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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케이 Apr 26. 2023

디카페인, 논알코올, 제로슈가

단호하지 못한 대안



카페인과 술은 끊으셔야 합니다

카페인과의 예고 없는 이별을 난데없이 의사 선생님이 통보하셨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선생님!

술은 나와 거리가 머니까 전혀 대미지를 주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카페인이다.

틀림없다. 이건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내 뜻과 상관없이 카페인과 생이별한 지 어느덧 9개월이 지났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 진단이 내려진 그날 병의 무게만큼 나를 짓눌렀던 부담감 중 하나는 ‘카페인 섭취금지’였다.

나에게 카페인은 즉 커피다. 매일 500m 텀블러에 가득 채워 투샷으로 마시던. 그 커피말이다.

절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침마다 커피머신으로 내리는 캡슐커피의 다정한 속삭임도 쌉싸름한 향도 이젠 안녕인 건가.

종류 별로 쟁여 둔 캡슐커피는 어쩌지.


오빠,  이제 커피 마시지 말래. 아픈 것도 속상한데 하지 말라는 것도 많아

그래?  참에 디카페인 커피로 바꿔봐.”


역시 남편은 가끔 번뜩이는 해답을 내준다. 맞다. 디카페인 커피가 있었구나 싶었다.


후다닥 캡슐커피 30개를 주문하고 손꼽아 기다렸다.

어느 브랜드나 그렇듯 디카페인 커피는 종류가 그다지 많지 않다. 애정하는 캡슐커피의 브랜드에서는 세 가지의 디카페인 커피를 판매하고 있어서 세 가지 모두 한 줄씩 (한 줄은 10개씩 들어있다) 구매를 했다.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고 긴장된 마음으로 커피가 추출되기를 기다리며 커피의 맛을 상상한다.

뭔가 빠진 밍밍한 맛이려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알뜰히 내려진 커피의 향을 맡아보니 생각보다 훨씬 근사하다.

커피의 맛 또한 거의 흡사하지만 끝맺음을 주는 진한 맛이 사라졌달까, 조금은 허전하고 가벼운 맛이다.

아마도 그 진함이 카페인의 맛이려니 생각한다.

완전하진 못해도 커피와 갑작스러운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 내게 주는 대체품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대학 OT가 있던 날 처음 술을 접했는데, 그 첫 기억이 응급실로 직행하는 역사를 만들고는 그 이후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당시 유행하던 369게임의 벌주로 마셨던 소주 한잔이 나를 응급실로 직행하게 만들었으니 술과 가깝게 지내기엔 우린 너무나 상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주 한잔을 마시고 대략 500m 정도의 피를 토했다는 선배들의 얘기에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환자분은 평생  드시면 안 됩니다.  분은 술을 해독하지 못하시는 거예요


스무 살, 아직 대학생활이 시작하기도 전 OT에서 벌어진 일이라 나는‘OT때 피 토한 애’로 알려지며 4년 내내 ‘피토’로 불렸다.


술을 즐겨본 적이 없으니 술에 대한 욕구는 당연히 없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나의 욕구와 무관하게 술자리가 많아졌고, 술을 거절하는 것에 어려움도 많았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개인취향 정도라 여기지만,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과 함께 하는 회식자리에서는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 관계에 선을 긋기 위함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런 자리에서 나의 대체품은 주로 사이다나 콜라였다. 분위기에 따라 깔맞춤을 해주는 센스를 발휘해 소주를 마실 때는 사이다, 맥주를 마실 때는 콜라를 주문했다.

그렇게 꿋꿋하게 오랜 시간 술을 마시지 않으며 사회생활을 이어갔고, 여전히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 비 주류인 (非酒類人)으로 남아있다.



이미지출처_pixabay


최근에 마트를 가면 주류코너에 논알코올 카테고리 상품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가끔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함께 마시는’ 즐거움을 공유하자며 내게 권했던 상품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처럼 술에 과민한 체질을 타고 난 사람은 극소수 일 텐데, 이토록 많은 논알코올 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카페인, 논알코올, 제로슈가 모두 본질적으로 필수인 것을 덜어내는 식품이다.

커피는 몽롱한 아침을 깨우는 각성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술은 기분 좋은 자리에서 분위기를 끌어올리거나 누군가의 시름을 달래는 역할을 했으며, 도파민을 뿜어내는 매혹적인 달달함의 설탕은 어떤 음식을 막론하고 소금만큼 중요한 재료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굳이 목적성이 분명한 재료를 덜어내고 맛을 구현해 내기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그 이면에는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점도 한몫할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숙면을 방해하게 하고 싶지는 않고, 술을 마시고는 싶으나 건강을 해치거나 이성을 잃을 만큼 취하고 싶지 않으며, 단맛은 좋지만 살찌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나 역시 그렇다.

건강을 이유로 디카페인 커피를 고집하는 걸 보면 학습된 맛의 중독은 끊어내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아는 맛, 길들여진 맛은 단순히 미각을 충족시키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나누었던 시간, 그 맛을 느꼈던 공간, 달콤했던 기억들이 중첩되어 머릿속 하드디스크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단호하지 못한 대안으로 뭔가 빠진 식품을 찾는 이유는 맛에 대한 욕구를 넘어서, 그 맛을 느꼈던 달콤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과정을 반복하고 싶은 향수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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