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디아케이 Apr 29. 2023

마음에 안 드는 건 머리가 아닐지도

실패한 헤어스타일


날이 따뜻해지니 치렁치렁한 머리가 걸리적거리기 시작했다.

몸 생각한다며 탄단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고루 먹기를 실천 중인데, 모든 영양소는 손톰과 머리카락으로만 직진하고 있는 듯하다.

잘라, 말아? 파마할까? 몇 가지의 선택지 중 무엇 하나 딱 부러지게 마음에 와닿는 게 없어 미루고 미룬 미용실 행이었다. 

몇 개월 전 파마한 머리끝이 상해 자주 엉키는 게 불편해서 이젠 더는 미룰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두고 볼 수가 없다.




미용실 예약을 하려 네이버에서 예약버튼을 누루고, 시술내용을 확인하는 부분에서 다시 한번 고민을 이어간다.

무엇이 되었던 자르는 건 반드시 해야겠기에, 파마는 디자이너와 상담 후 결정을 하기로 마음먹고 예약을 완료했다.

마음먹은 후에는 미룰 일이 없으니 가장 빠른 시간에 시술 가능한 디자이너를 선택하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미용실로 향했다.


어느새 날개뼈 언저리까지 길어버린 머리칼의 상한 부분을 모두 잘라내기로 했으니 대략 긴 단발정도로 어깨선에 걸쳐지는 머리길이가 된다.

싹둑싹둑- 머리칼이 잘려나가는 소리가 리드미컬하다. 매번 느끼는 점이지만 이 디자이너의 손길은 내 성미만큼이나 빨라 속이 다 개운해지는 매력이 있다.


고객님, 이 정도 길이 어떠신가요?”

조금 더 잘라주세요”


상한 머리칼에 층이 진 머리가 넌더리가 났던지, 이 날의 나의 콘셉트는 가급적이면 깔끔하고 단번에 일자로! 였다.


앞머리는 어떻게 할까요?”

매일 드리아하니 이 길이까지 잘라주세요”


앞머리도 옆머리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의 머리칼을 광대와 턱선 중간쯤에 대며 말했다.

어중간한 앞머리는 뒷머리보다도 더 극적으로 짧게 느껴졌다.

‘좀 짧은데’ 생각했지만, 머리는 숨 쉬듯 기르고 금세 덥수룩해지겠지 싶어 15분 만에 커트를 마무리하고 미용실을 나셨다.

미용실을 나서는 엘리베이터 앞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늘 C컬의 웨이브를 가졌던 나의 머리가 일자로 쭉 뻗어 전보다 부드러운 인상이 사라진 것 같아 조금 어색했다.


미용실을 다녀오면 기분전환이 되는 효과에 주기적으로 찾았었는데, 최근에는 미용실을 다녀오면 예전처럼 마음에 쏙 들만큼 예쁘다고 생각된 적이 없었다. 클리닉이며 더 높은 등급의 시술약이며 비용이 더 추가되는데도 만족도는 오히려 떨어졌다.

그래서 미용실을 찾을 때의 마음과는 다르게 실망감을 가득 안고 나오는 일이 많아졌다.

아마도 상상 속에 내 머리와 실제의 모습에서 오는 간극이 불러오는 실망감일 테다.


집에 와서 다시 거울을 보니 머리스타일이 정말 딱 내가 말한 그대로 컬 없이 깔끔한 긴 단발이다. 

그동안 미용실에 다녀와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은 헤어스타일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결국 머리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한 게 아닐까.


머리를 돌려 이리저리 거울을 보다가 화장대에 있는 롤빗을 꺼내 들었다.

‘드라이로 볼륨감 좀 살려주면 괜찮을 거야.’

롤빗으로 돌돌 말아 머리끝에 뜨거운 바람을 쏘이며 한껏 볼륨감을 넣어 상상 속 머리를 연출하려 노력한다.

별 수 있나. 이렇게 또다시 새로운 헤어스타일과 익숙해지는 수밖에.

작가의 이전글 디카페인, 논알코올, 제로슈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