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디아케이 Apr 23. 2023

몸이 보내는 신호

잃은 후에 깨닫게 되는 것들


눈을 뜨자마자 축 쳐진 몸을 일으켜 인바디체중계에 올라간다. 오늘은 체지방이 줄었으려나.

조금이나마 체지방이 줄어주길 바라는 건 그저 막연한 바람일 뿐 8개월째 같은 몸무게와 체지방을 유지하고 있다.

이젠 몸무게가 줄어들 거란 기대는 거의 없다. 단지 더 이상 체중이 늘어나는 것만큼은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라 생각하며 매일 아침 체중재기 루틴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20대 때는 밥 한 끼만 걸러도 1~2kg씩 잘도 빠지더니 이제는 500g 이상 무게를 줄이는 일이 한라산 완등만큼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나는 몸무게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먹어도 찌지 않는 특이체질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열아홉 살 이후로 몸무게의 앞자리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축복이라 했었다.

친구들은 출산을 하지 않은 몸이라 그런 것 같다며 부러운 시선을 보냈었는데, 그런 나의 몸이 변화를 맞이한 건 작년 6월부터다.


그때는 한창 개인전시 준비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에 평균 12시간씩 캔버스 앞에서 씨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전시 일정이 다가올수록 조바심이 나서인지 제대로 잠을 자기 어려웠다.

잠을 자고, 운영하고 있는 매장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캔버스에 앉아서 보냈다.

7시간 이상 잠을 자도 몸은 쉽게 피로를 회복하지 못했다. 카페인을 들이켜 각성상태로 버티는 시간이 많아졌고, 멍한 상태가 점점 길어졌다.

몸이 망가져가는데도 나의 상태를 바로 볼 수 없었던 건 전시준비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일거라 미루어 생각했던 탓이었다.

식욕은 왕성해서 먹는 양도 많은데 에너지가 빠르게 고갈됐고, 몸은 자꾸 말라갔다.

피부는 거칠고 트러블이 계속 됐다.

전시 준비가 사람을 잡는구나. 좀 더 여유 있게 일정을 잡을 걸 ’

일정을 빠듯하게 잡고 움직인 내 탓이라 생각하며,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몸을 더욱 혹사시켰다.

여느 때처럼 전시일정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느 날 집으로 등기우편이 도착했다.

매년 잊지 않고 받고 있는 종합검진센터에서 온 검진결과문이다.

가장 첫 번째 페이지에 정리되어 있는 종합적인 소견을 펼쳐보았다.

갑상선 초음파 결과 갑상선염이 의심되며, 불현성 항진증의 가능성이 있으니 조속히 재검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용을 단번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빨간 글씨로 쓰인 경고라는 문구만 보아도 이상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갑사선암 초기 판정을 받은 큰언니가 번뜩 떠올랐다. 혹시 언니도 기능상에 문제가 있던 건 아닐까.

갑상선염이나 항진증이라면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질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작업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져 피로가 쌓였다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함이 부끄러웠다.

내 몸도 하나 돌보지 못하면서 무슨 작업을 하겠다고’

 

내분비내과에 진료를 보기까지 며칠 동안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자세히 찾아보지 않아도 대번에 나의 증상과 90프로 이상 일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욕은 왕성해서 많이 먹는데도 살이 빠지는 이유, 전에 없던 피부트러블이 생긴 이유, 열이 위로 올라 몸이 뜨거워지는 이유, 피로감이 커진 이유 등.

그 모든 게 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증상이라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갑상선이 이렇게 많은 기능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내 몸이 보냈던 수많은 시그널을 외면했다는 사실 때문에 혹독한 결과를 치러내는구나 싶었다.


약을 처방받고 3개월간은 몸의 휴식에만 집중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대로 쉬는 습관을 늘려갔다.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고 7일 만에 6킬로가 늘어나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를 견뎌야 했다.

살을 빼기 위해 식사를 거르는 일은 절대금물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철저히 따랐고, 지금은 다행히 갑상선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직은 정상수치로 돌아오지 않은 항체수치와 불어난 몸무게는 더 천천히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나의 일상은 몸의 신호를 알아채는데 조금 더 신경을 집중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충분한 잠과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습관, 마음의 근육 키우는 명상, 글쓰기 등 몸과 마음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에 집중하는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몸의 밸런스를 위해서는 마음의 정화 또한 매일 하는 샤워처럼 습관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몸속에 노폐물이 쌓이듯 마음속 노폐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랫동안 묵어 자신이  곪아가고 있는 줄도 모를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절대 몸을 혹사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건강을 잃고 내 몸을 바라보니 내 몸이 보낸 수많은 신호를 알아차리기만 했어도 병을 키우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건강은 우리 삶에서 가장 우선 되어야 할 가치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잃으면 사실상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건강한 몸에서 넘쳐나는 에너지.

몸이 아플 때는 그 에너지 넘치는 기분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하루 종일 몸을 질질 끌고 다니는 기분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를 경험하고 보니, 오늘의 나를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1시간 이상 필라테스를 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마흔까지 운동과는 거리가 멀던 내가 이제는 주 4일 1시간씩 꼬박꼬박 센터를 방문한다.

걸어 다니는 습관을 기르고, 채소를 많이 먹고, 충분히 자는 습관만으로 내 몸에 대한 예의를 충분히 다 해내고 있다고 믿는다.


어려울 것은 없다.

단지 내 몸과 마음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니 지금이라도 귀 기울이면 그만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간과하면 그 결과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몸을 바로 보아야 한다. 몸은 늘 신호를 보내고 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기억의 까만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