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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케이 Jun 21. 2023

나를 관찰하는 시간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




나는 오래전부터 12월이 되면 다음 해에 쓸 일기장을 고른다. 내가 보내온 일 년의 시간이 일기장 속에 고스란히 저장되는 것만 같아서 책장에 늘어나는 일기장을 보는 것만으로 뿌듯해진다. 첫 번째이자 유일한 독자가 되어 일기장을 펼치면 지난 시간 속에 나를 그때의 나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때는 뭐가 이렇게 처절하게 힘들었을까. 감사하게도 그 시간을 잘 이겨냈구나.'


몇 년 전 마흔 앓이로 마음이 혹독하게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 일기장은 감정 쓰레기통으로 충실히 제 기능을 다해주었었다. 글쓰기와 산책으로 복잡한 마음을 덜어내고 독서로 다시 채워내니 감정이 널뛰던 일기장의 글이 조금씩 차분하게 다듬어지는 것 같았다. 글쓰기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건 그때부터였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오직 나뿐인 글쓰기의 주체로 수많은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관찰자 입장으로 지난 시간의 나를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비록 일기이지만 독자가 되어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관찰하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나를 향해 화살을 꽂던 것도, 감사한 마음을 보내던 것도 모두 나였다.


문득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글쓰기라고는 혼잣말과 다름없는 일기 쓰기가 고작이었는데, 불현듯 글이 쓰고 싶어 진 건 생경한 변화였다.

꽤 오랜 시간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법을 연습했는데 그림보다 명료한 글로 나를 표현하는 법을 익히고 싶었다. 그러려면 글을 쓰고 싶은 적절한 창구가 필요했고, 글쓰기에 대해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브런치에 글을 쓰는 작가를 발견하게 되었다.(당시는 브런치스토리로 이름이 바뀌기 전이다)

브런치의 첫인상은 하얀 화선지와 먹을 연상하게 했다. 말끔하고 단정하며 군더더기 없이 심플했다.

책을 출간한 많은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어 읽을거리도 많을 뿐만 아니라 글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최상의 플랫폼처럼 보였다. 철저하게 기본에 충실한 플랫폼 그것이 내가 브런치를 선택한 이유였다.


그런 브런치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지만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작가신청을 하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작가라는 자격으로 글을 쓴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나를 망설이게 했다. 네이버 블로그를 오래 사용해 보았지만 블로그와 브런치의 글쓰기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다.

신년계획 중 하나였던 브런치 작가가 되는 일은 3개월의 망설임 후에 비로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한 번에 브런치작가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글을 보여준다는 게 벌거벗겨진 채로 서있는 기분이 들어서 글을 쓰고도 좀처럼 발행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아마도 현재 브런치스토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작가들은 발행버튼의 무거운 힘을 잘 알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의 글쓰기의 목적은 나를 관찰하는 데 있었다.

글쓰기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어떤 글을 써나갈지 모르니 무작정 써보기로 한 것이다. 발행한 글이 늘어나고, 정해진 주제 없이 써나간 글이 무엇을 향해 있을지 궁금해서 글 쓰는 나를 관찰하기로 한 것이다.

산발된 소재 속에 나를 발견하는 재미가 글쓰기를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럭이 돼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글을 쓸수록 고민이 많아졌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이 되는 글일까? 

지나치게 개인적인 주제가 아닐까?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무엇일까?

머릿속을 부유하는 생각들은 글을 쓰려고 할수록 퍼져나가고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흩어지는 생각을 잡아둘 수 없으니 최근에는 떠오르는 소재가 있을 때마다 모바일 메모장에 적어두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모두 다 글로 소화할만한 능력이 부족한 관계로 소재 리스트가 쌓여가는 만큼 발행하는 글의 수가 비례하지는 않는다.


브런치에서 부여한 작가라는 이름이 주는 책임감은 기분 좋은 자극점이 있다.

말하듯 자연스럽고, 물 흐르듯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걸 보면  그 권한이 주는 책임감은 나를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돕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부족한 실력으로나마 꾸준히 써나간다면 천천히 조금씩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로 글 쓰는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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