벨이 올라간 채, 딸아이는 부루퉁한 채 등교가 마무리된다.
최근 이건 아니다 싶어서 딸에게 이제부터는 스스로 시간을 조금씩 관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니, 아침에 등교할 때만이라도 알아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흔쾌히 알았다며 자신의 휴대폰에 알람도 설정하고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도 알람을 설정했다. 마치 자연스럽고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사건은 오늘 아침 터지고야 말았다. 알람이 울려도 일어나지 않는 딸의 모습에 나는 내적 갈등을 느꼈다. ‘깨울 것인가’ 하지만 내가 딸과의 분쟁이 두려워 깨우고 말면, 분명 매일 앞으로도 내 속만 시커멓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침대에서 나왔다.
알람이 계속 울렸다. 스누즈를 껐는지 10분 가까이를 그렇게 핸드폰이 울어대는데도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내내 알람 소리를 들었다. 결국에 아침을 다 준비했는데도 딸이 일어나지 않아, 방으로 가 깨울 생각은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깨울 요량으로 불을 켜고 나왔다. 그리고 혼자 사과를 집어먹으며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7시 20분이 되자 딸아이가 울며 불며 나와서는 왜 자기를 깨우지 않았냐고 나한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에게 우리가 한 약속을 다시 상기시켜주었지만, 이미 성이 난 아이는 듣지도 않고 내가 자신을 깨워주지 않았다며 이건 잘 못된 거라고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금이 간 갈비뼈를 잊은 채 큰 소리를 내었다.
“엄마랑 약속했잖아! 엄마는 너와 한 약속은 다 지키려 하는데 너는 왜 엄마랑 한 약속은 지키지 않고 네 잘못을 엄마한테 떠 넘겨!”
그 소리에 딸은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아침도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한 채 남편 손에 이끌려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아침 대첩을 들은 친정엄마는 나의 엄마지만 이제 손녀를 둔 할머니라 마음이 약해지셔서는 나에게 왜 아이를 깨우지 않았냐고 나무라셨지만, 나는 오늘 내가 깨우면 이 아이는 앞으로 계속 깨워야 하는 아이가 된다고 했다.
학교 갈 때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니, 끝나고 하교하는 길에 딸이 전화를 걸었다. 아침 일은 미안했다고 말하는 딸아이를 보니 내가 너무 했나 싶기도 했지만, 영국 학제의 국제학교를 다니는 딸은 내년부터는 고학년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언제고 거쳐야 할 과정이긴 하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 숙제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딸이 내일은 꼭 일어날 거라며 알람도 다시 확인하고 볼륨도 최대치로 맞춘 다음 휴대폰도 최대한 가까이 두고 잠자리에 드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오늘 아침 내가 참은 보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싸우기는 하겠지만 덜 싸우자” 난 그 말이 어이가 없었는데, 우리 모녀 관계에도 별 수 없이 쓸 수밖에 없는 말인 것 같다. 앞으로 우리가 부딪힐 일이 없을 수는 없지만 덜 부딪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