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일에 대처하는 방법
나에게는 이것이 최선의 저항이다.
햇살이 따뜻하다. 하늘이 흐려질 때면 조금 쌀쌀하다.
길지 않은 방학이 끝나고, 다시 일터로 나간다. 나의 일터는 학교인데, 여느 오래된 학교가 다 그렇듯 세월이 지나도 그 겉모습은 늘 그대로다. 아침이 되어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향하는 마음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그러나 학교에 도착하고 나니, 무거운 마음은 사라지고 다시 6개월 전 첫 발령을 받은 신규 교사가 되어있는 나를 발견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기억하는 일련의 행동이 이어진다. 가방을 내려두고, 자리에 앉고, 컴퓨터를 켜고,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메신저를 켜 내가 하는 업무에 새로운 사항이 있나 확인한다. 몇 번이나 했다고 벌써 습관처럼 되어있는 것이 신기하다.
메신저를 켜니 내 소속이 보인다. 나는 내 새로운 학년에 대해 미리 연락받지 못했다. 교감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어련히 알아서 하시려니 했던 내가 잘못일까? 나는 6학년 꼭지 밑에서 내 이름을 찾았다. 나는 6학년을 쓴 적도 없고, 6학년에 갈 점수도 아니었다. 교사들이 기피하는 학년은 매년 다르지만 (악성 민원인의 여부와 같이 가변성이 있는 여러 요소들로) 올해는 6학년이었고, 학교에서 학년을 배정하는 체계에 따라 나는 6학년이 아닌 내가 지망했던 학년에 충분히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교감선생님께서는 나를 6학년에 배정하셨다. 그리고 다른 학년을 보다 보니, 내가 지망했던 학년에 나보다 우선순위가 밀렸던 선생님들의 이름이 보인다.
화가 난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물론 교감선생님의 업무가 과중한 것도 알고, 도저히 배정된 학년에 가지 못하겠다고 읍소하시는 여러 선생님들로 인해 난감한 위치에 있으신 것도 안다. 그러나 원칙이 있는 이유가 다 그런 순간을 위한 것이지 않은가. 원칙이 있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 내부의 요인으로 갈등이 일어날 때 모두가 납득할 만한 방법으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 나는 학교에서 학년을 배정하는 원칙을 알고 있었고, 그 원칙에 따라 내 거취를 결정해 주시길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교직사회라는 작은 사회에서는 무의미하다. 그것을 오늘 확실히 알았다.
화를 낸들 무엇 하나.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어제 공지된 학년 배점표를 (고의는 아니실 것이라 믿는다.) 어쩐 일인지 나에게는 전달해 주시지 않은 교감선생님의 마음에 대해, 그 행동에 대해 화를 낸들 무엇 하나. 교무실로 달려가 교감선생님께 내 화를 쏟아난들, 그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내 평판은 땅에 떨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큰 관심이 없다. 사건이 벌어진 원인을 알려고 하는 수고를 하기보다는 그저 사건에 대해 평가하고 비난하는 것이 더 쉽다. 누구나 쉬운 것을 좋아하는 탓에, 대부분의 사건은 표면적인 해결에 그친 상태로 마무리된다. 내가 교감선생님께 항의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버릇없는 놈, 위아래도 없는 놈, 선배를, 어른을 몰라보고 대드는 놈이 될 뿐이다.
내가 얻을 것은 없다. 내가 이 상황에서 이기는 방법은, 여기서 무언가를 배워 나를 성장시키는 길뿐이다. 내가 원치 않았지만 처해진 이 상황에서 최선의 이익을 얻는 것은 하기 싫다고 뻗대는 것도, 모든 절차에 따라 항의하는 것도,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들어 공론화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그래, 언젠가는 할 학년이었다. 언젠가는 할 일이었고, 언젠가는 처해질 상황이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가 아직 체력이 좋을 때, 내가 열정이 있을 때 이 상황에 처해진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자. 여기서 하나라도 더 배워서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자.
마음이 이렇게 드니 더 이상 화가 나지는 않는다. 아무리 개인적인 원한이 있다 한들, 상사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은 기본 예의다. 방학이 끝났으니 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갔다. 교감선생님은 나를 어려워하신다. 그래, 그거면 됐다. 먼저 다가가 웃는 낯으로 인사를 건넨다.
방학 잘 보내셨어요?
그래, 나는 잘 보냈지. 선생님은 방학 잘 보냈어?
웃으며 대답하신다. 그래, 이대로 흘려보내자.
전 너무 잘 보냈어요.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으신다.
잘 부탁해.
뭘 잘 부탁한다는 것인지, 말씀하시지 않으셨지만 나는 알고 있다.
최선을 다해서 해보겠습니다.
대답하고, 돌아 나왔다. 마음이 완전히 홀가분하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 개운했다. 그래, 그 정도면 됐다. 여기서 배우고, 즐기자. 즐기는 것이 누구든 나를 이 상황에 처하게 만든 사람에 대한 최선의 복수다. 즐기자.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