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을 다녀왔다. 지난번 지나가는 길에 들른 이후로 한 달은 족히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변한 것 없이 그대로다. 이제 방학이 거의 끝나가기에 짐을 미리 옮겨두려 간 것인데, 가기 전과는 다르게 막상 도착하니 익숙한 풍경에 아늑함까지 느껴진다. 양평은 겨울이 매우 춥다. 아니나 다를까, 도로 위를 달리다 문득 옆 창문으로 강물을 내다보니 강이 다 얼었다. 얼음은 두껍고 견고해 보인다. 이렇게 강이 다 얼 정도라니, 양평의 추위가 새삼 생각난다.
차를 타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운전이라는 행위가 나의 인식으로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라서 그런지,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손발이 움직인다. 양평으로 가는 길, 노래를 부르며 가는 길. 운전을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니 조금은 대견하다. 언제 이렇게 장거리 운전도 가능해졌는지, 나도 이제 곧 어른이구나.
방학은 너무나 즐겁지만 체계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즐기는 나에게는 약간 힘든 부분도 있다. 늘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싶은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짐을 싸서 올라와 서울생활을 해야 하니. (그렇다고 그게 싫은 것은 아니다. 집은 온기가 있다. 무엇보다 내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이다.) 자꾸 이리저리 이동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운명인 것 같다. 학기 중에는 여기로, 방학에는 저기로. 직장도 몇 년 단위로 옮겨야 하니, 한 자리에서 살기는 그른 것 같다.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얼마나 할지, 교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는지는 몰라도 교사를 하는 동안에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 좋은 교사가 되는 데에는 경험도 매우 중요하다. 경험 많은 교사는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선물할 수 있으니.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힘든 일이나 교사라는 길을 선택한 이상, 그리고 교사를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하기로 선택한 이상 어쩔 수 없다. 자꾸 둥지를 박차고 나오는 경험을 해야 한다.
나는 배우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역도, 크로스핏, 축구, 자전거, 수영, 기계체조, 주짓수와 같은 운동에서부터 성악, 피아노, 기타, 글쓰기, 프로그래밍, 사진촬영, 목공같이 전문적인 분야까지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정작 시작할 용기는 많이 없다. 핑계 아닌 핑계로, 내가 직장을 다니는 양평에는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 치지만, 사실 누구나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곳 앞에 사는 것은 아니니 핑계가 맞는 셈이다. 정 배우고 싶다면 차를 끌고서라도 어디든 다녀야 할 텐데,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일단 올해는 지금까지 하던 웨이트를 조금 더 열심히 해보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웨이트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 되니, 해둔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다. 지금 열심히 배워두면 나중에 내가 다른 운동을 배울 때도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양평에 얼마나 있을지는 몰라도, 양평에 있는 동안은 주변에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서울에 다시 시험을 볼 게 아니라면)
주변에 없다고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조금 진취적으로 살아볼까 한다. 나는 너무나 둥지에 오래 있었다. 나만의 편안한 공간을 깨고 나와, 더 발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가 쓴 글을 많이는 아니더라도 누군가 읽는다고 생각하니, 솔직한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 글이라면 당연히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글을 써서 보여주는 것이 내 마음속을 내비치는 행위로 느껴져 부끄럽다. 내가 가진 생각이나 마음, 행동의 이유들을 주절주절 적어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행동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정말 중요하다. 정서적인 해방구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굉장히 피곤하고 힘들다. 늘 다른 사람을 신경 쓰며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쓴다는 것이 원래의 나보다 좋은 사람의 가면을 쓰게 하기에 좋은 일이기도 하나, 내가 아닌 사람의 행세를 하는 것이 늘 즐겁지만은 않다. 내가 더 힘들 때는 내가 세상에 융화되지 못한다고 느낄 때이다. 나는 내가 그렇게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세상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사람들과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싶은 열망이 크지 않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당당하게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기다리는 뭇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내 일상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 나가 사는 모습은 오직 나의 것이고,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에도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즐거움을 느끼는지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이 없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나는 내 스스로 즐거움을 찾기에 그런 것 같으나, 정확한 이유는 아직 찾지 못했다.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다고들 하지만, 정작 하지 않는 사람은 많이 없다. 아이들도 나에게 곧잘 소셜미디어 아이디를 묻곤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진실로 믿을지는 미지수다. 어떤 아이들은 내가 자신에게 내 소셜미디어를 공개하고 싶지 않아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는 것은 많은 단점이 있는데, 그 단점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대해 지나치게 무관심해진다는 것이다.
일전에 여자친구와 했던 대화를 예로 들면, 여자친구는 자신도 다른 사람들이 다들 즐기는 데이트를 즐기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물론 지금까지 우리가 우리만의 방법으로 즐거움을 느끼곤 했었다고 생각했기에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게 나만의 생각이라는 것도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생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러나 이제는 같아져야 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생각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디를 많이 가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물론 이상적인 경우는 아예 다른 사람과 관계없이 스스로의 즐거움을 찾는 일일 것이다. 쉽게 말하면, 누가 뭐라 하든 무시하는 방법. 그러나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일례로 사람들은 종종 남자들은 대충 다니고 여자들은 화장 같은 꾸밈노동을 강요받는다고 하지만 정작 화장을 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은 없다. 주변에서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신기해하는 시선을 보내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어긋나는 모난돌이라고 판단하고 다듬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는 굉장히 폭력적이지만 무엇이 옳은지가 이런 행위를 당한 피해자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장 이런 행위가 멈추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만해도 내 머리정도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으나,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된다. 학교에서는 뭐라고 하실지, 여자친구는 뭐라고 핥지. 다시 말하지만 무엇이 옳은지는 상관없다. 대다수의 의견이 중요하고, 대다수가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중요하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며 같은 사회적 지위를 누려야 한다고 하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남자 혹은 여자친구가 자신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 희생하는지, 자신을 받들어 모시는지를 자랑하기 바쁘다. (그것이 어떻다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주변에 자신과 다른 사람이 있으면 한사코 알려주고 싶어 하고, 자신과 같은 '대접'을 받으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관계에 있는 것이고,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의 말이 온전히 맞는 것은 아니나, 어느 정도 생각할 여지를 남기기는 하였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접받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나에게 쩔쩔매기를 바라고, 내가 없으면 죽고 못살기를 바란다. 그런 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하구나, 깨달았다. 나는 너무 지금까지 내 방식대로만 살았다. 내 방식대로 사는 것이 옳지 않다고 느꼈으니, 이제라도 마음을 고쳐먹을까 싶다. 내 즐거움은 나 혼자 누리면 된다. 나만의 방식으로 느끼는 즐거움은 나에게 족하다. 나도 이제는 여자친구가 창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늘 나를 배려하느라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 한마디 안 했을 사람을, 나도 이제 배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