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을 제한하고, 더 많은 활동을 위해 운동계획을 세우는 게 현명한 다이어터의 자세일 테니 말이다.
마흔 해가 넘게 살아오면서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썩 나이스한 몸매는 아니지만, 호리호리한 체형 하나 때문에 '옷빨'만큼은 잘 받았던 30대가 나에게도 있었다.
작년 6월 어느 날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무엇을 먹어도 찌지 않은 체질쯤으로 알고 살았으니, 그동안 칼로리를 의식하면서 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그래봤자 아득히 먼 옛일처럼 느껴지는 얘기이다. 지금은 이미 몸무게 앞자리를 한번 갈아치워 무엇이든 먹기 전 '이건 또 얼마나 살이 찔까?'하며 내적갈등을 키우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고문하기 일쑤이다.
40대가 되어서 다이어트를 하려니 마냥 굶기에는 제약이 많아졌다.
가장 중요한 건강이 달린 문제인 데다 전에 없던 영양의 결핍으로 탈모가 생겼다는 주변인들의 생생한 증언이 있어서였다. 살은 쪘다가도 빠질 수 있지만, 머리카락은 한 번 잃어버리면 영영 빈모의 허전함을 안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고른 영양의 섭취는 나의 다이어트 계획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날씬함을 얻고 머리카락을 잃을 수는 없다. 그건 등가교환을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살은 빼야겠고, 건강한 영양섭취는 필수라니.
빼기 위해 먹어야 하는 모순 속에 다이어트를 이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을 빼기 위해 먹을 것부터 챙긴 탓에 전에 비해 냉장고는 가득 찼다. 먹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것인지, 빼기 위해 먹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콩과 두부, 계란, 닭가슴살, 돼지목살 정도로 단백질을 섭취하고 채소는 자유롭게 먹기로 했다. 단, 밀가루와 가공식품, 단당류, 백미를 먹지 않기로 하고 나트륨은 최대한 절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거기에 일주일에 4번, 50분 이상 필라테스 운동으로 300kcal을 소진하기로 했다.
정말이지 계획만큼은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이 정도로 열심히 한다면 곧 몸무게의 앞자리를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푸릇푸릇한 식단도 달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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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이어트가 어디 그렇게 호락한가.
20-30대의 내 몸을 기억하고 다이어트 계획을 한 달로 잡았는데,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몸의 체질과 활동량, 지방이 쌓이는 형태 그 모든 게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해도 복부 중심으로 쌓이는 지방과 두리뭉실해진 몸의 형태는 어찌할 바가 없다. 식단과 운동을 이어갔지만 거울 속의 모습은 변함없는 아줌마라는 사실에 실망감만 키워갔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현타가 제대로 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다이어터들이 왜 그토록 살을 빼기 힘들어했는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수년간 다이어트를 이어갔는지 이제는 잘 안다.
끼니를 챙기기 귀찮을 때도 식단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오른 물가에 식재료값은 3일이 멀다 하고 오르고 있어 일반식을 할 때에 비해 다이어트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다.
살을 빼기 위한 식대의 지출은 늘어나고, 몸무게의 앞자리는커녕 뒷자리 숫자 바꾸는 것도 만만치가 않으니 좀처럼 흥이 나질 않는다.
'뭐야, 이렇게 계속해야 한다고???'
이 지난한 다이어트를 수개월 째(어쩌면 몇 년이 될지도) 이어가기 위해서는 다이어트 루틴에 대한 나의 프레임을 유연하게 바꾸어 보기로 한다.
그 첫 번째가 몸무게에 연연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몸무게가 줄지 않는 것은 운동으로 인한 근육량의 증가로 무게가 줄지 않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인바디체중계에서 운동을 한 날은 미세하게나마 체지방량의 변화가 있는 걸 보면 아주 조금은 희망이 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근육은 같은 양의 지방보다 무게가 더 나가기 때문이라고 믿자. 저 아래 부끄럽게 숨어있는 근육이 조금씩 키워지고 있는 시간일 것이다.
두 번째로 이 다이어트의 시작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상기하는 것이다. 건강이 망가져 약으로 인해 체중이 늘어난 나의 몸이 더 건강해지기 위한 습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그래도 운동을 하는 덕에 뱃살은 조금 올라붙었고, 근력도 키워지고 있으니 매일 단단해지고 있을 몸과 체성분의 변화를 상상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다이어트는 올곧이 나를 위한 것임을 잊지 않기로 한다. 외부의 시선으로 인해 자극받지 말고 깃털 같은 변화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의 결과인지를 스스로 알아주기로 한다.
촉촉하게 내린 봄비로 냉장고 속 달달한 파프리카 대신에 지글지글 불판에서 구워낸 파전이 그리운 오늘이다.
오늘 하루를 견뎌낸 나의 다이어트가 날씬한 나를 만들어주지는 못할지라도 '잘 이겨낸'나를 만들어 줄 수는 있을지 않을까.
파전대신 계란 두 알을 꺼낸 나에게 기특하다는 칭찬과 함께 굳건한 오늘을 응원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