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조 Dec 21. 2024

할아버지와 고흐

2024년 여름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오베르쉬르우아즈는 파리 북서쪽 외곽에 있는 작은 마을로, 빈센트 반 고흐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머물렀던 마을로 유명하다. 고흐의 그림에 등장한 교회와 시청, 고흐가 하숙했던 라부 여인숙이 있다.

라부 여인숙과 교회
오베르쉬르우아즈 시청 (좌)

마을 뒤편 언덕을 조금만 올라가면 고흐의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자 고흐가 자살한 곳으로 알려진 광활한 밀밭이 펼쳐지고, 밭 옆길로 쭉 걸어가면 한적한 공동묘지가 나오는데 그곳엔 고흐 형제가 나란히 누워있다.

밀밭과 공동묘지 (롤라이35, 울펜필름 촬영)

수십 년 전에 죽은 사람부터 비교적 최근 묻힌 사람들의 이름들을 보다 보니 생각이 많아졌고, 괜스레 영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어서 노란 해바라기가 올려진 고흐 형제의 비석 앞에서 추모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거동도 불편하신 한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으며 다가와 일장연설을 시작하셨다. 말을 끝마치시고는 성호경을 하고 아멘이라 하셨는데, 그제야 그것이 추모기도였다는 걸 알았고,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가슴이 찡해졌다. 할아버지는 잠시동안 묘 앞에 홀로 계시다가 왔던 길로 홀연히 사라지셨다.


나와 사는 곳도 다르고 나이도 달랐지만, 그 백발의 노인은 누구보다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고, 알 수 없는 울림이 전해졌다.

고흐 형제의 묘 (롤라이35, 올펜필름 촬영)
잘 보고 갑니다, 선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