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프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ronto Jay Apr 10. 2024

광순 씨! 오늘도 1억 원을 훔쳐 가실 건가요?

재주도 좋은 한 여자의 이야기.

                                                       



김. 광. 순 바로 오늘의 이야기 주인공이다.


나이는 70대 초반 키는 150이 조금 넘을듯하다.


나이에 비해 훨씬 또렷한 정신과 튼튼한 육체를 가진 그녀는

시골 할머니들의 전유물인 손이 많이 가지 않아 돈들일 없다는 뽀글이 파마 같은 건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언제나 그 흰 백발의 단정한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전기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듯 아스팔트를 누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녀의 이름 속 "광"자가 "光"(빛날 광) 자 일거라는 생각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난 적이 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매일 1억씩 돈을 훔쳐가기 시작한 이후

그 빛나던 "光순"은 하루아침에 "狂순"이 되어버렸다.

남의 통장에서 매일 1억씩을 빼내가는 미치광이"狂"자를 쓰는 천하의 나쁜"년"이 된 거다.


이 "년"이란 단어는 그 돈을 잃은 분의 아들이어서 쓰는

무척 "화남"과 함께 상당한 억울함의 표현을 쓰고자 하는 "나"의 표현이 아니다.
1억 원이란 돈을 매일 빼앗기는 말할 없는 "화남"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나"의 어머니의 표현이다. 

"狂순"씨 매일 훔쳐가고 있는 돈의 주인이 바로 우리 어머니란 얘기다.




10여 년 전 요양보호사와 피요양인으로 만난 두 분의 관계는 이 년 전.

그러니까 어머니와 60 평생을 함께한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조금씩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무엇인가 자꾸 없어진다는 것이다.

사라지고 증발하는 것들은 그 종류와 수량을 가리지 않았다.


오래된 어머니의 빗부터, 샴푸, 화장품

이렇게 없어져도 크게 잃어버림의 충격이 크지 않은 것들로부터 시작을 하더니

쌀, 참기름, 냉장고의 소고기에 그 비싸다는 송이버섯까지 그 규모와 수량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만 갔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달부터 통장에서 돈이 비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하루에 1억 원씩.


급기야 매일 서너 시간 같은 공간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80대 후반의 어머니는

겁남과 두려움과 상실감에 혼자 몸부림치다.

혼자 걷지도 못하는 몸이건만 보행기에 의지하여 기적적인 "납심"에 성공하였으니.

그 장소는 집 앞 농협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의 긴 여정을 마친 후 농협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가 날리신 한마디가 이거였다.


"내 돈 1억 원을 찾아주시오!!!" 김광순이가 가져갔다오!!!


척추협착증 수술로 목부터 허리까지 30여 개의 핀을 박은

내일모레면 90인 노인이 기적과 같은 혼자만의 걸음을 하셨던 거다.


사라지는 1억 원을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서... 매일.

통장 비밀 번호를 바꾸신다... 매일.

그리고 잠들기 전 그 "狂순"씨에게 혼자 화를 내시다 용서하신다... 매일

그러다

참다 참다 이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며 경찰에 고소를 하시겠단다... 매일


그런데 이런 아흔이 다되어가는 어머니의 돈 1억 원을 매일 훔쳐간다는 우리 광순 씨는 도망가지 않는다.

아침 출근시간 십 분 전이면 그 은발의 단발머리를 흩날 리며 환한 모습으로 출근을 한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매일 보며 경악한다. 내 돈 1억 원을 매일 가져가 놓고 또 왔다고. 소리를 지르며 싸우지 않는다 그저 광순 씨 뒤통수에 대고 나지막하게 읊조릴 뿐이다.


소고기 송이버섯 내 돈 1억...

다 안다 다 안다. 나는 다 안다.

네가 가져간 거 다 안다...


하지만 나도 안다.

매일 훔쳐간다는 어머니 농협통장엔 그 돈이 들어온 적도 나간 적도 없다는 것을.




어머니가 기억하는 냉장고 속 질 좋은 투뿔 소고기와 자연산 송이는 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5~6년 전 제자들로부터 선물 받았던 것들이고, 사라졌다는 빗과 욕실용품과 주방의 식재료들은 내다 버린 지 이미 십수 년이 지난 것 들이다. 매일매일 무엇인가 "잃어버렸다"라는 그 상실감에 어머니는 몸부림치셨다.


맞다. 어머니는 치매다.


오래된 장기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치매환자 대부분이 그러하듯 단기기억을 저장하는 해마라는 녀석이 쪼그라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것을 아들인 나조차 그 상황에 지쳐가고 힘이 든다.


어머니 매일 1억씩 가져갔음 지금 30억 도 넘게 가져간 건데...

우린 그런 돈이 없잖아요 어머니...

말이 안 되는 얘기를 왜 계속하세요 어머니.....


이럴 때면 어머니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못 들은 척하신다.

그리곤 한마디 던진다


아고~~~ 오늘날이 참 따습네...




절대 치매환자와 사실 관계를 따지지 마라.

논리적으로 설득하거나 이해시키려 하지 마라.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도둑망상"이라고 불리는 이 질병은

동감하면서 같이 찾다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게 최선이란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절대로.


그 와중 "광"자의 동음 이의어 두 글자로

어머니와 나 그리고 "광순"씨가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면 믿겠는가?




어머니 근데, 매일 돈 훔쳐가는 저 광순이 아줌마 말이에요. 궁금해서 그런데.

"光"자를 쓸까?

아님 "狂"자를 쓸까?

어머니는 아세요?


이 한마디였다.


매일 1억 원씩 잃어버림에 지쳐서 이미 퀭한 눈과 피곤함에 찌든 어머니의 어깨에 힘이 불끈 들어간다.

그리고는 단 1초 후 망임 없이 어머니는 귓속말로 나지막하게 말하셨다.


두 번째! 두 번째!




농협 지점장과 눈인사를 나눈다.

지점장님은 많이 겁내며 놀라는 표정이지만 어머니가 먼저 인사한다.

아이고 젊은 분이 지점장도 하시고 인상도 좋으시고.


기억을 못 하신다.


은행 직원들이 안도의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리고는 "할머니~~~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늘은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거라 믿은 직원이 묻는다.


하지만 돈을 지키고자 매일 혼자 와서 바꿔버렸던 비밀번호가 계속 틀려서 다시 통장을 발급받고 비밀번호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말에 어머니는 깊은 슬픔에 빠지신 듯했다.

절대 비밀번호를 당신이 바꾼 적이 없다는 거다.


그리고는 나와 눈을 마주하며 귀엣말로 한마디 나지막이 속삭이신다.


두 번째... 두 번째...


이젠 나도 한마디 거든다


아이고 내 그럴 줄 알았어요... 진짜 두 번째네!!!




"光순"씨는 오늘도 백발 멋 부린 단발머리로 전기자전거에 올라타 콧노래 부르며 출근을 하고.


어머니는 오늘도 1억 원을 가져갈"광순"씨가 "狂순"이어서 그렇다  용서하며 잠들고.


난 어머니를 대신해 그녀에게 오늘도 물어야만 한다.


"光순씨"!!!


오늘은 무엇을 또 훔쳐가실 건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속 성공한 젊은이들에게 고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