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젠타 입술

by 남킹

카페 Laetitia


“늦었네.” 창으로 바다가 넘실거린다.


“시간이 갑자기 빨리 가.” 거짓말. 따끈한 구들 방에 외풍을 즐기며 그냥 뒹굴었다. 문갑 위에 정연히 놓인 탁상시계는 멈춘 지 오래다. 누에고치 같은 베개에 엉덩이를 댄다. 모서리, 파리가 투명 거울을 탈출하려고 애를 쓴다. 꾀죄죄한 내 모습이 어른거린다.


“좋은 일이지 뭐.” 분홍색 일회용 커피잔에 ‘Laetitia’라는 글씨가 하얗게 새겨졌다. 밑에는 ‘하늘을 닮은 바다를 담는다’라는 문구가 그려졌다. 미자의 입술 자국도 선명하다. 번데기처럼 뭉툭하다.


“오래되었어?”


“아니, 뭐 여기 분위기 좋아하잖아. 미리 좀 즐겼지.” 까맣고 못생긴 재떨이에 꽁초가 하나, 둘, 셋, 네 개가 널브러져 있다. <Leonard Cohen>의 <Boogie Street>가 흐른다.


‘o my love, I still recall

The pleasures that we knew’


“아침은?” 지나치게 둥글고 짙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그녀가 빤히 쳐다본다. 오후 3시가 넘었다. 홀은 관광객이 흘리고 간 부산함이 떠돈다. 디귿으로 톡 튀어나온 벽에는 길쭉한 그림이 걸려있다. 와트만지에 템페라로 그린 듯 낯설고 몽환답다.


“샌드위치.”


“그건 간식이지. 난 밥을….” 여자가 팔짝 뛰며 휴대전화를 보여준다. 화려하지만 무척 작은 양의 요리가 흰 접시에 담겨있다. 사치가 흘러내린다. 포크나 수저로 장식을 부숴, 입에 넣는 행위가 죄스럽다.


“비싸지 않을까?” 마른침이 꼴깍 넘어간다.


“내가 절반 낼게.” 앙상한 어깨에 걸친 민어깨 블라우스가 지쳐 보인다. 항상 이런 식이다. 그녀는 제안하고 나는 받는다. 그녀는 검색하고 나는 결과를 본다. 여자는 선택하고 남자는 수긍한다. 여자는 세상에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남자는 설득당하는 데 익숙하다.


“마셔야지?” 입꼬리에 번진 루주를 닦아 주고 싶다. 그녀는 항상 과하게 덧칠을 한다. 바닷바람에 행인들이 멈칫거린다. 줄지어 선 워싱턴야자 잎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춘다. 남녀가 손을 잡고 우두망찰 서성거린다. 나는 유리 너머 펼쳐진 요란한 풍경을 주시하며 천천히 일어나 1층 주문대로 향한다.


“내 것도.” 그녀의 메뉴는 거의 변함이 없다. 아메리카노. 늘 달고 다닌다. 집에서도 물 대신 마신다. 물을 과하게 부어, 숭늉같이 해서 마신다.



그녀의 블로그는 온통 커피투성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마치 세상의 모든 커피를 다 맛볼 요량으로 카페를 전전한다. 그게 일주일에 단 하루라는 게 천만다행이다. 주 5일 근무자였다면, 사진이 2배로 많았을 것이다. 휴대폰과 카페. 미자의 세상이다. 아, 그러고 보니 요즈음 보통 사람들의 세상인가?


“뤼자님이 모닉끌라스 카페에서 인증샷 올렸어.” 그녀를 추종하는 제자.


“어떻데?” 그녀 앞에 길고 부서지기 쉬운 커피잔을 놓으며 물었다. <Gary B.B. Coleman>의 <The Sky is Crying>이 막 흐물거리며 떠다닌다.


‘Can't you see the tears roll down the street’


바다는 따갑고 하늘은 눈부시다. 그녀에게 눈을 돌리자 검은 안개에 앙상한 팔다리만 형체로 나타난다. ‘더럽게 눈부신 하늘이네.’


“매번 똑같아.” 여자의 댓글을 채우는 추종자들은 감탄사밖에 모른다. <쿠오바디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선지자가 온라인에 남긴 흔적을 순례자들은 따른다.


“그래도 뭐 다른 게 있을 거 아냐.” 미자는 입술을 뭉툭하게 모으고 눈을 천장에 둔다. 옆 테이블을 채운 중년 커플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투명 벽으로 차단된 공간. 흡연석. 내부는 막히고 외부는 베란다로 열려있다. 열린 곳으로 거친 바람 소리가 쇳소리같이 들린다.


“플래버(Flavor)가 좀 약하데. 와이니(Winey)도 거의 못 느끼고. 한파 때문이야.” 여자는 와이니에 푹 빠져 있다. 커피 품질의 잣대. 와인은 좋아하지도 마시지도 않지만, 커피에서 시큼한 와인을 찾는다. 구수한 담배 연기가 가득하다. 베란다에 머물던 세 녀석이, 꽁초를 허공에 튕겨내고, 미자를 끈적하게 쳐다보며 지나간다. 여자의 드러난 허벅지는 끌림이다.


“한파가 왜?”


“브라질에 한파가 두 번이나 들이닥쳤대.”


“브라질 한파가 왜? 와이니는 블루마운틴에 많다고 했잖아.” 참고로 블루마운틴은 자메이카 산임. 여자의 미간에 세로줄이 선다. 팽팽하던 이마가 쪼그라든다. 짙은 화장이 가면처럼 툭 떨어질 것 같다.


“바보야! 경제학과 나온 거 마저?”


“...”


“내가 뭐랬지? 커피는 배합이 중요하다고.”


“???”


“커피 최대 생산국에 한파가 오면 생산량이 줄고 생산량이 줄면 가격이 오르고 가격이 오르면 배합이 달라지지. 비싼 아라비카 대신 값싼 로브스타가 대신하지. 그중에 가장 비싼 블루마운틴 양도 당연히 줄겠지. 이 바보야.” 대단한 <나비 효과>.



Does the Flap of a Butterfly's Wings in Brazil Set Off a Tornado in Texas? (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 브라질에서의 약간 쌀쌀한 날씨가 (절대 우리네 엄동설한에 닥치는 한파가 아님) 지구 반대편 한 소녀의 도도한 취미 생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가?


나는 그 순간 엉뚱하게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E = mc²> 이 생각났다. 이런, 질량이 에너지라니! 그럼 나도 에너지네. 내가 에너지가 되면 이런,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나오네. 지구를 수십 번도 더 산산조각 낼 정도의 에너지. 하지만 그는 이론 물리학자이지. 증명은 하지 못했지. 그랬다지. “내 생전에 증명하기는 힘들 거라고.” 웬걸. 당신이 눈 감기 전에 이미 증명뿐만 아니라 시제품까지 만들었지.


히로시마 원폭 투하. 덕분에 한가지 불안이 더해졌지. 인간이 세상을 한순간에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한 인간의 날갯짓이 후대인들의 마음을 짓밟을 수도 있는가?



“비웃는 거야?” 인간은 놀랍게도 찰나와도 같이 스치는 상대방의 표정을 읽어낸다. 다만 엉뚱하게 해석할 뿐.


“아니, 잠시 다른 생각을 했어.”


“무슨?” 입술을 엷게 편다. 이즈음에 생긴 그녀의 버릇. 모든 사진에 똑같은 입술 모양.


“멸망한 지구.”


“또, 영화 봤구나!”


“아니, 난 단지 커피나무가 사라진 브라질….” 나의 거짓말.


“제발, 그런 황당한 영화 좀 보지 마!” 인간은 축적된 경험으로 정의한 각자의 상대방을 소유한다. 그는 내가 아니다. 나는 종종 심하게 왜곡한 나를 간직한 지인을 만난다. 그건 고통이다. 그리고 점점 참을 수 없게 된다. 물론 미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무척 사랑스럽다. 좀 별스럽게 진한 화장을 하고 무척 짧고 얇은 옷을 걸친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아, 예 예 예…. 네 잠시 제주도 내려왔습니다. 네 네 네 뭐 별일은 아니고…. 네 네 네 골프 좀 치고…. 근데 바람이 세서…. 네 네 네 맞습니다. 매번 오면 절반은 못 치고 갑니다…….” 중년 아저씨는 우렁차게 전화 통화를 한다. 모서리 파리는 아직 발버둥 친다. 뒤에 열린 공간을 두고 투명하게 막힌 공간에 몸을 있는 힘껏 비빈다. 애석하지만 바라볼 뿐.


신의 마음.



“알잖아. 그땐, 지구 멸망 후의 세상을 그린다고….” 웹 소설가. 직업은 아니다. 부업. 아니 엄밀히 말하면 취미. 아직 이걸로 돈을 못 벌었다. 빈약한 상상력 때문. 그래서 무척 많은 SF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거 중단했잖아?” 연재는 18회에 멈췄다. 관심 2명. 댓글 0. 조회 평균 10회 미만. 그나마 18회까지 간 건 단 한 줄의 댓글 때문이다. ‘눈 앞에 펼쳐진 듯한 인간 군상의 우울한 미래.’


“네 네 네, 그건 좀 곤란하고요….” 중년의 여자가 남자의 담배를 대신 끈다.


“그래서…. 좀 사실적인 거 쓰려고.” 나는 휴대폰에 넷플릭스를 띄워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뭐야, 전부 사형수 얘기네.” 한순간의 실수 혹은 멍청한 짓으로 인생이 완전히 꼬여 버린 인간들의 이야기. 나는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감방에서 몇 년을 보내다 우연히 DNA 감식이라는 첨단 과학 덕분에 풀려나게 된, 그런 뻔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쓰려는 게 절대 아니다. 나는 진짜 살인을 한 그들의 뇌 속에 잠재된 폭력성을 분석하고 유추하고 잘게 쪼개고 싶을 뿐이다. 물론 나의 능력 밖이다. 지난 2주 동안 36편의 관련 영상을 본 후, 결론을 냈다. 글쓰기 포기. 나의 에너지는 가끔 지나치게 나를 높게 본다. 능력 미달.


“그런데 포기했어.”


“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 같아.”


“당연하지.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 좀 써!”


“맘마미아 같은?” 미자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여자는 이 한 편의 영화로 우울한 사춘기를 마감했다. 왕따로 점철된 지긋지긋한 학창 시절의 종말. 적개심이 사라졌다. 로맨스, 지중해, 뜨거운 태양, 음악, 댄스에 퐁당 빠졌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귀밑과 손등에 손톱만 한 문신을 새겼다. 7개의 귀걸이를 하고 하얀 이어폰으로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보온용 옷은, 최소한의 가림 용으로 빠르게 바꿨다. 굽은 올라가고 머리는 물들었다. 테크노에 심취하고 호세쿠엘보 테킬라를 마시며 손등에 바른 소금을 홡았다.


여기까지가 내가 들은 이야기다. 작년 이맘때, 두 번째 데이트에서.



“하 하 하 하….” 남자의 금니가 반짝인다. 미자는 거슬리는 듯 실룩거리고, 중년의 여자는 흐뭇하게 바라본다. 재떨이에서 푸른 연기가 한줄기 올라온다. 남자의 배는 지방으로 충만하다. 군 턱이 풍요롭다. 남자는 고개를 꼰다. 해말갛게 생긴 여자의 코는 누가 봐도 불편하게 뾰족하다. 여자가 남자의 머리를 털어준다. 헤어젤이 흘러내릴 듯 묻어있다.



두 쌍의 흡연자들이 들어왔다. 다정히 불을 붙이고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며 허공에 연기를 토해낸다. 쑥덕공론이 이어진다. 섬뜩할 정도로 마른 여인은 지나치게 큰 유방을 지녔다. 다시 깨질듯한 큰 웃음. 입술의 달싹임보다 턱이 더 까분다. 단추가 하나씩 엇끼워진 모습의 여인은 남자의 어깨에 눈물을 훔친다.


“그런 거 쓸 수 있어?”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물론 나는 쓸 수 없다. 하지만.


“그럼 당연하지.”


“나를 주인공으로 해서 해봐. 비련의 주인공은 말고.” 여자는 간드러지게 속삭였다. 그리고 볼에 가벼운 키스를 하고 일어선다.


‘I got a bad feeling, my baby don't love me no more.

Now the sky's been crying, the tears rolling down my door’



파리는 이제 지쳤다. 그냥 공간에 붙어있다. 그러다 별안간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거리며 돌기 시작한다. 나는 여자가 화장실 간 사이 냅킨으로 녀석을 잡아 죽였다. 나는 선하게도 녀석의 고통을 없앴다. 할리우드의 멍청이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숱한 악당들을 죽였다. 정말 멍청한 짓이다.


죽음 뒤는 아무것도 없다. 즉, 고통 따위가 있을 수가 없다. 진정한 정의는 살아서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흉악범들에게는 자연사할 때까지 성심성의껏 잘 돌보며 독방에 가두는 게 진정한 형벌이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벽. 지나치게 느리게 가는 시간. 시간의 속도는 상대적이다. 누가 말했지? 아 그렇지, 아인슈타인. 느리게 가는 만큼 고통은 늘어난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36편의 사형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냥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 나의 시간은? <더럽게 느리다>.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하다. 일주일에 단 한 번. 미자와 보내는 시간을 빼면 말이다.


흡연자들이 흘리고 간 과자 부스러기에 기다렸다는 듯이 비둘기 2마리가 나타났다. 비둘기는 세찬 바람 속에 호르르 부풀려진 가슴 털로 비실거리며 바닥을 쪼기 시작한다.



하미자



하미자는 내가 붙여준 이름이다. 그녀의 본명은 김인자. 미국명은 <엘리자베스 킴 하일>. 중학생 때 계부를 따라 미국 미시간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곧바로 한국으로 왔다. 재작년 시월이었다. 여동생이 하나 있다고 했다. 나는 자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투박하고 수수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책상 위에, 손바닥만 한 투명 아크릴 액자가 놓여 있었다. 헤벌쭉 웃고 있는 그녀 옆에 키가 한 뼘쯤 더 큰 동생이 우아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다지 닮은 것 같지 않은데?” 나의 농담에 그녀는 정색했다.


“사진이 그렇게 나왔을 뿐이야. 잘 봐봐. 키 빼고는 나랑 판박이니까.”


어머니와 여동생은 아직 미시간주에 살고 있다. 생부는 오래전에 이혼하여 추억이 별로 없다고 했다.


“이혼 후 만난 적은 없고?”


“음…. 없어.”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생사도 모르고?”


“중국에 있다는 얘기만 들었어. 그것도 먼 친척한테서.” 그녀는 작고 까만 눈을 껌뻑거렸다.


미자를 알게 된 건, 다분히 극적이라고 해야겠다. 아침부터 안개처럼 뿌리던 가랑비가 온종일 습한 기운을 실내 구석구석에 흘리고 다니던 날이었다. 락 카페 중앙 홀에 들어선 나는, 맞은 편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앉아있는, 진한 화장을 한 여인을 보았다. 가슴 철렁하게 노출한 의상이었다.


그녀는 연신 깔깔거렸다. 그녀에게는 마치 삶의 내막이 한순간도 감추어지지 않은 듯이 쾌활한 듯 느껴졌다. 이런 여인은 쉽게 잊을 수 없다. 더욱이 나의 연주가 끝나고, 사라져 버린 그녀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다시 보게 된다면 말이다.


사람이 많은 거리. 불특정 다수의 주목을 받으며, 그녀는 무심한 하늘을 향해 반듯이 누워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런 일은 흔히 보는 일은 아니다. 무릎을 꿇은 남자는, 한 손으로 그녀의 호흡을 보는 듯했지만,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지는 쑥스러움이 그를 움츠리게 했다. 서투른 행동이 사람들의 비웃음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그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 인파 속에 흡수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애써 꾸며 볼 수 있는 계기가 빨리 오기를 바라는 쪽으로 어정쩡 거리고 만 있었다. 여자의 발끝에 허리를 반쯤 구부린 채 서 있는 동료는, 마치 죄수인 양 홀로, 흐르는 인파가 멈추어 선 도심 한가운데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이들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듯 보였다.


나의 행동도 좀 특이했다. 예전 같으면 틀림없이 구경꾼이었다. 애써 궂은일 마다하지 않는 선량한 인간도 아닐뿐더러, 종교에 심취하여 선지자의 말씀대로 하는 인간은 더더욱 아니란 말씀이다. 그냥 요즘 인간의 대세로 떠오른 방관자적 무심론자. 한마디로 회색인. 모든 일에 신경끔.



나는 대번에 그녀를 알아봤다. 하긴, 누군들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나치게 짙은 화장, 짧은 옷, 문신, 촘촘히 박힌 귀걸이, 붉게 칠 한 입술. 나는 신기하게도 빠른 솜씨로, 뺨을 그녀의 입 근처에 바짝 댔다. 얕은 숨결이 느껴졌다. ‘살아있다.’ 그리고 머리를 조금 당기며, 한쪽 손은 이마에 놓고 다른 손은 목 뒤에 대 턱을 들어 올렸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골키퍼를 동료가 응급조치하는 장면을 TV에서 봤다. 쉿 하는 쇳소리가 느껴졌다. 그녀의 얼굴은 지나치게 울퉁불퉁 부었다. 홀에서 본 깔깔거리는 모습이 도저히 연상되지 않았다.


“땅콩 알레르기가 있어요.” 그녀가 내게 건넨 첫마디였다. 지저분한 락 카페 입구.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 그녀는 어정쩡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370m 거리의 응급실까지 업고 간 은인에 대한 감사의 미소. 아직 붓기는 남아 있다. 비대칭으로 갈라지는 입술.


“많이 좋아진 것 같네요.”


“네, 덕분에. 재료에 아몬드 대신 값싼 땅콩을 몰래 넣는 식당이 있거든요. 어제처럼.”


“아 그, 인도 전통 식당이라는 곳?”


“네, 심할 땐 정신이 아득해지고 마비가 되죠. 어제처럼.” 마치 남 일인 듯 말한다.


“공연 스케줄 좀 적어 주세요. 자주 찾아올게요.” 이런! 일정표 같은, 그런 사치스러운 게 있을 리가 있나! 대타로 잠시 한 거뿐인데. 그것도 한가한 이른 저녁 시간에.


“전 주로 길에서 연주합니다. 쓰러진 곳 바로 그 근처에서요.”



카페 Dionysus



“그 주소에 파킹하고 한 15분 걸으면 된대. 사진빨이 죽여줘.” 그녀가 추종하는 <까페꾼08>님의 지침. 변함없는 푸른 하늘. 세찬 바람. 한적한 도로. 꾸불꾸불한 길. 나무와 바람, 여자. 내가 바라는 모든 것. 제주도에 오기 전 나는 결론을 냈다. 나의 본능에 따라 여자를 찾고, 나의 철학에 따라 녹색 잎과 푸른 하늘, 바다만 바라볼 것.


모든 것은 바람 속의 먼지. Everything is dust in the wind.


“사유지라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데…. 쓰릴있지않어? 누군가가 자신만을 위한 공간을 훔쳐본다는 게.” 좁은 길옆. 차 2대 정도 될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살짝 난감한 기분. 고독을 즐기는 주인이 금방이라도 달려 나올 듯하다.


“카페에 큰 주차장 있던데 굳이 여기에?”


“바보야! 사진빨이 죽여줘!” 스티브 잡스가 펼쳐 놓은 이상한 현대인의 여가생활. Behaviors Of the Photo, By the Photo, For the Photo. 사진의, 사진에 의한, 사진을 위한 행위들.


“게다가 곧 폐쇄된대. 주인이 되게 까칠한가 봐.” 당연하지. 나를 위한 공간에 누군가 끊임없이 침범한다면, 나라도 당장 담장을 세우지. 우리는 개찰구 같은 느낌의 울창한 관목 숲을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구불구불하고 몹시 가파른 좁은 길로 돌담이 둘러친 묘지도 지났다. 바짓가랑이에 쐐기풀이 사각거린다. 바위 한편을 가득 채운 백리향 냄새가 쏠쏠하다. 신선한 바람에 묻은 달콤한 이끼 냄새도 피어난다. 아담한 폐허가 보인다. 들보가 떨어져 내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다. 나는 미자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풀숲을 지나갔다.


“오, 예!” 미자는 은은한 보랏빛으로 물든 뜰에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정성스레 잘도 꾸며 놓았다. 흰색과 보라색, 연분홍과 표현할 수 없는 색의 수국이 여러 뭉치로 폈다. 빨간 실핏줄이 선명한 달맞이꽃도 나란히 피었다. 여자는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포즈를 잡기 시작했다. 나는 휴대폰을 가로로 눕혀 연신 셔터를 눌렀다. 행복이 몰려온다. 그녀는 찍은 사진을 빠른 손놀림으로 확인한다.


“우이, 너무 밝아.” 여자는 사진 편집 앱을 띄우고 재빠른 솜씨로 교정을 시작한다. 사진 보정술의 대가. 10초도 안 되어 그럴싸한 작품이 나왔다. 감탄이 터져 나온다. 여자는 이제 SNS에 잽싸게 업로드한다. ‘카페 Dionysus 근처. 비밀의 정원.’



미자의 인스타그램에는, 분홍빛이 한바탕 오름을 뒤엎은 세상을 배경으로 허수아비 차림의 모습에서부터, 억새의 꽃송이가 하얗게 핀 언덕에 파묻혀 빨간 입술을 쭉 내민 모습까지, 모두 2,798개의 사진이 등록되어 있다. 아주 가치 있는 일과 전혀 소용없는 것이 혼재한다.


나는 그녀 곁에서, 따스한 봄날 공기에서 느껴지던 다채로운 향에 취한다. 사유는 낙관적인 삶 속에 멈추고, 깎아 앉힌 것처럼 하늘에 박힌 구름은 태평을 속삭인다. 깍지를 꼈던 손이 풀린다.


카페는 온통 하얀색이다. 복제한 큐비즘 미술이 각 벽면에 적어도 2개씩은 걸려있다. 그리고 모든 메뉴가 아주 비싸다. 조그만 사금파리가 흐드러지게 널려있다. 발밑이 반짝인다. 흡연석은 없다. 여자는 창가, 햇빛이 가늘게 스며드는 곳에 앉는다. 나의 맞은편에 녹색 호수가 내다보인다. 월계수꽃이 조명에 탐스럽게 익었다.


“커피 향이 괜찮은데?”


“???” 내게 물은 건지 아니면 자기 생각을 얘기한 건지 모호하다.


“뉴욕에서 맡아본 향이야.” 자기 생각이다. 여자는 뉴욕에서 딱 한 달 살았다. 한국으로 오기 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으로 쫓겨나기 전, 3년 동안 조금씩 저축한 돈을 한 달 동안 다 쓰고 돌아왔다. 물론 많은 돈은 아니었다. 외국에서 한 달 동안 조금 풍족하게 살 정도. 적당한 쇼핑과 숙식, 커피값 정도.



그녀의 3년은 이 한 달로 압축되었다. 세 번째 데이트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녀는 뉴욕에서 보낸 한 달이 마치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 외의 모든 기억은 어슴푸레하거나 그림자 속에 쌓였다. 아니면 감추는 건가? 아니면 일상이 너무 똑같은 걸까? 출근, 퇴근, 먹고 자고 싸고. 또 출근, 퇴근, 먹고 자고 싸고. 지금의 일상을 보면 쉽게 유추가 된다. 일주일에 단 하루, 쉬는 날을 빼면 말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일주일은 하루로 압축된다. 오늘처럼.


그녀는 어깨에 걸친 봄 코트의 무게가 느껴진 듯, 소매를 빼려고 일어서고, 나는 주문을 하러 일어선다.

“케이크 한 조각도!” 여자의 저녁.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된 고약한 버릇. 조금 통통했던 그녀는 연예인 병에 빠졌다. 거식증으로 정신병원에도 들락거렸다. 소라 통 같은 병실에 갇혀 알 수 없는 약에 취해 종일 손바닥만 한 창을 들여다보기도 하였다.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이란다. 손톱만 한 빵조각 하나로 하루를 버틴 시절이 있었다. 나는 앙상한 그녀의 손마디를 만질 때면 절망을 느끼곤 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 오래전에 본 책에 이런 글귀가 있었지? ‘나는 살 수 있다. 절망하였으므로.’ ‘나는 할 수 있다’ 였나? 나는 그녀의 비타민 C 공급을 위해 샐러드를 추가했다.


“천일홍이 변하지 않는 사랑이래.” 나는 도자기 같은 커피 컵과 케이크 조각, 샐러드를 그녀 앞에 놓았다. 통통한 보라색 꽃이 눈설다. 벽걸이 액자에는 하늘하늘 힘없이 팔랑이는 코스모스가 애처롭다.


<Cigarettes After Sex>의 <Apocalypse>가 흐른다. 지나치게 달짝지근하다. 베이스의 강약에 따라 진동이 느껴진다.


Got the music in you baby,

Tell me why

You’ve been locked in here forever & you just can’t say goodbye


미자는 좀 순진한 면이 있다. 그녀는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죄를 지으면 신에게 벌을 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지녔다. 그러면서 숫자 4나 혹은 13과 같은 것을 싫어하는 미신을 지녔고, 놀랍게도 점쟁이에게 찾아가 돈을 주고 거짓 예언을 귀담아듣곤 한다. 하지만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래서 좋아한다. 지나치게 깊이가 있거나 사려 깊고 점잖은 인간은 같이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얘기하는 <인간적인> 이라는 말에는 따스한 마음과 동시에 약간의 단순함도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걸 믿어?” 게시판에 붙은 메모지 한 장이 떨어질 듯 달싹거린다. 마을에는 복사꽃이 노을처럼 퍼졌다. 여자는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넣고 웅얼거린다. 바리스타 같은 모습. 그러더니 꿀꺽 삼키고 나를 뚫어질 듯 쳐다본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남자 주인공이 이렇게 말했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대사. 이렇게 물어야지.


‘어떻게 사랑이 안 변하니?’


“여기 커피 아주 좋아!” 여자의 엄지손가락이 정신없이 춤을 춘다. 그녀의 팔로워를 위한 친절한 안내문. 그녀는 벅찬 마음으로 마침표를 찍고 확인 버튼을 누른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삶은 축제다. 솜털 같은 하얀 털이 홀에 가득 내리는 상상을 한다.



맞은편 남자가 일어서려는데 여자가 소맷자락을 붙잡는다. 한동안 약한 실랑이가 벌어진다. 남자는 뿌리치고 출입구까지 한달음으로 나가 버린다. 여자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케잌도 아주 맛있네. 한 번 먹어봐.” 미자는 짙은 색의 입술을 오물거린다. 그녀는 접시를 내게 살짝 내밀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리고 천천히 내게로 몸을 기댄다. 턱 아래를 받을 듯이 바싹 다가와서 속삭인다.


“다음 주에 파리행 비행기 예약할 거야. 너에게만 말하지만.”



“그럼 파리에서 또 한 달?” 가시가 돋친 말. 무엇에 씐 것처럼 그냥 말이 툭 튀어나왔다. 여자는 애써 모은 얼마 되지 않는 돈을 펑펑 다 쓰고 돌아올 것이다. 뉴욕에서처럼. 여자는 조각 난 셀러리에 포크를 찍어 천천히 돌린다. 꽃무늬 사기잔이 예쁘다.


“그럼 네가 행복하게 해주던가.” 눈이 텅 비었다. 나는 변명거리를 찾는다. 마음속에 이는 요동.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신세. 나는 미천하다. 감히 여자를 묶어 둘 능력이 없다.


그 사실을 서른에 깨달았다. 일 년 새 3개의 회사를 옮겨 다니고 제주도로 그냥 왔다. 음악이나 소설 따위는 그냥 핑계다. 나는 게으르다. 주방 입구를 장식한 레드벨벳이 거슬린다. 나는 진작 깨달았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난한 인간들이, 삶이 끝날 즈음에야 깨닫게 되는 것을 말이다.



왜 나는 제주도로 도망치듯 왔는가? 이곳을 밖의 세상으로 기억하는가? 나의 의지는 미약하고 그만큼 외부로 향한 불안한 탈출은 언제나 원점으로 회귀하곤 하였다. 내가 어디에 머물던 그 물리적 가치에 중심을 쏟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변방이고 변방에 있다고 그 변방이 외부의 중심으로 다가서지는 않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슬픔과 무기력, 걱정과 고정관념 그리고 자학이 뒤섞인 혼란 상태로 머물렀다.



“서로를 옭아매게 될 거야. 결국에는….” 마음이 회오리친다. 나는 포켓 속에서 담배를 더듬어 꺼낸다. 끝이 지저분하게 너덜너덜한 담배. 조심스레 펴서 불을 붙인다. 여자의 잇새에 아스파라거스 조각이 끼었다. 어지간히 익어버린 체념. 나는 체념한다. 고로 존재한다. I give up, therefore I am.


“그렇겠지?” 여자의 음성이 신기하게 들떴다. 아담한 입술이 섬뜩할 정도로 아리따운 여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미자가 거쳐 간 과거의 흔적에, 잠시 머물던 추억에만 존재할 것이다. 해말간 얼굴의 여자 셋이 옆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왜 야심이 끓어오르는 현대인이 되지 못한 걸까?



마젠타 입술



돈이 아닌, 애정으로 매달렸던 모든 직업에서, 어떤 순간이, 즉 다가오는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끌려가는 듯 보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대부분을 길에서 보낸다. 섬에서 가장 번화한 곳. 온갖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500m도 안 되는 지극히 짧은 거리. 그들이 던져 놓고 간 동전은 일종의 감사 헌금이다. 하루를 더 산 대가치곤 꽤 쏠쏠하기도 하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든다. 결국, 아무것도 아님.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 나는 기타가 내는 음색의 향연에 부풀어, 감정의 골짜기에서 그저 헤매듯 취해있으면, 오줌 냄새에 찌든 홀에서, 술 취한 관객 몇이 빈정거리거나, 모퉁이 광장에서 코흘리개 어린이 몇몇 앉혀놓고 코믹한 연주를 하던, 그저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모든 예술은 사라진다. 모든 인간은 사라진다. 모든 것은 다 사라진다. 당신이 하는 이 모든 행위는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진다. 그게 진리다.


가끔 멍청한 녀석들이 만 원짜리 지폐를 던져주곤 한다. 정돈되지 않고 추하고 안정되지 않은, 소음에 가까운 나의 연주에 무슨 심오한 예술작품 대하듯 한다. 물론 그들은 던져 준 금액만큼의 보상을 받는다.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무엇인가에 기부한다는 선량한 마음 말이다. 그가 온갖 범죄를 저지른 악한일지라도, 돈을 툭 던져주는 행위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선한 기분이 들고, 그러한 마음은 항상 즐겁기 마련이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 좁고 울퉁불퉁한 놀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놀이터 경계를 가르던 마로니에 나무는 작년에 베어지고 밑동만 남았다. 마로니에 열매를 밤인 줄 알고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경우가 해마다 발생하자, 어느 날 구청 직원이 나와 잘라버렸다. 이제 봄을 채우던 탐스러운 분홍빛 꽃은 순전히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나의 한 손에는 미자의 오른손이, 다른 손에는 라면과 달걀, 파와 햄이 든 검은 봉지가 들려있다.


통장의 잔액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나는 비로소 어정쩡한 아이템 구매와 불필요한 소비에 냉담해질 수 있었다. 꾀죄죄하고 낡은 건물들이 삐쭉하게 들어선 낮은 언덕을 오르며, 나는 텅 빈 하늘에서 쏟아지는 무척 가늘어진 햇빛을 모두 받고 있다. 지독한 황사가 물러가자 더위가 찾아왔다. 헐떡거리는 목덜미에 땀이 배어 나온다. 얇고 헐렁한, 목이 파인 겨자색 반소매 셔츠에서 쉰내가 올라왔다.


“제발 집 좀 옮기자!” 여자가 헐떡거렸다. 굵은 땀방울이 얼굴에 파다하게 송골송골 맺혔다.


방안의 모습은 어제와 다름없다. 당연하게도. 펄럭거리는 하얀 커튼 사이로 마지막 빛이 춤춘다. 춤추는 건 미자의 담배 연기도 있다. 그녀는 가느다란 담배 끝을 위태롭게 잡고 연기를 창으로 훅 뿜었다. 몽글한 구름이 삐죽 열린 창을 들이박는다. 늙은 오후가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걸터앉았다. 내가 이불을 개어 한쪽 끝에 두자 그녀는 창을 닫았다. 담배를 비벼 끄고 출렁이는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는 나를 힐끗 쳐다본다.


“도대체 언제까지 라면으로 때울 거야?” 그녀의 질문에 나는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노란색 하트가 새겨진 헐렁한 셔츠 사이로 젖꼭지가 봉긋하다. 여자는 책상 구석에 놓인 영양제를 발견한다. 그리고 짙은 갈색 병을 들어 양을 조사한다.


“그동안 오메가3 하나도 안 먹었네. 어휴! 챙겨줘도 소용없다니까!” 그녀의 선물이다. 여자는 뚜껑을 열고 두툼한 캡슐 2개를 손가락으로 꺼내 꼴깍 삼키고 생수를 한 모금 마신다.


“나라도 먹어야지.” 여자는 약을 좋아한다. 무엇이든 보이면 닥치는 대로 삼키고 본다. 그녀는 백에서 스프레이를 꺼내 입속에 칙칙 뿌리고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나는 눈만 뜬 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디선가 기분 좋은 냄새가 난다.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그녀의 체취에 취한 듯 눈을 가늘게 뜬다. 나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반듯한 원룸으로 옮길 때까지.”


“뭐?”


“아, 라면.”



“살이 좀 빠졌네.” 찬찬히 살펴본 그녀가 내린 결론이다. 미자는 미천한 나를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외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한 달 후에 만나던, 계절이 바뀐 뒤에 만나던, 그녀는 내 얼굴에 스쳐 간 시간이 보여주는 피곤함과 핏발, 부스럼, 엉클어진 머릿결, 눈에 붙은 눈곱, 코털, 여드름 자국, 까맣게 탄 이마, 비딱한 앞니들에 시선을 모으곤 한다.


“영양가 있는 거 한 번씩 사 먹고 그래.”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나의 눈곱을 떼면서 중얼거린다. 그녀의 입에서 생선 비린내가 난다. 나는 라면과 달걀, 파와 햄에 길든 코를 들고 다닌다. 그 외의 모든, 입이 보내는 신호에 뇌는 음식이라는 정의를 시큰둥하게 내리곤 한다.


나의 본능은 마젠타 입술을 찾는다. 커피, 고등어, 침, 루주 냄새가 섞인 향이 그녀의 새큰거리는 콧바람을 수식한다. 미자는 나를 생각하는 유일한 인간이다. 이빨이 딱하고 부딪힌다. 감정의 격앙이 밀려온다. 미자는 다르다. 그녀는 나의 절망적 상황과 나 자신은 거의 개의치 않는 빈곤에 마음을 쓴다. 내 안의 고통은 세상 사람들처럼 그다지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다. 무심함은 널리 퍼져있다. 그들이 받는 찰나와도 같은 내면의 불편함을, 사람들은 이제 부풀리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자고 갈 거지?” 나의 질문에 그녀는 침대에서 펄쩍 뛰더니 가방을 뒤진다.


“짜잔!” 그녀는 양손에 뜯지 않은 콘돔 상자를 들고 있다. 형광 불빛에 반짝인다.


“마침내?”


“마침내!”


이제 상황은 진득한 육체적 본능으로 이어질 것이다. 무엇에 빠지는 것이다. 모든 인간처럼. 절정을 향한 격렬한 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잘 알려진, 죄스러움과 성스러움의 교차지점이라는 것이고, 오늘날 아주 특이하게 전파된 육체적 사랑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조차 그 본질은, 숭고함의 확장에 삶의 진정한 목적을 연계하는 단순 논리일 뿐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이 더럽고 무엇이 부끄럽고 무엇을 숨겨야만 하는가? 모든 섹스는 아름답다. 당연하게도.



“너무 외설적이지만 감정이 풍부한 거 같아.” 그녀는 딱 한 번 나의 노래를 평가한 적이 있다. 서 있기도 힘든 만큼 술을 마신 날. 그녀의 눈은 어느새 축축한 자국이 말랐고, 일그러진 얼굴이 지어내는 슬픔에 찬 고통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나는 기타 줄을 뜯을 듯이 할퀴며, 엉덩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연주를 했다. 내 음악은 나만큼이나 어중간하다. 심오하지도 가볍지도 않고 대중적이거나 극소수 마니아를 위한 것도 아니다. 사운드는 알 수 없는 순간 치솟다가 어느새 꺼지며 음정은 탁하고 목소리는 답답하다. 나는 항상 내가 녹음한 음성을 들으며 타인을 떠올린다. 녹음된 나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소심하다.


나는 그냥 내 삶을 받아들인다. 내 음악은 창작이라는 괴로움과 고통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용도에 적합하다.


“외설적이라는 표현이 멋있는데!” 그녀는 내 등에 찰싹 올라타며 깔깔거렸다. 빈약한 가슴이지만 따스함이 물컹거렸다.


“홀에서 발가벗고 연주할까?”


“그건 외설이 아니라 공해지!” 미자는 숨이 넘어갈 듯이 웃어 젖힌다. 여자의 뽀송뽀송하고 꼬불꼬불한 털이 간지럽다. 털 없는 피부. 말랑말랑한 젖. 소리가 방을 채운다. 여자의 입. 나의 콧구멍에서 터지는 거친 호흡. 미끈한 액체가 사타구니를 타고 흐른다. 젖은 수건이 바닥에 떨어진다. 굵은 땀방울.


하지만 모든 쾌락은 끔찍하게 짧다. 긴 불행은, 단 한 순간만 살아있음의 기쁨을 허락한다. 헐떡거리는 미자의 배에서 지린내가 올라온다.


“라면 먹자 우리!” 바라던 말. 여자는 먹는 것에 지나치게 초연하다. 아무튼, 라면이라도 먹여야 한다. 나는 늘어진 육체를 질질 끌고 냄비에 물을 붓는다. 성기와 이마를 수건으로 닦는다.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리고 불을 켠다. 딱딱딱딱. 검은 봉지에 삐져나온 파. 다정하게 소곤거리는 달걀들. 햄을 따고 냉장고를 열어 유일한 음식, 김치를 꺼낸다. 텅 빈 흰색 공간. 차가운 쉰내.


여자는 라면을 겨우 두 젓가락 뜨고는 김칫국물만 홀짝거렸다. 나는 라면 국물까지 쭉 다 마셨다. 바닥에 붙은 파 조각을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쏙 넣었다. 성욕과 식욕. 이제 수면욕이 다음이다. 줄담배를 피우고 토렌트에서 내려받은 영화를 여자가 고른다.


“어휴, 전부 깐느구만.” 미자는 이상하거나 지겹거나 비딱한 영화는 전부 <깐느>로 규정한다. 결국 <화양연화>를 고른다. 세 번도 더 본 영화. 여자는 주제곡과 여주인공의 의상에 매료되었다.


“조금 보다 잘 거야.” 여자는 가방에서 커피 캡슐을 꺼내 머신에 집어넣고 작은 컵 모양의 버튼을 누른다. 기계가 떠는소리를 토하더니 거품 섞인 액을 쏟아 낸다. 나를 위한 에스프레소. 여자는 다른 캡슐을 꺼내 큰 컵 모양의 버튼을 누른다. 역시 아메리카노.


재떨이에 꽁초 3개가 추가되었다. 12시 7분. 여자가 잠들었다. <Yumeji’s Theme>가 흘렀다. 국수 통을 든 치파오 차림의 장만옥이 느린 동작으로 걷는 장면에서, 나는 여자가 잠든 걸 깨달았다.



파도 소리에 잠을 깬다. 5시 10분. 50분 남았다. 그녀의 수면 시간. 늘 그렇듯 턱없이 부족한 시간. 아침은 더럽게 짧다. 인생은 찰나다. 구름이 끼고 칠흑같이 새까만 하늘. 여자를 깨우기가 정말 싫다. 그냥 까무룩 잠들고 싶다. 이마를 덮은, 수국처럼 빨갛게 핀 여드름. 아픔의 기슭 사이를 허우적거리는 영혼들. 벌컥벌컥 불쌍함이 새어 나온다. 여자는 가벼운 경범죄 몇 번에 미국에서 강제 출국을 당했다.


잠바를 걸치고 조심스레 문을 연다. 전구 불빛에 어둑한 마당 사이로 게 한 마리가 서성거린다. 인기척에 놀란 듯, 나일론 덮개 속으로 숨는다. 하늘 귀퉁이, 붉은색 하늘이 번진다.


여섯 시를 넘기고 1분이 지난 즈음, 나는 마음을 거세게 잡고 여자를 깨운다. 세 번의 흔들거림에 그녀가 돌아왔다. 단정하게 앞으로 향한 무표정한 얼굴이 창백하다. 여자는 앞으로 6일 동안, 화장 없이 지낼 것이다. 하얀 유니폼과 연푸른 앞치마, 연녹색 두건을 쓰고 주방과 손님, 화장실 사이를 미소와 함께 오고 갈 것이다.


오후 5시가 되면 나는 그녀가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파도 소리와 바람, 구부정한 소나무 사이로 굽이굽이 좁은 길을 돌면 나타나는 하얗게 치장한 아담한 곳. 가장 한가한 시간. 나는 식탁에서 그녀를 눈으로 찾고 살금살금 훔쳐볼 것이다. 마젠타 입술이 사라진 그녀는 양순하고 야리야리하고 고분고분하다. 미소가 떠나지 않고 친절하다. 나에게 그녀는 차가우면서도 따스하고, 까끌까끌하면서도 부드럽다.


미자와 모텔에서 사흘을 내리 보내 적이 있다. 은행 잔고가 0으로 떨어진 날. 우리는 방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끼니때마다 줄곧 중화 반점에 전화했다. 하지만 짜장면이나 짬뽕은 시키지 않았다. 전부 요리만 여자가 시켰다. 마파두부, 깐풍기, 라조기, 난젠완쯔, 고추잡채, 유산슬, 팔보채, 깐쇼새우, 전가복, 유린기, 양장피를 먹었다. 물론 음식 대부분은 내가 해치웠다. 그리고 고량주를 매번 주문했다. 즉, 매 끼니 우리는 고량주 한 병을 나눠 마셨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흘 동안 술에 취해 해롱해롱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어설프게 섹스하고 변기에 토하기도 하고 주저앉아 샤워도 했다. 샤워기를 붙잡고 같이 노래를 불렀고 TV 채널을 두고 다투기도 하였으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침대에서 휘청거리며 춤을 추기도 하였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갔다. 그녀와 보낸 마지막 사치였다. 일종의 신혼여행이라고 해야겠다. 이후 여자는 식당에 주방 보조로 들어갔고, 나는 다시 길거리 연주를 시작했다.


아직 쌀쌀한 아침. 여자가 옷을 입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고역이다. 손바닥만 한 거울로 위아래로 구석구석 살펴본다. 여자는 짧은 입맞춤을 하고 방문을 연다. 밝아진 하늘. 흐린 그림자가 뒷걸음을 친다.


“그냥 우리 여기서 살까?” 여자가 휙 돌아서며 방긋이 웃는다. 잠시 고개를 끄덕거린 듯하더니 이내 대문을 나선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녀는 살짝 주름진 입가의 미소로 잠시 쳐다본다. 햇살이 그녀의 다갈색 뺨을 비스듬히 비추고 있다.


“다음 주에는 좀 일찍 와! 유럽 가면 안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알았지!”


붉은 아침 햇살이 자꾸 눈을 성가시게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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