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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케이 May 31. 2023

애쓰지 않으려고 그린다

그리는 행위에 대해





나는 가끔 그림을 그린다. 숨을 쉬듯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쏟아져 낼 창착욕이 넘칠 때 그림을 택하는 편이다. 캔버스에 무언가 표현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음에도 내가 하는 행위가 '그린다'는 표현이 맞을는지 모르겠다. 내가 선택한 재료와 표현방식이 일반적인 그림과는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실이 곧 물감이고 나이프가 곧 붓이다.

가지런히 실패에 감긴 색실을 풀고, 자르고 접착제와 혼합해 캔버스에 칠한다. 아니, 붙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잘게 잘린 색실이 접착제와 꾸덕하게 섞이고, 작은 색실들이 뭉쳐져 특유의 색감과 독특한 질감을 나타낸다.

풀어내고, 자르고, 다시 뭉쳐내고 바르는 일련의 행위 모두가 그림이다.



배합한 실의 컬러칩



나의 그림에는 형상이 없다. 구상화된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가능한 상(狀)이 있을 뿐이다. 없음으로 자유롭고, 형상으로부터 해방된다.


실로 작업을 하기 전에는 실제 하는 것을 그렸었다.

입시미술을 비롯해 '잘 그리는 것'은 실존하는 형태와 흡사하게 표현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실제보다 더 실제일 수 없는 그림이 주는 감동으로 인해 애써야 함이 나를 염증 나게 했다.

네모난 캔버스 속에서 형상은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를 감추고 갇혀있는 것만 같았다.


형상을 해체하는 작업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열린 결말의 영화로 하여금 무한한 선택지가 존재하 듯, 실존하기 힘든 형상으로 열린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건 보는 사람의 몫이니까.



Blue light_110.8 x 80.3 (50P) Mixed media on canvas 2022_JIEUNO



오롯이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과 마주하는 시간은 자유롭다. 자유로움에 매료되어 '그리는 사람'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다. 비록 다작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림 자체로 온전하다 느껴질 때까지 그리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작업한다.


몇 개월간 완성하지 못한 100호 캔버스가 방 한편에 넣여있는 게 오늘따라 마음이 쓰인다.

건강을 핑계로 작업을 쉬었던 시간 동안 우직하게 서 있던 그림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처량하게 느껴진다.


며칠 새 푸르름이 더해진 하늘의 너그러움을 닮은 그림을 그려내고 싶다.

오늘만큼은 '그리는 사람'의 정체성으로 다시 돌아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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