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문단속을 평소보다 더 철저히 해야 한다.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를 의심하고 아파트 1층을 지키는 경비원은 과연 착한 사람인지 다시 한번 살피게 된다. 이게 무슨 말일까?
페루는 중남미 내에서 비교적 치안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중남미다. 이 맘 때쯤 되면 아이들 학교 단체방이 시끄럽다. '까마초(camacho) 어느 아파트에 강도가 들었으니 다들 조심해!'라는 경고 메시지를 시작으로, 여기는 차카리아(chacarilla)인데 지난밤 차고에 주차를 하다가 권총 강도를 당했다며 cctv에 찍힌 영상을보내준다. '내 지인은 쇼핑몰 푸드코드에서 밥을 먹다가 뭐가 떨어져서 주었더니, 테이블 위에 놓은 휴대폰이 사라졌어.' 아이고!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운전기사와 일하는 아줌마가 둘이 짜고 아이들을 납치해 갔으니, 일하는 사람들 단속을 잘하라는 이야기가 왓츠앱(whatsapp)에 올라온다. 아이들까지 납치해 간다고?......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 한국으로 돌아갈래'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일주일 전쯤이었던 것 같다.
늦은 밤, 퇴근했다는 연락을 받은 지 한참이 지나도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카톡을 보내도 읽지 않은 상태였다.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을 하며 기다리는데 열쇠로 문을 열고 남편이 들어왔다. (페루는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안전이 걱정된 다른 한국 주재원 가족은 한국에서 도어락을 가져와 설치하기도 했다. 연말이 되면 도어락 설치한 그 집이 참 부러웠다.)
"왜 이렇게 늦었어? 걱정했잖아!"
"자기야.... 나 방금 권총강도 당했어. 와.... 씨"
"뭐? 권총강도? 그게 무슨 말이야?"
"회사에서 우회전해서 나오자마자 나오는 사거리 있잖아. 거기서 신호 걸려서 기다리는데, 오토바이가 내 차 옆으로 서더니, 총을 들이대는 거야. 빨리 창문 내리리고 거기 휴대폰 내놓으라고. 와.... 순간 창문을 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총으로 창문을 두들기면서 빨리 내놓으라는 거지. "
"뭐? 그... 그래서?"
"권총강도 만나면 절대 반항하거나 도망치지 말고, 달라는 것을 다 줘야 죽지 않고 산다고 했잖아. 딱휴대폰만 나갈 수 있는 만큼 창문을 내렸어. 휴대폰 내미니깐 바로 뺏고도망가더라고. 그런데 정말 100m 앞에 경찰도 있었거든."
"경찰이 눈앞에 있는데 턴다고? 정말이야? 다른 건? 돈은?아니..몸은 괜찮아?"
"어. 다친 데는 없어. 빨간불 신호 걸리는 틈을타서 순식간에 딱 휴대폰만 털고 가는 거야. 와.. 근데 진짜 어떻게 회사 앞에서 당하냐.. 경찰도 깔렸는데... 아무튼..."
남편은 권총강도 당했다는 사실을 회사에 보고해야 한다고 베란다로 나가 법인의 관리부장과 한참을 통화를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뒤늦게 실감이 났다. 손과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바로 조금 전에, 오토바이 권총강도가 남편에게 총을 겨누었다니. 영화의 한 장면이 내 남편에게 현실로 일어나다니... 이 나라에서는 이게 정말 가능하구나... 얼마 전, 학교 엄마들이 보낸 동영상이 떠올라 더 소름 끼쳤다. 괜히 내놓으라는 돈 안 내놓고 반항하다가 총 맞는 장면... 남편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고 얼떨떨했다고 하지만, 지구 반대편 페루까지 와서 남편을 잃었을 수도 있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남편과 나는 놀랬던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수 일이 걸렸다.
그 일이 있고 골프 모임 세뇨라들에게 사건을 이야기했다. 그녀들은 놀란 나를 위로하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런 일이 있어서 참 유감이다... 크리스마스 때쯤특히 강도가 많으니 절대 조심해야 해. 차 안에 현금 200 솔쯤 항상 넣어놓고, 지갑에도 현금을 조금 가지고 다녀. 혹시 모를 강도가 나타나면 다 꺼내서 줘야 돼. 돈만 주면 해치지 않을 거야. 얼마전, 우리 클럽 앞에 있는 웡(wong, 페루의 마트)에서 장을 보고 트렁크를 여는데 산거 다 내놓으라고 했대. 딱 장 본 것만 가지고 가는 거야. 생필품을 털어간거지. 가난한 사람들도 크리스마스는 보내야 하니깐..."
페루의 수도 리마에는 돌산, 돌언덕 위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집들이 알록달록 빼곡하다. 그 집들은 기둥만 세워 놓고 지붕이 없다. 비닐 혹은 판자로 덮어 놓거나, 아예 그런 것조차 없는 집들이 많다. 누군가 살고 있는 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실했다. 아무도 살지 않을 거라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축 늘어진 빨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 모습은 지붕도 없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집이지만 누군가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비가 자주 내리지 않는 이유로 지붕을 짓지 않는 것일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붕까지 올려 건축물이 되어 버리면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짓다만 상태로 사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오고 가는 어느 길에나 이런 판잣집은 쉽게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늘 마음이무거웠다. 나는리마에서 화려하게 살지만, 바로 옆에 공존하는 가난한 이들의 삶이 어쩐지 늘 미안하기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부촌으로 일을 하러 넘어온다. 운전기사, 가정부, 청소부, 골프캐디 등 내가 만나온 저소득층 사람들은 한화 약 30-50만원정도 월급을 받고 주5일을 일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해도 제자리다.
페루의 극심한 빈곤층도 행복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부촌에 몰래 들어가 가전제품을 훔쳐다 팔고, 오토바이 강도짓을 한다는 것이 어쩐지 씁쓸하다.가난이 범죄를 낳고 평범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한다. 이런 중남미의 현실이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